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중국, 중국인 (3-1)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3편 Beijing-20)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Beijing
20. 내가 경험한 중국, 중국인 (3-1)
중국에 거주하던 2005~6년 그 기간에 다양한 중국인들을 만났고 또 그들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했다. 물론 중국어나 중국 문화 이해에 한계가 있어서 완벽하게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경우도 혹 있었겠지만, 어쨌든 당시 그렇게 직접 보고 체험한 것들을 글로 올린다.
1) 베이징의 바바리맨
한참 건축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베이징 시내의 한복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인도 옆에 있던 공사장 현장 출입구 주변을 지나가는데, 매우 두터운 외투를 입고 그 옆에 서 있던 어떤 사람이 갑자기 외투 한쪽을 젖히더니 그 안을 보여주었다. 그 시절 중국에 바바리맨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영락없이 바바리맨처럼 보이는 행동이었다.
무심결에 그 안을 바라보니 벌거벗은 상태는 전혀 아니었고 옷은 다 껴 입은 채로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무슨 전동드릴 같은 것을 손에 들고 보여주었다. 나는 그가 왜 그걸 갑자기 보여주는지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의 행동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다소 긴장한 것처럼 보이던 그 사람 얼굴만 다시 한번 쳐다보고 그대로 지나쳤는데, 생각할수록 그 행동의 의미가 너무도 궁금해서 좀 더 가다 다시 뒤돌아보니 내 뒤에 걸어오던 행인에게도 그는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회사 사무실로 출근해서 현지인 직원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고 그게 무슨 의미인 것 같냐고 문의했더니 그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즉, 공사장에서 훔친 물건인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사겠느냐고 물어보는 행동이라고 했다. 그리고 굳이 그 공사판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 물건이 바로 그 공사판 현장에서 막 사용되던 일종의 '정품'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개념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중국도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2005~6년 당시만 해도 자신이 일하던 공사장에서 훔친 물건을 다른 곳에서도 아니고 바로 그 공사장 앞에서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2) 보물과 순박한 농부
베이징의 거리를 걷다 보면, 도로변에 좌판을 깔고 허름한 옷차림에 흙까지 그대로 묻어 있는 고대 유물 같은 물건을 한두 점 정도 진열해 놓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시골의 순박한 농사꾼이 밭을 갈다가 우연하게도 고대의 유물을 발견해서 베이징 같은 대도시로 와서 팔려고 내놓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언론에도 기사화되었던 것처럼 밭을 갈다 우연히 매우 귀한 고대 유물을 발견한 농부도 실제로 있었다 한다. 그렇지만 중국의 밭이 온통 고대 유물로 뒤덮여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상식적으로 봐도 밭을 갈다 우연히 유물을 발견한 농부들이 베이징 거리에는 너무도 많았다. 결국 그들 대다수는 실제 농부가 아니고, 그들이 흙을 묻혀 가져온 유물처럼 보이는 물건도 당연히 진품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베이징에 거주하던 기간 내내 그처럼 우연하게 발견한 유물이라며 길가에 전시하고 팔려는 사람들을 계속 볼 수 있었는데, 과연 그들에게 속아서 비싼 값을 주고 그런 물건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러한 물건을 사는 수요가 있으니 그렇게 팔고 있는 공급도 역시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계속 존재하고 있었던 것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3) 어려운 학생으로 알았는데 차가 아우디
중국에 막 부임한 주재원들 경우에 중국어 개인교습을 받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회사에서 일부 비용을 지원해 주기도 했지만, 2005~6년 당시만 해도 중국 물가가 아직은 매우 낮았던 시절이라 교습비 자체가 꽤 저렴해 큰 부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어를 배우려는 그러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중국어 개인 교습을 해 주는 대학생들을 '후다오라오스(辅导老师)'라고 했는데, 한국말로 하면 '지도 교사'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중국 부임 전 본사에서 3개월 과정 중국어 교육을 받기는 했었지만 그 정도의 학습으로는 실질적으로 중국어 회화가 거의 안 되는 것이 현실이라 후다오라오스를 채용해서 중국어를 배우기로 했다.
