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중국의 한국인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3편 Beijing-23)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Beijing



23. 내가 경험한 중국의 한국인


중국에 거주하면서 만났던 중국인에 대한 기억도 있지만, 그 보다 오히려 더욱 선명한 인상을 남겨주었던 중국 거주 '한국인'에 대한 기억도 있다.



1) 용감한 한국인


최근에는 중국이 G2라 불리며 경제, 군사 등 많은 측면에서 미국에 버금갈 만큼 크게 성장했다지만, 2005~6년 당시만 해도 중국은 경제력이나 소득 수준 면에서 한국에도 아직은 크게 뒤처져 있었다.


한편 그렇게 차이가 있다 보니, 사실 당시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중국인들로부터 선진국 국민으로 대접받으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그러한 분위기에 일부 한국인은 너무 취해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막말하는 등 몹시 민망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체의 한국인 주재원이 중국인 부하 직원에게 성질 내고 막말을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한국에서 같은 한국인 간 그렇게 해도 문제가 되겠지만, 외국의 다른 문화 속에서 자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에서 하던 식으로 똑같이 그렇게 과격하고 용감한 행동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 때로는 조마조마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다.


만일 그렇게 소리치는 대상이 당시 한국보다 못 살던 중국 국민이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같은 국가의 국민이었다면 과연 그렇게 편하게 성질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대상이 바뀌었다면 아마도 그럴 용기가 없었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럼에도 만에 하나 용감하게 그렇게 했다면, 그 한국인은 바로 고소를 당해서 법정으로 끌려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한국인이 차별을 받는 선진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민망한 행동을 당시 중국에서는 너무나도 편하게 자행했던 셈이었다.


식당, 술집, 상점, 안마소, 골프장 등 곳곳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한국인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본인은 그걸 전혀 잘못으로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자랑처럼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이 사람들은 이렇게 다루어야 하는데, 나는 이미 중국 경험이 많아 그걸 아주 잘 안다" 뭐 이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사실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의 국민에게는 강하고 용감한 반면, 부자 나라 국민에게는 약하고 비굴한 부끄러운 한국인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에서 일하는 어려운 처지의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온갖 갑질을 하면서도 전혀 그 문제를 못 느끼는 일부 한국인들처럼 말이다.


한 번은 동료 주재원들이 골프 치는 모임에 같이 따라서 간 적이 있었다. 나는 골프를 전혀 못 쳐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골프장에 한국의 다른 회사 주재원 약 20~30명이 단체로 와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심한 고성이 들려 가보니 그날 행사를 주관한 것으로 보이는 회사의 간부급 한국인 한 명이 행사 준비가 요구했던 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국인 골프장 직원에게 항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항의하는 모습을 보니 항의라기보다는 사실 갑질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았다. 얼굴까지도 하얘져서 비명을 지르고 온 몸을 비틀고 거의 발작을 하는 그런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발작하는 그의 행동은 이미 한두 번 그랬던 것 같지 않을 만큼 몸에 배어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정작 그 사람과 같이 온 책임자나 상급자가 바로 옆에 와서 그런 황당하고 민망한 행동을 눈앞에서 직접 보면서도 말리거나 제재하지 않고, 오히려 회사와 조직을 위해서 열심히 잘하고 있다는 식으로 인정해 주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는 것이었다.


물론 잘못이 있으면 시정을 요청도 하고 또 항의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고객이라는 이유로 또는 내가 너보다 잘 사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종업원에게 그렇게 욕을 하고 성질을 부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코 안될 것이다.


어쩔 줄 모르던 중국인 직원은 끊임없이 사과를 거듭했고, 그 한국인도 10여 분간 그렇게 발작하다 이제는 지쳤는지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그날의 해프닝은 끝이 났고 우리 일행도 골프장을 떠나면서 그 뒤의 일은 어떻게 전개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유사한 사건들을 통해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그런 갑질을 한 한국인들 중에는 이후 중국인들로부터 보복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즉, 협박 편지를 받거나, 집 앞에서 여러 명에게 두들겨 맞거나, 심지어는 칼부림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결국 선진국에서처럼 고소해서 법정으로 끌고 가서 재판을 통해 벌을 받게 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이 직접 보복을 하는 방식을 택해서라도 자신이 겪어야 했던 모욕과 분노에 대한 나름대로의 응징은 했던 셈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 이제 중국 경제력이나 국가 위상이 너무도 상승해 버렸고 그 결과 요즘은 그러한 과거 현상과는 정반대로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역으로 중국인들로부터 동일한 모욕을 받는 경우가 점차 심화되는 추세라 한다.


