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 (17-11)

by SALT

1925년 3월 8일부터 2001년 1월 10일까지

76년간의 시간을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살다 떠나신

아버지의 1950년대 20~30대 젊은 시절 일기




Nov 7. 1952


우연(偶然)한 기회(機會)에 그리고 영원(永遠)히 잊으리라고 생각(生覺)했던 April 12. 1952 이후의 Miss Rhee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U.S.I.S에서 만나 이야기할 게 있다고 하니 어쩐지 순순(順順)이 Rhee는 응(應)하여 '샘'에서 기다리기로 약속(約束)하고 정항문(鄭恒文) 군(君)에게 미안(未安)하다고 용서를 바라고 '샘'으로 갔다.


Rhee는 퍽이나 예뻐 보였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듣겠소?" 하니 "네 말씀하세요" 하며 좀 침숙(沈肅)해져 나로 하여금 감동(感動)시켰다. 이런 말 저런 말 하다가 결론(結末)을 얻었다.

요(要)컨데 내가 정열(情熱)의 대상(對象)으로써 Rhee를 대(對)한데 반(反)하여 Rhee는 털끝만치라도 (이성)異性으로서 덕하(德河, 아버님)를 대(對)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밀양(密陽) 고개에서 내게 말한 바가 있지 않는가 하고 물었지만 그것은 과거지사(過去之事)이다.


"나는 그 후(April 12) 성격(性格)이 많이 변동(變動)됐소. 그래서 지금(至今)은 대(對)하지 않던 여자들도 오히려 내가 먼저 앞서 인사(人事)하게 까지 됐소, 모두 Miss Rhee의 덕(德)이요" 하니 "허! 허! 그게 무슨 내 덕(德)이야요?" 하며 웃어 버렸다. "하여(如何)튼 안심하시오. 과거(過去)의 덕하(德河)가 아니니까"


일은 끝나고 말았다. 나의 생로(生路)도 개척(開拓)된 것 같다. 고민(苦閔)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Miss Rhee를 이성(異性)으로써 대(對)하지 않을 수가 있다.

사실(事實)! 참되고 아름다운......


※ USIS : 미국문화원

https://m.hankookilbo.com/News/Read/199912150090479284

※ 앞부분 1956년 일기 부분에서는 '정희'라고 표현된 어머님이 이곳 1952년 일기에서는 아직 만남의 초반이어서 그런지 Miss Rhee로 표기되어 있다. 어머님 성이 이(李)인데, 당시 영문으로 LEE가 아니라 RHEE라고 표기했던 모양이다.

일기 문맥으로 볼 때, 연애 초기 아마 요즘 말로 '밀당"을 하던 시절의 부모님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일기 기록 날짜 없음)


가령 그대가 그대의 지위(地位)에 불만이 있다 할지라고 그것을 타인에게 호소하여서는 안 된다. 특(特)히 그대의 주인(主人)에 대(對)하여서는 불평을 말하는 것은 금물(禁物)이다. 모든 불평을 참고 지금(至今)까지 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여라. 그리하여 그대의 주인(主人)에게 그대가 없으면 곤란하다는 수완을 보여 주어라. 불평을 말하지 말고 실력을 보여주라.


민활하게 기운 있게 활동하라. 결단코 '그러나'라든가 '만일에'라든가 혹(惑)은 '왜냐하면' 이라던가 하는 것을 구실(口實)로 삼아서는 안된다. 이것이 승리(勝利)의 첫째 비결인 것이다 (나포레온)


서적에서나 사회에서나 힘써서 훌륭한 인물과 사귀고 그들은 무엇을 숭배하고 무엇을 동경하였는가를 배우라 인간은 동경과 숭배의 정신이 위대하냐 그렇지 않으냐에 의하여 인물의 값이 결정되는 것이다 (삿가레~)


※ (나포레온)은 요즘 나폴레옹으로 표기되는 프랑스 황제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삿가레~)라고 표기한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대체 누군지 모르겠다.




아버님의 고교 졸업 앨범. 좌측은 고등학교가 소재한 선천 시 시내 주요 명소를 찍은 사진인 것 같고, 오른쪽은 반별로 찍은 단체사진인 것 같다.



사진에 보이는 석탑은 검색해 보니, 경복궁에 있던 경천사지 10층 석탑이다. 이 석탑은 원래 개성 인근 지역에 있었는데 해체되어 보관되다가 1960년에 다시 조립되어 경복궁의 사진 속 위치에 세워졌다 한다.


아버님께서는 정부의 문화재 관련 부서에서 근무하신 적이 있는데, 아마 1960년 석탑이 다시 조립되어 세워지고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 아닌가 싶다. 계산해 보면 아버님이 만 39세일 때다. 사진 맨 왼쪽이 아버님.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이 사진과 비슷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https://blog.naver.com/dbfg6t9p/221631935747 (첫 번째 나오는 사진의 가운데 사진)



아버님의 일기에 'Miss Rhee'로 등장하는 어머님과 함께 찍은 사진.



어디 소풍을 가셨는지 야외에 앉아 같이 식사하시는 아버님과 어머님. 위 1952년 일기에 등장하는 그런 서먹서먹한 '밀당'의 단계는 이미 지난 다음에 찍은 사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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