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에 따라 항공기가 다소 늦게 출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그런 경우는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발생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특이한 현상은 출발이 지연됨에도 불구하고 일단 예정대로 승객들을 항공기 기내로 탑승시킨 후에, 그 비좁은 항공기안에서 마냥 대기하게 만드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10~20분 기내에서 대기하는 경우는 정말 운이 너무 좋은 경우였고, 30분, 때로는 1시간 이상 기내에서 출발도 하지 않고 마냥 기다리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움직이지도 않고서 그렇게 가만히 정지해 있는 기내에서 오랜 시간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려면 정말 너무도 갑갑했다.
다른 나라 공항의 경우처럼, 출발이 지연될 경우는 승객을 항공기에 태우지 않고 더 여유롭고 활동이 자유로운 공항의 로비에서 기다리게 하면 될 텐데, 왜 중국 항공사는 승객을 좁은 항공기에 탑승시켜 놓고서 그곳에서 기다리게 하는지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항공기가 정지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에어컨 가동도 제대로 되지 않는 항공기 특성상 한여름에는 냉방조차도 제대로 안 되는 찜통 같은 기내에서 마냥 기다려야만 하기도 했었는데 그런 더위와 갑갑함을 참지 못해 몇몇 중국인이 항공기에서 내리게 해달라고 소동을 부리는 경우를 본 적도 있었다.
중국 항공사들이 그렇게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승객이 일단 정시에 모두가 탑승하면 정시 출발로 간주되기 때문에 정시 출발 비율을 높이기 위해 그런다는 얘기도 있는 등 몇 가지 추측이 있었는데 확실하지는 않은 것 같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중국도 이제 스스로 미국과 대등한 G2 국가라고 자부하고 있는 만큼 항공사나 공항시설 운영 효율관점에서만 승객을 대하기보다는 승객들의 입장에서 공항을 운영하는 것으로 체제가 많이 바뀌어져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 짝퉁이 가득했던 도시
중국은 '짝퉁 천국'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가짜가 많았다. 짝퉁은 명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식용유, 술, 계란 등 먹는 음식에까지 거의 모든 것들에 짝퉁이있었다.
변두리도 아닌 베이징 시내 한복판에도 짝퉁만파는 초대형 쇼핑몰이버젓이 있었는데, 이제는 세계적 관광명소로까지 그 명성이 자자한 '시우쉬에이지에(秀水街)'라는 짝퉁 전문 몰이 그것이다. 이 몰은 천안문에서 불과 4km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을 만큼 도심에서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명품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나는 사실 그 몰의 존재 자체를 몰랐었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한국에서 온 지인이 그 몰에 가서 짝퉁 명품을 사겠다고 해서, 그 지인과 함께 처음으로 그곳에 가보게 되었다. 가보니 듣던 그대로 6층이나 되는 대형 건물 가득히 의류, 가방, 시계 등 온갖 짝퉁 명품들이 끝도 없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 소문으로 들었던 것처럼, 매장 주인이 부르는 가격 반값 이하에 물건을 흥정하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가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 반값 정도의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해도 때로는 역시 바가지를 쓴 가격이라고 하니 도대체 그곳에서의 실제 적정가격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었다.
베이징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큰 대형 짝퉁 전문 쇼핑몰이 존재한다는 것이 꽤나 의외였는데, 인터넷을 검색해서 보니 그로부터 15년이나 지난 2020년 현재에도 이 몰은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으며, 짝퉁 판매도 변함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한국에도 한때 짝퉁 제품이 매우 많았고, 지금도 일부 여전히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그렇게 시내 중심에서 버젓이 내놓고 노골적으로 팔지는 못하는데, 짝퉁에 대한 인식과 판단기준이 우리와는 많이 다른 것인지 중국은 세월이 지나도 변화가 없었다.
먹는 음식도 짝퉁이 있었는데, 짝퉁 음식은 짝퉁 명품과는 경우가 좀 다르다. 짝퉁 명품을 사고파는 사람은 그가격이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에 그것이 짝퉁인지 상호 간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하지만 건강과 생명에 직결될 수 있는 음식을 짝퉁인지 알고서도 사 먹을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인바, 짝퉁 음식 경우 구매자는 완전히 속아서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80~90년대 술집에서 파는 비싼 양주들은 거의 100% 가짜였지만, 당시 중국의 술집에서 파는 양주 역시 거의 100% 가짜였다. 하지만 가짜인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접대나 회식 등 부득이한 사유로 술집에 가서 그 짝퉁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는 아예 주문하면서 그나마 머리 좀 덜 아픈 가짜 술로 달라고 사전에 간곡하게 당부하는 동료도 있었다. 술집뿐 아니라 상점에서 판매하는 술도 가짜가 있어서 그 술을 사 마시고 사망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나중에 대만법인에 근무할 때 대만의 중요 거래선들과 중국 충칭(重慶)에 가서 그곳에서 신제품을 소개하는 행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법인 직원이 중간 기착지인 홍콩에서 술을 여러 병 사길래, "그 무거운 것을 왜 이곳에서 사느냐, 도착해서 사도 되지 않냐?"라고 했더니, 대만 직원들 말이 중국 술은 가짜가 워낙 많아서 대만이나 홍콩에서 사 가는 술이 아니면 대만인 거래선들이 불안해서 술을 잘 마시지를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에 짝퉁이 많았다는 것이 그만큼 널리 알려졌다는 얘기인데, 나 역시 유명 호텔 로비에서 와인 한두 잔 마시고 마치 얼굴이 마비되는 것 같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특이한 증상으로 고생했던 적이 있다. 꽤 유명한 호텔에서 마시는 와인조차도 안심할 수 없는 곳이 중국이었던 셈이다.