그런데 어쩌면 요즘 우리가 받게 되는 그런 모욕은 과거에 한국인들이 중국인을 대상으로 그렇게 갑질을 했던 기억과 인상들이 중국인들 사이에 오랜 기간 누적되고 전파되면서 그 씨앗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자라서 열매로 맺힌 결과가 아닌지 모르겠다.



2) 중국인 직원에게 도시락 심부름시키기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주재원 동료인데, 점심때만 되면 자신은 책상에 누워서 낮잠을 즐기고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조선족 여사원에게 점심 먹고 들어오면서 도시락 사 오라고 상습적으로 부탁하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도시락 값은 당연히 주었고 어차피 나갔다가 들어오는 김에 사 오라 한 것이니 얼핏 들으면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타인의 도시락을 매번 사다 줘야 하는 그 일은 그 여직원의 업무에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 그녀의 일과처럼 돼버린 그 일은 결코 회사 일도 아니고, 또 정말 어쩌다 한번 있는 매우 예외적인 개인적 부탁도 아니었다. 아울러 중국 사회에서는 엘리트라 불리는 공산당의 당원인 그녀에게는 그렇게 매일 도시락 배달을 해야 하는 일이 번거로운 것을 떠나서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서울이나 베이징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점심 때는 한꺼번에 주변 사무실에서 직장인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식당은 물론 도시락 파는 곳도 한참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거나 도시락을 살 수 있었다. 결국 부탁받은 그 도시락을가지고 오려면, 그 여직원은 매일 자신의 귀중하고 짧은 점심시간을 도시락 사러 가고 기다리면서 사무실에서 낮잠 즐기는 한국인 주재원을 위해 희생해야만 했던 셈이다.

보기가 민망해서 그 여직원에게 도시락 심부름이 불편하면 못하겠다고 말을 하라고 했더니 그 직원은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그 말과는 달리 너무 싫은데 직접 말을 하기는 부담스럽고 대신 말 좀 해달라는 듯한 분위기였다. 사실 그런 심부름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결국 하루는 그 여직원 대신에 내가 그 한국인 주재원에게 그렇게 점심에 도시락 사 오라고 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지 한번 생각해 보라고 정중히 부탁을 했다.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았던 그 주재원은 내 말을 듣고 잠시 눈을 꿈뻑이며 생각을 하더니 "어 그러네요, 그게 좀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하며 바로 잘못을 시인했다.


그래도 타인의 지적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수 있는 정도의 양식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다행이었는데, 이후 그 여직원은 도시락 심부름은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점심시간 1시간 휴식은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으로 즐길 수 있었다.


요즘처럼 말도 안 되는 편파적인 주장들로 중국이 한국에게 횡포를 부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과거 중국인들을 부당하게 대하면서도 부당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한국인이 있었다면 그것도 역시 문제다.



3) 코리아타운 안마소에서의 막말


베이징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일종의 코리아타운 같은 왕징(望京)이라는 지역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이윤당(颐润堂)이라는 안마소가 있었는데,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도 않았고, 안마도 매우 잘해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곳이었다.


나 역시 매 주말에는 그곳에 가서 안마를 받고는 했었는데, 내 단골이던 쓰촨 성(四川省) 출신의 안마사를 찾아서 항상 그녀에게 안마를 받았다. 그녀는 키가 꽤 작고 약간 통통한 체격이었는데, 힘은 의외로 너무도 세서 엎드려 누운 채로 그녀로부터 전신 안마를 받으면 지난 1주일간의 피곤이 싹 풀리는 것 같았다. 특히 팔꿈치로 허리뼈 끝부분을 강하게 압박하는 안마는 너무도 시원했었다.

한편 그녀가 안마를 할 때는 유독 작은 체구라서 그랬는지 자신의 거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 안마를 하는 것 같았는데, 그러다 보니 크지는 않았지만 숨을 헉헉대는 것 같은 작은 신음소리도 들리곤 했다. 너무도 시원하게 안마를 받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 그런 숨소리를 듣다 보면, 생계를 위해서 너무도 고생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순간 들기도 해 사실 좀 안쓰럽기도 했다.


당시 90분 안마 요금이 인민폐로 1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화로 환산하면 고작 1만 6천 원 정도였으니 안마소에서 떼어가는 금액을 제외하고 나면, 실제로 그녀가 그렇게 힘들여 안마를 후에 받아갈 수 있는 돈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안마소 이윤당 관련 블로그)

https://blog.naver.com/mominbaby/220676614937


그런데 이 안마소가 한국인 밀집 거주지역인 왕징(望京)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당연히 손님 대부분이 그 지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나 소문 듣고 찾아온 한국 관광객들이었다. 따라서 안마받다 보면 여기저기서 오고 가는 한국말도 쉽게 들을 수 있었고, 오히려 중국어로 말하는 손님은 보기가 꽤 어려울 정도였다.


