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중국, 중국인 (3-2)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3편 Beijing-21)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Beijing



21. 내가 경험한 중국, 중국인 (3-2)


중국에 거주하던 2005~6년 그 기간에 다양한 중국인들을 만났고 또 그들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했다. 물론 중국어나 중국 문화 이해에 한계가 있어서 완벽하게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경우도 혹 있었겠지만, 어쨌든 당시 그렇게 직접 보고 체험한 것들을 (1) 편에 이어 글로 올린다.



5) 중화민국(中華民國)의 눈물


중국을 지배하던 장개석은 모택동의 공산당군에게 패해서 대만으로 도피한 후 그곳에서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는 국가를 수립했다.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의 국가는 당초에는 이 중화민국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고 외교 관계를 맺었었다.


하지만 모택동 공산정권의 실효적인 대륙 본토 지배가 점차 공고화되자, 미국 등 대다수 국가는 결국에는 중국 본토를 지배하는 모택동 정부와 수교를 하고, 대신 모택동 정부가 요구하는대로 중화민국과는 단교했다. 한국도 역시 중국과 수교를 위해 1992년 8월 대만의 중화민국과 단교했다.


내 여권에는 대만에 출장 갔을 때 입국심사 과정에서 찍힌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베이징에서 운전면허증 취득을 위해 관공서를 방문해서 그 여권을 제시했더니, 그곳에 근무하던 중국 경찰 두 명이 내 여권을 훑어보던 중 중화민국이라는 그 도장을 발견하고는 "흥! 중화민국?"이라고 마치 비웃듯 콧방귀를 뀌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웃기고 있네, 대만이 국가야?" 뭐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내가 대만 사람도 아니고, 무슨 죄를 진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이 그런 분위기에서 험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 때는 순간적으로 내 여권에 중화민국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이 뭔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사진) 여권에 찍혀 있는 대만 및 중국 출입국 기록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한때 이스라엘을 방문한 기록이 남아 있는 여권을 갖고 중동 다른 아랍 국가로 출장 가면, 여권에 찍힌 이스라엘 출입국 기록이 문제가 되어서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되기도 했었다. 2005년 그 당시에는 중국이 요즘만큼 국제화되었던 시기도 아니라서 혹 그러한 아랍 국가들에서처럼 대만 출입국 기록이 있는 여권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지 은근히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 경찰은 그렇게 콧방귀 한번 뀌고는 이내 여권을 툭 던져 돌려주었다.


(이스라엘 출입국자 아랍 국가 입국 불가)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19/06/25954/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운전면허증은 받았는데, 한편으로는 이 경험을 통해 대만에 대한 중국 본토 일반인들의 인식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사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압박은 정말 끈질기고 철저하다. 국제사회에 대한 중국의 끊임없는 압박과 공작으로, 대만은 이미 세계 거의 모든 국가로부터 단교를 당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국제행사에 대만이 참여할 때는 공식 국명인 'Republic of China'가 아니라, 중국 일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뉘앙스가 꽤 강한 'Chinese Taipei'라는 표현으로만 참여가 허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 버렸다. 대만 국기나 국가도 당연히 사용 못한다.


과거 1971년까지는 미국, 소련, 프랑스, 영국과 함께 UN 안전보장 이사회 '5대 상임이사국' 지위까지 누렸던 대만이 이제는 국가로조차도 인정받지 못하고 중국의 주도하에 전 세계에서 철저하게 '왕따' 당하고 있으며, 공산당 치하 중국 일선 경찰들이 콧방귀 뀌는 대상으로까지 전락한 것이다.


대만 인구는 약 2400만 명으로 결코 적지 않다. 호주 인구 2500만 명과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그 많은 대만인들이 정치, 경제, 국방, 외교 등 어느 분야에서도 중국의 통치나 지배를 전혀 받지 않는 상태에서 하나의 독립국 국민으로서 생활하고 있다. 해외여행에도 대만 정부에서 발행한 여권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국제행사나 회의에 자신들의 국명이나 국기는 이제 사용할 수 없으니 그런 처지에 있는 대만인의 상실감과 분노, 자괴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2016년 초 발생한 '쯔위 사태'라고도 불리는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당시 17살의 대만 국적 소녀가 대만 국기를 들고 한국 방송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중국 네티즌과 중국 정부의 집중 공격을 받고 결국 눈물로 사과해야 했던 사건인데, 대만인은 같은 중국에 속하는 동족(同族)이라는 것을 그토록 강조하는 중국이 이와 같이 대만인을 괴롭히는 것에 있어서는 그 어느 민족도 감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집요한 것을 보면 동족에게 가장 잔인한 짓을 하는 사람이 외국인이 아니라 바로 같은 동족인 셈이다.


