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거주하던 2005~6년 그 기간에 다양한 중국인들을 만났고 또 그들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했다. 물론 중국어나 중국 문화 이해에 한계가 있어서 완벽하게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경우도 혹 있었겠지만, 어쨌든 당시 그렇게 직접 보고 체험한 것들을 (1), (2) 편에 이어 글로 올린다.
9) 새치기 달인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2005~6년 당시에는 중국에 새치기가 매우 흔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기하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공항의 택시 탑승장과 같은 장소에는 새치기 방지를 위해 안내 인력들까지도 별도로 배치가 되어 있었고, 기다란 줄로 통로를 만들어 대기자가 그 줄 안에서 기다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여전히 기가 막힌 방법으로 새치기를 하는 중국인을 보기도 했다. 물론 당시 그곳에 있던 그 많은 사람 중에 그 사람이 새치기를했던 유일한 사람이었으니, 모든 중국인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같이 출장 갔다 온 동료와 대화를 나누면서 줄 서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젊은 중국인 남자가 태연하게 우리를 지나 앞에 서 있는 백인 옆에 가서 섰다. 내 뒤로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꽤나 길게 있었는데, 그 대기 행렬 모두를 지나 그 백인에게로 갔던 것이다.
새치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잠시 들기도 했었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백인 옆으로 가서 서 있길래, 우리는 그들이 같은 일행이고 그 젊은이가 잠시 다른 곳에 갔다가 돌아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백인이 그 중국인을 쳐다보더니 "너 누구야, 나 너 모르는데 왜 내 옆으로 왔어? 너 새치기하려는 거지? 뒤에 가서 줄 서!"라고 큰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결국 깔끔하게 잘 차려입어 신사처럼만 보였던 그 젊은 중국인은 일면식도 없는 백인과 일행인 것처럼 행동을 해서 새치기를 하려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외국인이면 물정을 잘 모르니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나름대로는 머리를 써서 그 백인 옆에 가서 섰던 모양인데, 불행하게도 그백인은 당시 중국 새치기 관습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었고, 또한 원칙을 지키는 것에 대한 소신이 매우 강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백인의 호통을 들고 중국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허공만 쳐다보며 잠시 쭈뼛쭈뼛 망설이더니 곧바로 줄 뒤로 사라졌다. 그런데 그 중국인이 역시 대단했던 것은 그래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뒤쪽에서도 또 똑같은 방법으로 어떤 사람 옆에 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사람이 눈치를 못 챘던 것인지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인지, 모르는 그가 자기 옆에 서 있어도 별다른 말없이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결국 그 중국인은 좀 더 줄 앞부분에서 새치기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그나마 뒷부분에서는 성공한 셈이었다.
물론 요즘도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 한국에도 예전에는 새치기가 너무도 흔했다. 도둑이나 강도도 많았고 치안도 한마디로 엉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세월이 지나면서 다행히 그런 부정적인 것들이 정말 많이 줄어들었는데 이것은 매우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세월이 지나면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경우가 전 세계 여기저기 너무나 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밤거리 치안, 일본의 야쿠자, 중남미의 강도, 유럽의 소매치기, 필리핀의 납치범죄, 멕시코의 마약 조직 문제 등 시간이 지나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기도 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당연히 일부 중국인에 국한된 문제지만 몇몇 중국인의 이런 새치기나 무질서, 안하무인적인 행태는 중국인의 해외여행 또한 급격히 늘어나면서 해외에까지도 이제 익히 알려지게 되었는데, 중국인의 이러한 문제가 전술한 국가들 경우처럼 변함없거나 오히려 악화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개선되기를 기대해본다.
중국의 거리에서는 'KTV'라고 쓰인 간판을 자주 보게 된다. 이름만을 보면 무슨 방송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라오케(Karaoke)'가 설치된 술집이었다. Karaoke의 'K'와 화면이 나오는 'TV'가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한국보다도 훨씬 더 술자리 문화가 발달한 곳이 중국인지라, 거래선과 식사하거나 회식을 하게 되면 이러한 KTV에도 이따금 가게 되는데, 그 시절 대부분의 KTV에는 여성 종업원들이 술자리에 같이 참석하곤 했었다.