하루는 변함없이 주말에 그곳에서 안마를 받고 있었는데, 내 옆자리에서 안마받던 한국인 부인이 같이 온 일행들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그녀는 넋두리하듯이, "아, 참 얘는 발을 안마하던 손으로 다른 곳을 안마하면 어떡해, 더럽게"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여기서 말하는 '얘'는 자신을 안마해주던 중국인 안마사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그 두 사람들을 얼핏 보니 젊은 한국인 부인보다 중국인 안마사의 나이가 적어도 10년 이상은 더 많아 보였다.


당시 한국인들이 중국인을 지칭할 때 이처럼 '얘', '쟤'라고 지칭하는 것을 사실 너무나도 자주 들어왔었던 터라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역시 듣기에 안 좋았던 것은 사실이었고 내가 괜히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사전에서 다시 찾아봐도 '얘'는 '이 아이'의 줄임 말이고, '쟤'는 '저 아이' 줄임 말인데 굳이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에게 단어를 사용해야만 했을지....


물론 중국인 안마사들이 한국말을 전혀 모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안마소처럼 고객 거의 전부가 한국인인 곳에서 일하는 안마사라면 적어도 그 정도 한국말은 알아들을 수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굳이 그렇게 아이들처럼 취급하는 용어를 선택해서 말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았다. '이분'까지 기대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 사람'이란 용어는 선택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은 고객이고 상대방은 종업원이라는 생각에서, 아니면 자신은 잘 사는 나라 국민이고 상대방은 가난하고 못 사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생각에서 나이와는 관계없이 그렇게 막 말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한국인이 유감스럽지만 당시 적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서 한국에 관광 온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해주는 발 안마를 받기도 한다는데, 한국인 안마사들은 중국인들로부터 그런 '아이'라는 말은 듣지 않고, 엄연한 근로자로서 정당하게 인정받으며 일하고 있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4) 한국인은 알지만 중국인은 모르는 중국어


회사의 중국인 여직원으로부터 들은 자신의 부서장에 관한 얘기다. 그녀의 부서장은 주재원이었는데 자신이 중국어를 매우 잘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 한국인 주재원은 사무실에서 항상 중국어로 대화하고 업무 지시도 중국어로 직접 부서원들에게 하곤 했다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가 중국어를 그렇게 잘했던 것만은 결단코 아니어서 그의 부서원들은 그가 말하는 중국어를 제대로 못 알아듣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간단한 대화는 어느 정도 알아들었지만, 좀 복잡한 내용의 업무지시를 할 때는 사정이 달라서 때로는 전혀 못 알아듣는 경우조차 있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시절 중국어가 완벽하지 않은 주재원들도 꽤 많이 있었는데, 그럴 경우 상대방이 이해했는지 확인도 하고, 또 좀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 주거나 문자로도 적어서 전달하면 부서원들 입장에서도 좀 더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중국어를 너무 잘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그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편 그러한 상황에서도 감히 부서원 누구도 좀 더 천천히 말해 달라고 그에게 요청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렇게 말하면 자신의 중국어가 거의 완벽하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그 주재원이 심하게 자존심 상해할 것 같은 분위기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그 주재원이 부서원에게 업무 지시를 해도 그 지시내용을 못 알아들어서 지시사항이 전혀 이행되지 않는 경우도 가끔 발생했고, 그러한 경우가 생기면 그 주재원은 왜 지시한 업무를 이행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고, 부서원들은 그러한 지시사항 들은 적이 없다고 항변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까지 발생하곤 했다 한다.


미국이나 유럽 법인에 근무하는 한국인 주재원들의 영어가 알아듣기 어려웠다면, 현지인들은 바로 "당신의 영어 잘 못 알아듣겠다"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런 지적을 받는 과정을 통해서 주재원들은 자신의 부족한 언어 구사능력을 보완해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5년 당시에는 중국인 현지 직원들이 자신의 외국인 상사에 대해 그렇게까지 직설적이고 과감한 의사표현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주재원이 귀임할 시기가 되어 귀임 환송회가 있었고, 그 자리에 나도 같이 참석했다. 그런데 환송회를 하는 그날 그 자리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중국어에 대해 너무도 자신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때로는 오직 자신만 알아듣는 중국어를 구사하면서 자신이 중국 생활을 했다는 것을 마지막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귀국하는 것 같아 좀 안타까웠다.



