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건방 떨다가 나처럼 된다.

학창 시절 이불킥 사건을 떠올리며

by 정상연

나는 고등학교 때 적어도 문제아는 아니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하고는 3년 간 딱 한 번밖에 싸우지 않았던

얌전한 학생이었다.


선생님과 부모님께서 시키는대로 학교 생활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2007년 3월, 새학기를 맞이한 우리 반에는 '수능이 260일 정도 남았다'는 긴장감만 가득했다.


우리반 담임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받는 것에 관심이 많으셨다.

그러기 위해선 훌륭한 면학 분위기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선생님께서는 모범생이 반장으로 뽑히면 반 구성원 모두가 좋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판단하신 것 같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께서는 동료 선생님들의 추천을 받아서

모범생으로 검증된 학생 2명을 직접 반장 선거에 입후보하셨다.

그 2명 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뛰어난 리더십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1학년과 2학년 모두 반장을 역임했었고 큰 문제도 일으킨 적이 없어서

선생님들 눈에는 그래도 괜찮은 학생으로 보였나보다.

2년 간 이미지 메이킹 대성공.


비록 나의 내면을 모르고 반장 후보로 추천해주신 것이지만

학교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두고두고 자랑할만한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시건방'을 떨었다.

"저 공부해야 해서 반장 하면 안 되는데요."


이런 싸가지 없는 말과 함께

나를 믿어준 학교 선생님들의 기대를 저버렸고,

긴장된 새학기를 맞이한 같은 처지의 친구들에게는 재수없는 놈으로 찍혀버렸다.


내가 후보를 사퇴하자,

같이 추천에 올랐던 나머지 한 명도 자진 사퇴하였다.


입후보자 동반 사퇴로 모두가 벙쪄있던 그때

손을 번쩍 들고 자진 입후보를 희망한 친구 1명이 모두의 시선을 받았다.

선생님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는데, 그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19년이 지난 오늘 점심에

고3 반장 선거에 입후보하여 당당히 반장으로 선출되었던 친구가

한의원에 놀러왔다.


그 친구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원까지 마치고

뉴욕 건축회사에 다니며 정말 훨훨 날아다니는 중이었다.


고3 때 시건방 떨던 내가

서울에 한의원 하나 열고서 깨작깨작 일하고있는 것과는 정말 대조적인 모습이다.


지금도 고3 때 반장 후보에서 사퇴한 것을 생각하면

이불킥을 할 정도로 부끄럽다.

그때 나보다 더 큰 품을 가졌던 내 친구는 반을 위한 희생을 선택했고,

그러한 삶의 태도가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멋있는 친구가 곁에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친구를 보면서 나도 내 그릇을 좀 더 키워보겠다.

작가의 이전글죽기 직전에 떠오른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