(국기 대신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하는 대만 선수단)

https://kini.kr/1679

(대만 국기를 들고 방송했다는 이유로 사과하는 '쯔위')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1201194753625


중국이 이렇게 대만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지속 압박하니 당연히 대만인의 반감이 점점 늘어나 대만 여권에 표기되어 있는 대만의 중국어 공식 명칭 '중화민국'이라는 문자 위에 '대만국(台灣國)'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해외여행 다니는 경우까지 생기는 실정이다. 중국(中國)이든 중화(中華)든 중국이 연상되는 단어는 철저히 배제하고 중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전혀 새로운 국명을 사용하자는 개념이다.


(여권에 '대만국'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실제 사례)

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330601009



6) 안내하지 않는 안내원 (나, 몰라......)


매우 고급스러운 중국의 대형 쇼핑몰에서 회사 동료와 함께 겪었던 일이다. 방문하려는 매장을 찾을 수가 없어 쇼핑몰 안에 있던 안내 데스크로 찾아가서 근무자에게 매장 위치를 문의했다. 그런데 그녀로부터 들은 답은 정말 한동안 잊지 못할 정도로 너무도 황당한 답이었다.


그녀는, 위치를 문의하는 우리는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멍 때리는 듯한 시선으로 허공만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不知道(부즈다우)"라고 답을 했던 것이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안내 데스크 직원이 "몰라"라고 답을 한 것이니 코미디 방송에서나 볼 법한 그런 장면이었는데 원래 근무태도가 그런 사람인지 아니면 순간 무슨 충격받은 일이 있어 그때만 그랬던 건지 알 방법은 없었지만, 어쨌든 너무 단호하고 자신 있게 "몰라"라고 답을 해서 내 동료나 나나 그저 어이없기만 했을 뿐 따지거나 화를 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중국이 정치적으로 공산주의 국가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요소가 다분한 개혁개방 경제 정책이 도입된 이래 기업체의 보수나 평가체계는 어쩌면 한국이나 미국보다도 오히려 더 심하게 자본주의적으로 변해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개혁개방 이전의 오래전 중국 공무원들처럼 그렇게 무의미하고 성의 없는 답변을 듣는 경우는 2005년 당시도 이미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쇼핑몰에 근무하고 있던 그녀의 그런 답변은 더욱 의외였다.


서울의 롯데나 신세계 백화점 안내데스크에 가서 매장 위치 문의했더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그 안내데스크 직원이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나 몰라"라고 답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답을 들었던 셈인데, 지금 다시 생각해도 참 기가 막히는 경험을 했던 것 같다.



7) 택시 기사의 내로남불


언젠가 회사에 택시를 타고 갔던 적이 있는데, 약 60 RMB (한화 약 만원) 정도의 요금이 나왔던 상황에서 100 RMB 지폐를 주었더니, 택시기사가 잔돈이 없어서 40 RMB를 줄 수 없다고 했다. 나 역시 잔돈이 없다고 했더니 택시기사는 잔돈도 없이 택시를 탔냐는 식으로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잔돈 준비가 반드시 손님만의 의무는 아닐 것이고 그 택시 기사도 잔돈을 준비 못한 것은 마찬가지 상황인데, 두 사람 모두 잔돈이 없는 그런 상황이 일방적으로 승객만의 잘못인 것처럼 택시기사는 계속 투덜댔다. 그런데 내 눈치를 보는 기사의 모습을 보다 보니 실제 잔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외국인으로 만만해 보이는 내가 시간이 없으면 잔돈도 받지 않고 그냥 떠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잔돈이 아까운 것을 떠나서 투덜대며 내 눈치 보는 그 택시기사가 괘씸해졌고, 난 내리려 하던 택시 문을 닫고 잔돈 바꾸어서 줄 테니 근처 편의점으로 가자고 했다. 마침 그때 택시를 타려는 손님들이 왔다가 내가 다시 올라타는 것을 보더니, 다른 택시를 찾아 탔다. 택시기사는 잔돈도 없는 손님 만나서 다른 손님까지 놓쳤다며 더 크게 투덜대며 운전대를 막 치고 한탄하는 모습까지도 연출하기 시작했는데 거의 연기자 수준이었다.


