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 (17-17)
50년대 일기 그 이후......
1925년 3월 8일부터 2001년 1월 10일까지
76년간의 시간을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살다 떠나신
아버지의 1950년대 20~30대 젊은 시절 일기
아버님의 일기는 전편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없다. 일기를 더 쓰셨는데 내가 못 찾는 것인지, 아니면 애당초 더 이상의 일기를 작성하지 않으셨는지 아버님께서 이미 돌아가신 현시점에서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더 이상의 일기는 찾을 수 없다.
앞부분에 공유한 일기가 1950년대 즉 아버님께서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 사이에 작성하신 일기라면, 아래 사진들은 그 이후의 사진들로 보인다. 즉, 30대 후반 이후의 사진이다.
사진을 찍은 정확한 년도는 알 수 없지만, 아버님 외모나 사진 속 분위기로 판단해서 연도를 추정 시간 순으로 올린다.
아버님은 현재는 '문화재청'이라 불리는 기관의 전신인 '문화재 관리국'에서 근무하시는 등, 문화, 예술 부분 관련 공무원으로 한동안 일하셨다. 그때 한국의 문화, 예술 관련 인력들과 동남아를 순방했던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이 사진들은 아마 그때 동남아 다니시면서 같이 여행했던 분들과 찍은 사진이 아닌가 싶다.
역시 문화재 관리국 계실 때 동료분들과 찍은 사진인 것 같다.
군함 앞에서 찍은 사진도 있고, 공사 중인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도 보인다. 우측 아래 자동차 앞에서 찍은 사진에는 1999년 없어진 '상업은행'이라는 은행명이 적힌 간판도 뒤편에 보인다.
사진 속 차 번호판은 이전 사진들에서 보던 번호판보다는 이미 많이 복잡해져 있다. 그만큼 그 사이 서울에도 차가 많아졌다는 의미인 것 같다.
아버님이 근무하셨던 직장 앞에서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뭔가 좋은 일이 있으셨는지 표정이 꽤 밝아 보이신다.
장소는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인 것 같다. 하단 중앙에 있는 사진에
1965년이라는 기록을 보면 아버님께서 40세이실 때 찍은 사진이다.
위쪽 중앙의 사진은 내가 태어난 돈암동 집의 정원에 있던 의자다. 나도 이 의자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공무로 제주도 서귀포 가셨을 때 찍은 사진. 1967년이라고 적혀 있으니 42세 때 사진이다. 사진 속 아버님 얼굴에 서서히 중년의 나이 흔적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정확한 장소는 기억이 없는데, 문화재 관리국 계실 때 문화재 관련 서울 시내 어딘가에서 대규모 공사를 했었다. 그때 아버님께서 그 사업을 담당하셨는지 자주 그 현장에 다니셨었는데, 휴일에는 어린 나도 아버님 따라서 다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우측 2번째 양복 입으신 분이 아버님이다.
역시 같은 그 공사 현장을 방문하셨을 때 찍은 사진. 양복 입으신 분이 아버님.
문화재 관리국 계실 때 동료분들과 찍은 사진인 듯하다.
왼쪽 끝에 계신 분이 아버님.
사진에 72년이라는 기록이 있으니 아버님이 47세이실 때 찍은 사진. 반팔 흰색 셔츠 입으신 분이 아버님.
73년이라는 기록으로 보면 아버님께서 48세이실 때 찍은 사진. PC 한 대도 없는 70년대 예전 사무실 공간을 보니 좀 생소하다.
역시 73년 48세이실 때 찍은 사진. 지인분들과 점심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찍은 사진 아닌가 싶다.
어머님과 함께 찍은 사진인데, 어느 바닷가에 여행 가셔서 찍은 사진 같다.
직장 생활을 마치신 이후에는 경기도 용인에서 주말농장을 하셨다. 그 주말농장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건축 중인 둥그런 건물은 동물원이었고 여기에 원숭이도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누나가 대학 때 사진이니, 아버님께서는 50대 초반이실 때 찍은 사진이다. 역시 용인의 주말농장에서 찍은 사진인데, 뒤에 보이는 차는 과거 한 때 국민차로 불렸던 현재 '포니'처럼 보인다. 저 당시 집에 포니차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분명치 않다.
아버님 50대 중후반쯤 되실 때 찍은 사진인 듯하다. 한국은 아닌 것 같고 동남아 어딘가 여행 가셔서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사진에 87년이라는 기록으로 볼 때, 아버님 연세 62세 때 찍은 사진이다. 60이 넘으셔서 어머님과 일본 여행을 한번 다녀오신 적이 있는데 그때 사진인 듯하다. 이제 흰머리와 주름이 역력하게 보인다.
어머님은 고향이 서울이신데 노년에는 강원도 평창 산에 주로 거주하셨다. 아버님도 어머님과 함께 평창에 같이 가시긴 하셨는데, 친구분들도 만나 한잔도 하셔야 하셔서 서울에 자주 왔다 갔다 하셨다. 평창에서 어머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60대 중후반 시절의 사진인 듯 보인다.
모 대학 교수로 재직 중 47살이라는 아직은 좀 더 살아야 할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동생이 일본에서 10여 년간 유학하던 시절 아버님께서 동생을 만나러 일본을 방문하신 적이 있다. 그때 일본에서 동생과 찍은 사진이다.
1992년이니 아버님 연세 67세이실 때인데, 함께 저렇게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특별한 질병도 없던 동생이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아버님은 2001년 77세, 동생은 8년 뒤 2009년 47세로 이 세상을 떠났다.
98년 사진이니 아버님 73세 때 사진이다. 현재 남아 있는 생전 아버님의 마지막 사진이다.
위 사진을 찍으신 후 약 3년 뒤 2001년 1월부터는 이제 아버님 육신의 흔적은 이곳 '동화경모공원'에 계신다.
아버님 고향, 평안북도 땅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휴전선 인근으로 아버님께서 생전에 직접 정하시고 구하신 자리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약 3천 년 전 솔로몬 왕이 남긴 말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