후다오라오스는 보통 경제적으로 어려운 대학생들이 많이 했는데 사람이 구해졌다는 연락을 받고 주재원 후배와 함께 회사 근처 식당에서 면접을 보기 위해 그녀를 만났다. 내가 중국어로 대화가 거의 안되던 실정이라 부임한 지 오래됐고 중국어도 꽤 잘하는 후배의 통역 도움을 받기 위해 후배와 같이 나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보니 옷차림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꽤나 세련됐었고 또 나이 역시 대학생이라기보다는 20대 후반의 직장인처럼 보였다. 외모만으로는 알 수 없겠지만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전혀 어려워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통상 이렇게 면접보고 헤어질 때는 어려운 여건에 있는 학생 입장을 고려해서 중국돈 100 RMB 정도 교통비로 줘야 한다는 후배 말에 헤어질 때 차비로 하라고 100 RMB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100 RMB면 한국돈으로 2만 원이 안 되는 돈이지만, 최근과 달리 당시 베이징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그렇게 적은 금액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돈을 받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절하면서, 자신은 자가용을 타고 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아서 허름한 중고차를 하나 사서 타고 다니나 보다 생각하면서 그녀를 주차장까지 배웅해 줬는데 그곳에 도착하더니 그녀가 갑자기 독일산의 최고급 아우디(Audi) 차문을 덜컥 열고 그 차를 타고 가는 것이었다. 그 차는 내 후배나 내가 운전하던 차보다 훨씬 비싼 차였고, 우리 둘 다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멀어져 가는 그녀의 차를 뒤에서 한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에 그 여성을 소개해준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그녀가 나의 후다오라오스 하는 것에 관심 없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대화가 안 될 정도로 내가 중국어를 못해 생각이 없다 했다는데, 소개해준 사람 얘기는 아마 그것은 핑계이고 사실은 내가 나이 많은 아저씨 같은 스타일이라서 거절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그녀 경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중국어 선생을 하려 했던 것이 아니고, 한국의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은 멋지고 세련된 한국인과의 만남과 사귐을 기대하고 나왔는데,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사람과는 전혀 비슷하지도 않은 전형적인 노땅 월급쟁이 같은 모습의 아저씨가 나와서 턱 하니 앉아 있으니 바로 포기를 했던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날의 면접도 우리가 그녀를 면접 봤던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그녀가 우리를 면접 본 셈이었다.
중국도 2005년이면 이미 돈이 꽤 많은 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였는데, 그녀 경우 20대 후반에 당시 아우디까지 운전하고 다닐 정도였으면 그녀 부모의 재력은 이미 한국의 웬만한 부자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우리가 내밀었던 그 100 RMB가 그녀에겐 얼마나 가소로웠을지.... 100 RMB를 받아야 했던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4) 군인용 승용차 경적 소리
요즘은 거의 다 없어졌지만, 한국에서도 과거 한때 군인의 특권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2005년경 경험했던 중국 군인들의 특권과 위세는 역시 대단했다.
베이징 시내에서도 군 간부들만이 타고 다니는 세단과 같은 승용차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차량 번호판으로도 군인용 차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보다는 경적 소리가 일반 차량들과는 전혀 달랐다. 소리의 크고 작음이 달랐던 것이 아니라 소리의 종류 자체가 달랐는데, 매우 묵직한 소리가 나서 그 소리만 들어도 그 차가 군 간부가 타고 있는 차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도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
결국 군 간부가 타고 있는 차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알려서 주변의 운전자들에게 스스로 유의하라는 묵시적인 압박을 주었던 셈인데, 수시로 눌러대는 그 특이한 경적소리가 꽤 거슬려 길을 걷거나 운전하다 그 소리를 들을 때에는 몹시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서울에서 군인 장성들이나 장교들이 모두 그렇게 특이한 소리를 내는 경적이 장착된 차량들을 타고 서울시내 도로에서 빵빵거리며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인데, 한국에서는 군인들의 특권이 꽤나 컸던 과거에도 불가능했던 일이지만 당시 중국에서는 가능했다.
내 차 운전기사가 직접 본 사건인데, 심지어 군인이 탄 차를 경찰이 교통위반으로 단속을 했더니, 군인이 조용히 차에서 내려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그 경찰의 따귀를 때리는 것도 봤다고 했다. 그만큼 군인의 위세는 대단했던 셈인데, 이런 사건에서 이외에 또 다른 특이한 중국 사회의 한 면모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렇게 경찰 따귀를 때리는 군인에게 주변 행인들이 오히려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일반시민의 생활과 밀접한 접촉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경찰이 그만큼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 군인에게 당하는 경찰의 모습에 행인들이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
우리 회사의 법인장 운전기사는 차 뒤 트렁크에 항상 중국 군대 얼룩무늬 군복으로 만든 번호판 덮개를 갖고 다녔다. 그러다 급하게 어딘가를 가야 할 때는 그 덮개를 꺼내서 차 앞뒤 번호판을 모두 가리고 과속으로 운전하며 다녔다.
심지어 톨게이트도 그렇게 지나다녔다. 실제 중국 군인들이 급한 일이 있을 때 그렇게 하고 다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 사례가 있으니 그 운전기사도 그걸 흉내 냈던 것 아닌가 싶은데 그렇게 군인 차 행세를 하며 번호판 가리고 다니는 것이 문제가 돼서 경찰에 단속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공개적으로 번호판을 가리고 다녀도 경찰조차 단속하지 않을 만큼 군용 차량의 위세가 대단했다는 말인데 요즘도 그런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