최근에도 여전히 중국의 짝퉁문제가 예전만큼 심각한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가짜 음식을 먹어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는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상황으로 꼭 바뀌어 있었으면 좋겠다.어쩌면 바로 이것이 다른 것들보다 먼저 중국이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중국몽(中國夢)이 아닐지....
3) 유럽만큼흔한 중국인의 동거
유럽에 거주할 때 미혼 남녀가 동거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두 번 놀란 적이 있다. 첫 번째는 우선 그런 동거가 너무나도 흔하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런 동거를 다양한 제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보호하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그런데 같은 동양권 국가인 중국에 와서 보니,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또다시 두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번째는 역시 중국에 동거나 너무나도 많았고 두 번째는 누구도 이 동거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너무도 의외였지만 그만큼 중국에서는 혼전 동거가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던것이다.
나와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30대 초반 조선족 여직원 역시 한족 남성과 동거하고 있었는데, 동거한 지가 꽤 됐다지만 여전히 결혼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미 오래전부터 동거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부서원 모두 다 알고 있었는데, 심지어 회사의 회식에도 그 남자를 데리고 나와 동거남이라고 우리에게 소개해 줄 정도였다. 그렇게 사귀다 혼인을 하기도 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는데, 그 직원 경우는 7~8년 정도 그렇게 동거하다가 얼마 전에 정식으로 결혼했다.
과거 한때 여성들에게는 전족(纏足)을 하게 할 정도로 남성 중심적이었고, 또 공산화 이후에는 죽(竹)의 장막이라 불릴 정도로 폐쇄적이었던 중국 사회가, 적어도 남녀 간의 혼전 동거 관련해서는 급속하게 서구화된 한국사회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었다는 것이 꽤 의외였다.
그렇게 동거가 흔하게 된 배경을 분석하는 설명도 많은데, 그중에는 중국 경우 국토가 매우 넓은 상황에서, 근대화와 함께 대학 생활이나 직장 생활 등을 위해 고향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야 하는 경우가 늘다 보니, 머나먼 객지에서 살아야 젊은 남녀들이 서로 의지하고, 또 주거비, 생활비 등도 절감하기 위해서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물론 요즘 한국의 젊은 남녀들 또한 성적으로는 이미 동거 상태인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그런 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공식적으로 결혼하기 전에는 그렇게 보란 듯이 노골적으로 동거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공개하는 경우는 아직 그다지 흔하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중국에서의 동거 현상은 한국과는 좀 다른 것 같다.
4) 체육복이 교복
아침 출근길을 걸어가다 보면 등교하는 학생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마주치는 학생들을 보면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한결같이 체육복을 입고 학교에 간다는 것이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또 남학생이건 여학생이건, 체육복의 종류가 바뀌기는 했지만 어쨌든 복장은 변함없이 체육복이었다.
결국 체육복이 일종의 교복 같은 개념이었는데, 옷을 통해 표출될 수 있는 빈부차의 느낌을 줄여주고 거동하기 편하게 활동성을 높여주는 것이 그렇게 체육복을 교복처럼 입게 된 배경이라 한다. 하지만 나름대로 한참 멋 내고 싶은 그 나이 또래의 학생들에게 펑퍼짐한 체육복은 한편으로는 또 적지 않은 제약을 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체육복을 입지 않고 한국과 같은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을 본 적도 있었는데, 베이징에서는 아니었고 나중에 광저우에6개월간 파견 근무할 때 그곳에서 봤다. 광저우에서도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은 체육복을 입고 다녔지만, 간혹 한국에서 보던 것과 같은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을 볼 수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라서 그랬는지 유난히 세련된 모습으로 보였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우리도 한때는 중고등학생들 모두가 시커먼 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으니, 중국의 학교들이 체육복으로 복장을 통일하는 것이 굳이 공산주의 국가이기에 그렇다고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과거 한국의 학생들이 입던 그 불편하고 시커먼 교복이 좀 더 편리하고 저렴한 체육복으로 바뀌었을 뿐인 것 같은데, 어쨌든 다른 국가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했던 다소 특이한 현상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