물론 그 연기 와중에도 중간중간 백미러로 내 눈치는 계속 보고 있었는데, 내가 전혀 흔들림이 없자 결국에는 모든 걸 포기하고 근처 편의점으로 택시를 몰았고, 그곳에서 나는 뭔가를 사고 잔돈을 받아 정확하게 60 RMB만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물론 치안이 우려되는 지방의 외진 곳에서는 외국인인 내가 그렇게까지 택시기사와 힘겨루기를 할 수 없었겠지만, 대낮 그것도 사람이 바글거리는 베이징 시내 한복판 사무실 바로 앞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던 상황이라, 택시기사의 횡포에도 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후진국이라 이러한 횡포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유감스럽게도 사실 서울에서도 똑같은 경험을 겪어본 적이 있다. 물론 그때는 2000년대 초반으로 좀 오래된 일이기는 하다. 당시는 택시 카드 결제가 완전히 정착되기 이전인데, 하루는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 급하게 택시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요금이 만 이삼천 원 정도 나왔는데 만원 짜리 지폐를 두장 지불했더니 택시 기사 말이 잔돈도 준비하지 않고 택시를 탔냐는 것이었다.


덧붙여서 자신도 잔돈 역시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잔돈 준비는 마치 손님만의 의무인양 짜증을 내고 투덜대기 시작했다. 결국 마찬가지로 근처 편의점으로까지 이동해서 잔돈을 구해 택시비를 지불했다. 그런데 한국의 택시기사는 중국 택시기사보다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5천 원짜리 지폐를 지불했더니 그것도 안되고 오직 천 원짜리 지폐로만 달라고 했다.


택시 탈 때 잔돈 보유 여부를 승객이 기사에게 문의를 하지 않았던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택시기사 역시 승객에게 사전에 확인하지 않은 것도 동일한 잘못일 텐데, 쌍방 모두 동등한 책임이 있는 상태에서 승객 탓만을 하려는 것은 요즘 흔한 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경우는 한국에서나 중국에서 모두 극히 일부 예외적인 경우의 사례일 것이다.



8) 옌샤(燕莎)의 밤거리


베이징 시내 쿤룬 호텔(昆仑饭店)과 캠핀스키 호텔(凯宾斯基饭店) 인근에는 외국대사관 및 외국인 거주시설이 많이 밀집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는 수입제품을 많이 판매하는 '옌샤(燕莎)'라는 쇼핑몰도 있었는데, 다소 특이하지만 이 쇼핑몰 앞에서는 베이징 시내 중심가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매춘부들을 유독 많이 볼 수 있었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요즘도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던데, 이 쇼핑몰 지하에는 '서라벌'이라는 대형 한국 식당도 있어서, 회사의 회식이나 지인들과 식사를 할 때는 그 식당에 자주 곤 했었다. 그런데 해 떨어진 저녁에 갈 때에는 어김없이 그 쇼핑몰 앞 거리를 배회하는 매춘부들을 볼 수가 있었고, 담배라도 필 겸 식당에서 나와서 잠시 건물 앞에 서 있으면 수시로 그녀들이 다가와 호객행위를 하곤 했다.


(지하에 한국 식당 서라벌이 있던 쇼핑몰 '옌샤')

https://j.map.baidu.com/00/RPx


원래 외국인들이 많은 지역인 데다가, 근처에 대형 호텔도 두 개나 있으니 그곳에 숙박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호객을 하는 것 같았는데, 당연히 우리 일행 누구도 그런 그녀들의 호객에 대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덕적인 문제를 떠나서도 무엇보다 밤거리를 배회하는 그런 여인들의 건강이나 질병 상태를 전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꽤 무모한 행동을 할 만큼 미련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지만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 수치들 경우에는 그 수치를 그대로 신뢰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솔직히 적지 않은데, 당시 AIDS 포함 중국 내 성병 보유자 및 발병률도 공개되는 수치보다는 훨씬 더 심하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중국 성병 관련 기사)

https://m.dailian.co.kr/news/view/8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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