서초구에 살면서

by 정상연

작년, 나는 삶의 터전과 일터를 모두 서초구로 옮겼다.

이제는 서초를 지키는 향토예비군이자, 매일 아침 서래마을로 출근하는 엄연한 서초구민이다.


이사 직후 집에서 한의원 출퇴근을 할 때 자가용을 이용했었다. 오가는 길이 엄청 단순해보였는데, 그 길로 버스도 많이 다녔다. 혹시나 해서 검색해보니 한의원까지 최단거리로 운행하는 버스 노선이 존재했다. 짧은 배차 간격 덕에 버스 안은 늘 여유가 있었고, 심지어 월말에 나라에서 교통비 환급도 해준다니... 한의원 오픈 3개월 차부터는 편안하게 버스로 출퇴근 중이다. 역시 서초구 교통 시스템은 최고다.


한의원이 위치한 서래마을에 도착하면 도심 속에 숨어있는 드라마 세트장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높고 번쩍거리는 빌딩 숲과는 대조적으로 아기자기하고 조용한 동네 분위기가 참으로 마음에 든다. 거리를 걷다보면 우리 한의원 환자분들을 마주칠 때가 있는데,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나도 이 동네의 중요한 일원이 되었음을 느낀다.


서래마을은 젊은 가족 단위의 세대가 많다. 골목 구석구석 걷다보면 사랑스런 아이와 엄마, 아빠가 손잡고 다니는 모습이 흔하다. 외국인 주재원들도 많이 거주하는데, 그 가족 아이의 유독 커다란 눈망울을 마주할 때에는 정신이 아찔해진다.


우리 한의원을 찾는 분들은 참으로 근사하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삶의 궤적을 듣다 보면 감탄을 넘어 존경의 마음이 일렁인다.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과 사회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이들의 태도에서 나는 매번 배운다. 비록 사람들은 나를 ‘한의사 선생님’이라 부르지만, 내게는 서래마을의 환자들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선생님이다.


서래마을을 포함하여 서초구에 사는 사람들은 화려하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다. 본인의 중심을 잘 지키는 평온한 뿌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이러한 품격과 여유는 상대를 존중해주는 자세로 표현되어 나도 그 어느 곳에서보다 존중받는 느낌을 받고있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도 늘 평온하다. 반포천 옆에 조성된 피득천 산책로를 좀 걷다가 버스에 오르면 예술의 전당을 지나 우리 동네에 도착한다. 저녁 먹고 강아지와 다시 양재천 산책로를 거닌다. 여유가 되면 시민의 숲 산책로까지 가본다. 가끔 마주치는 거위 무리나 너구리 때문에 흥분한 강아지를 달래는 것도 이 동네에서만 누릴 수 있는 유쾌한 소동이다.


우리 동네에 놀러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여기 서울 안 같다."

가장 맛있는 음식점에 가서 "집밥 같다"라고 하고, 정성 어린 집밥을 먹으며 "레스토랑 같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최고의 찬사다.


실제로 서초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에서 녹지면적이 가장 높기로 유명한 동네이다. 화려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 도심 속에서 그나마 조용하고 소박한 시간이 보장된 곳이다. 누구는 불편하고 심심하다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진면목을 알아보는 사람들만 모여서인지 동네 이웃과 마주칠 때마다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서초가 좋다. 그리고 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 늙어가고 싶다. 우리 동네가 조금 더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은 산책길에 떨어진 작은 쓰레기라도 하나 더 주워보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강아지와의 남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