5) 혹 만들어 주는 한국인 상사


교회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인데 내가 주재 근무하던 그 시절 역시 베이징에 근무하던 타회사 주재원 얘기다. 어느 회사의 직원이나 직장 상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경우는 사실 꽤나 흔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와 점차 친해지면서 얘기를 듣다 보니 임원이었다는 그 친구의 직장 상사는 누가 들어도 좀 병적인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정도가 심했다.


한마디로 합리적 설명이나 접근보다는 고성과 육두문자로 부서원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그러한 부류의 상사였는데,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너무 잘 알겠지만 상사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신경질을 내고 화내기를 반복하면 하루 종일 그리고 1년 내내 그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일해야 하는 부하직원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정말 너무나도 크다.


그 친구 역시,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는지 술 한잔 같이 할 때 취기가 좀 오르면 영락없이 바로 그 상사 얘기로 화제가 돌아가곤 했었다. 옆에서 듣기에도 그 상사에 대한 공포와 분노가 하루도 머리에서 떠나 있지 못한 것 같아 보였는데, 회사는 다르지만 같은 월급쟁이 신세에서 그 친구의 얘기를 듣다 보면 듣는 나조차도 울분과 분노가 치솟을 정도였으니 그런 일을 매일 직접 당하는 당사자는 오죽했을지....


그런데 다소 특이했던 것은 그의 말을 들어보면 물론 역시 거칠기는 했지만 중국 직원들에게는 그 정도까지 병적으로 심하게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 중국어가 잘 안 되는 임원이었고, 또 문화가 많이 달라 중국인 직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잘 몰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독 한국인 주재원들만을 대상으로 욕을 하고 성질을 부린다는 것이었다.


만날 때마다 그 상사로 인해서 받던 스트레스를 하소연하던 그 친구는 먼저 그의 회사 본사로 귀임했고 이후 나는 다른 지역으로 주재 가게 되면서 서로 한동안 만나보못했다. 그러다 오랜만에 귀국해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베이징에 근무하던 그 당시 뱃속에 큰 혹 덩어리가 생긴 것이 나중에 발견되어 그 덩어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지금도 그의 배에는 10cm 이상되는 보기 흉한 그 수술 자국이 여러 개 남아 있는데, 과학적으로 증명되기는 결코 쉽지 않겠지만 분명 그 혹은 당시 그 상사로부터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끊임없이 받았던 스트레스와 틀림없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도 역시 당시 받았던 극심한 스트레스가 혹과 어떤 관련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나도 직장 생활하면서 직접 경험했지만,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스트레스는 정말로 우리의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했었던 홍콩 주재 시절 거의 매일 설사를 한다든가, 아침에 샤워할 때 코피가 수시로 터진다든가, 머릿속에 버짐이 생긴다든가, 혈압이 180 가까이 오른다든가, 밤 2~3시에 꼭 깨고 그렇게 깨면 새벽까지 결코 다시 자지 못한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이상 증상으로 끊임없이 시달렸었다.


그런데 정말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 끝에 결심을 하고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그만두고 나니, 아무런 약을 먹거나 아무런 치료를 받은 적이 없음에도 이 모든 증상들이 거짓말 같이 모두 다 사라졌다. 스트레스가 없어진 것 이외의 다른 것으로는 도저히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대학 교수였던 내 동생은 정치판 같은 대학에서 교수들 간 알력으로 너무나도 스트레스받는다고 하소연하더니 어느 날 일요일 점심에 라면 먹다 뇌혈관이 터져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때 불과 47살이었다.


어쩌면 베이징에서 스트레스로 고생하던 그 친구도 좀 일찍 본사로 귀임하면서 그 상사와 다행히 떨어지게 되어 그나마 그 정도 수술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이고, 만일 베이징에서 그 상사와 더 오래 근무해야 했다면 어쩌면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됐을지도 모를 것 같다.


직장 안에서 성질부리고, 막말하고, 욕하는 한국인 상사가 요즘에도 일부 존재한다는 얘기를 간혹 듣는데, 참 만나고 싶지 않은 한국인들이다. 그런데 그런 한국인을 한국에서도 아니고 중국 베이징에까지 와서도 만나야만 했던 내 친구는 결국 그 덕에 뱃속에 혹까지 생기게 되었으니 정말 불운한 경우였던 셈이다.


직장에서 사람들 마음에 멍을 만들어 주고, 때로는 심지어 혹까지도 만들어 주는 그러한 한국인 상사들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역시 적다 보니 당시 중국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모습만 적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중국에서 만났던 소수의 중국인이 결코 중국의 14억 명을 대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중국에서 만났던 한국인 또한 결코 5천만 한국인을 대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그때 그 시절 단편적으로 경험했던 '일부' 한국인과의 경험을 기록했을 뿐이라는 점 간과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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