그런데 베이징의 KTV에 가 보면 일반적인 중국인들과는 좀 달라 보이는 유독 눈에 띄게 키가 훤칠한 여성들을 꽤 자주 보기도 했다. 그런 그녀들에게 고향을 물어보면거의 모두 동북쪽 러시아 접경 지역인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자료를 확인해봐도, 중국의 34개 성(省)급 행정구역 중, 중국 전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중국 수도 베이징을 제외하면 헤이룽장성 사람의 신장은 산둥성(山東省) 다음 2위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대체적으로 남쪽으로 갈수록 키가 작고 북쪽으로 갈수록 키가 커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2015년 자료 기준 헤이룽장성 20대 여성들의 평균 신장은 165.25cm로써 중국 남부 광저우의 여성 평균 159.78cm 보다 약 5.5cm 정도 더 크고, 역시 남쪽 지역인 광시(廣西) 지역 여성보다는 6.3cm 정도나 더 크다.
그런데 헤이룽장성 사람들 경우 신장뿐 아니라 체격에서도 전형적인 중국인과는 다소 달라서 팔다리가 길어 어찌 보면 러시아인이나 서양인 비슷하게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붙어 있는 현실이 어떤 영향을 끼쳤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농촌 지역의 젊은 여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화려한 도시 생활을 동경해서 대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은어쩌면 전 세계 공통적인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중국 북방지역에서는 베이징이 가장 크고 또 발달된 도시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러한 여인들은 베이징으로 많이 몰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 중에 신체 조건이나 체격이 다른 지방 출신들보다는 우월한 헤이룽장성 여인들이 자연스럽게 외모와 미모가 꽤 중요시되는 KTV에 보다 많이 진출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나중에 중국 남방지역 도시인 광저우(廣州)에 파견 근무할 때도 꽤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었다. 남부에서는 광저우가 가장 큰 도시이다 보니, 인근 지역의 시골에서 돈 벌기 위해 도시로 갈 때는 광저우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광저우 바로 북쪽에 있는 후난성(湖南省) 여인들 경우 인근의 다른 지역 대비 외모가 더 빼어난 여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보니, 광저우의 KTV에는 유독 후난성 출신 여인들이 많이 있었다.
중국은 한국 대비 땅덩이도 너무나 넓고 또 땅이 넓은 만큼 그 안에서 사는 민족들도 다양하다 보니, 이처럼 사람들의 외모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심지어 같은 한족(漢族)이라 하더라도 중국 북방의 한족과 남방의 한족은 얼굴 생김새나 외모, 체격 등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뚜렷한 외모의 차이를 보면 한족이라는 민족은 원래는 서로 꽤나 달랐던 다양한 민족이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시점은 한국 경제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던 70년대 말부터라 한다. 서울에서 각 지방 사투리를 자주 들을 수 있게 된 시점도 그 시절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50~60년대에는 서울이나 또 지방이나 일자리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 굳이 서울로일자리를 찾아 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중국 전 지역이 모두 다 같이 못 살았던 시절에는 굳이 대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혁개방 정책 도입 이후에는 이제 도시와 농촌 간 빈부차도 너무나 커지고, 대도시에는 돈이 넘쳐나고 있으니, 시골에서 그런 대도시로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베이징과 광저우 밤거리 KTV에서 일하던 그 젊은 여인들도 돈 벌기 위해 시골의 고향을 떠나서 각박한 대도시로 와서 힘들고 어렵게 사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을 텐데, 그러한 어려움의 과정을 발판으로 15~6여 년이 지난 지금쯤에는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고 있기를 기원한다.
11) 숟가락 도둑, 음료 도둑
베이징 부임 초기 집을 구하기 전 잠시 야스거(雅詩閣)라는 회사 바로 옆 거주용 호텔에 체류했었다. 그러다가마침내 거주할 아파트가 정해져 호텔의 짐을 정리하고 새로 이사할 아파트로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Check-Out 할 때 계산을 하는데, 호텔 종업원 말이 내가 머물던 방의 티스푼이 하나 없어졌으니 그 값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티스푼 값을 물으니 1 RMB라 했다. 한국 돈으로는 160원 정도 되는 금액인데, 금액의 크고 적음을 떠나서 마치 내가 가져갔다는 식으로 말하는 종업원의 주장이 꽤 기분 나빴다 처음 입주할 때 어떠한 물품들이비치되어 있다는 증명서에 내가 확인하고 서명을 했던 것도 아니고, 설령 그런 서명을 했더라도 청소하는 직원들이 수시로 그 방에 들락날락했고, 심지어 2005년 당시에는 베이징에 좀도둑도 꽤 많아서 혹 도둑이 들어왔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가능성을 다 배제하고 스푼이 없어진 것이 오로지 손님 책임이라고만 주장하는 것이 억울했다.
한참을 왜 그 스푼이 없어졌는지 나도 모른다고 설명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돌아오는 대답은 기계처럼 똑같았다. 스푼이 없어졌으니 160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결국에 내가 항복하고 티스푼 1개 값 1 RMB 추가로 지불하고 나왔는데그 금액이야 얼마 안 되는 적은 액수였지만 꽤나 불쾌했던 기억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똑같은 경우를 서울에서도 겪었던 적이 있었다. 그것도 꽤 고급 호텔에서 당했다. 주재기간 중 한국 출장을 오면 당시에는 거의 자동적으로 내가 다니던 회사의 계열사 호텔에 투숙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호텔이 만실이라 부득이 시청 근처에 있는 모 호텔에 투숙했다. 그런데 출장 일정을 마치고 Check-Out 할 때 직원 말이 내가 투숙하는 기간 내방 미니바에 있던 음료수 한 병이 없어졌으니, 그 한 병 값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내 동료들도 그랬지만, 나 역시 한국에서는 물론 해외 어디에서도 결코 호텔 객실 미니바 안에 있는 음료는 절대 손도 대지 않았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국에 출장 오면 내가 한국말을 못 하거나 한국 물정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도 아니고, 시청 인근의 호텔에서 1분만 걸어서 나가면 똑같은 음료를 거의 반의 반값 정도에 사서 마실 수가 있는데, 바보도 아니고 왜 그런 바가지 수준의 비싼 미니바 음료를 먹겠는가?
하지만 그 직원도 역시 막무가내였다. 자신들과 같은 유명 호텔은 결코 그러한 것으로 실수하거나 잘못 청구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게는 기억을 다시 잘 더듬어 보라고 했다. 결국 자신들은 틀릴 가능성은 전혀 없는 반면 손님은 틀릴 수 있다는 얘기인데, 역시 방법이 없었다. 내가 들어가기 전 호텔방에 있던 음료들 사진을 찍어 놓은 것도 아니었고, 초지일관 우기는데 오히려 나만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는 상황이었고 결국 그 음료수 값을 지불하고 나왔다.
나는 티스푼을 가져가지도 않았었고, 음료수도 역시 마시지 않았다. 단지 증명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가져갔거나 마셨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왜 고객만이 그 책임을 져야 했는지....
내가 만났던 중국인들과 겪었던 경험을 3편에 걸쳐 11건을 적었는데, 어찌 적다 보니 부정적인 얘기만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체험한 이 몇 건의 경험들이 무려 14억 명이나 되는 중국의 중국인 전체를 대표한다고는 당연히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중국에 있는 한국인들이 "중국에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다시 말하면 명확한 기준과 규정보다는 그때그때의 정황에 의해서 만사가 움직인다는 의미고 그것이 중국 사회의 특성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면 이 말이 결코 중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이 자주 통용되는 한국 사회도 그렇고,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라는 의미의 "Ça depend"이란 용어가 꽤 흔하게 사용되는 프랑스도 마찬가지일것이다. 또 미국 공항에서의 입국심사도 그 입국심사를 담당하는 심사관의 주관이 매우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어찌 보면 미국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결국 "어떤 나라는 어떻다."라고 단정을 지어서 말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의미다.
한국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듯이 중국에도 분명히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내가 전혀 겪어 보지 못한 수많은 다양함도 있을 것이다. 그런 다양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내가 경험했었던 아주 작은 일부분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몇 가지 사례를 적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