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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싶은 말과 해 줄 수 있는 말

유리와 수박

by 안민

얘들아, 나 번아웃인가 봐.


입밖으로 내뱉는 순간 사실이 될까 봐 삼켜야만 하는 문장들이 있다.


긴 호흡으로 가야 한댔는데. 성격이 급하고 조바심이 많았던 나는 짧은 호흡을 턱끝까지 차올리길 반복하면서 꼬깔을 돌았다. 나는 내가 긴 호흡이 되지 않는 사람인 걸 알고 있다. 짧은 숨을 허덕거리면서 반환점을 도는 순간, 그대로 주저앉았다. 혹자는 조금만 더 달리면 되니 일어나라고 했고, 또 다른 혹자는 본인 일이라면 하지 않았을, 듣기 예쁜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달린 거리보다 더 짧은 거리만 달려나가면 된다는 걸. 그럼 뭐 하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걸.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자신에게 인색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일지 모른다. 여태 달려온 길을 바라본다. 흙먼지가 자욱하고, 시작점이 어딘지도 모를 만큼 아득하다. 저 길을 달려오며 얼마나 외롭고 주저앉고 싶었는지 알고 있다. 지칠 만해, 맞아. 다시 달리고 싶을 때까지 쉬는 거야. 주저앉아 있는 것도 지겨울 때까지.


그중에 착오인 점은 내가 주저앉아 있기를 꽤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일주일을 그러고 있으면, 이 주를 그러고 있으면, 여행을 다녀오면, 지겹고 조바심이 날 줄 알았다. 아니었다. 불안도, 조바심도, 열정도, 연료도 모두 바닥 났다. 그냥 계속 주저앉아 있고 싶어진다. 모래 개수나 세면서, 눌러붙은 지렁이를 축축한 흙으로 옮겨 주면서, 매일 떠오르는 해의 채도를 비교하면서, 한적한 라떼를 마시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쉼을 한량이라 부르는 세상에서, “그래요 나 쉬어요. 힘이 드네요.“ 를 말한다는 건 꽤나 용기가 드는 일이다. 나는 겁쟁이에다 용기가 없는 사람이고.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질 때면 주저앉은 채 달리는 시늉을 했다. 괜히 신발끈을 고쳐 묶었다. 척은 꽤나 쉽다. 그 누구에게도, 아무리 가까운 상대일지라도 척은 쉽다. 그러니 내가 주저앉아 있음을 고백하는 건 말 그대로 고백인 셈이다. 그 마음을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 상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하는 고백. 고백을 한다는 사실이 아파서 울먹이며 하게 되는 고백.


“얘들아, 나 주저앉아 있어.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그냥 계속 주저앉아 있어.”

“···.“


“···.“

“그랬더니 어때? 기분이 좋아?”


어떤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꼭 책망과도 같아서 여느 틈으로 숨어들고 싶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아무것도 안 하니 기분이 마냥 좋진 않았지? 이제 일어나야 하는 걸 너도 알지? 하는 따뜻한 질책을 건네고 싶었겠지. 옷으로 슥슥 닦기만 해도 의심없이 투명하고 빛나는 조각이지. 닦고 모서리를 다듬으면 목걸이가 되기도 하는, 아름다운 유리 조각이지. 그런데 지친 러너에게 필요한 건 예쁜 유리 조각이 아니라 수박 한 조각이었던 모양이다. 달큰하고 수분이 터지길 기대하고 삼킨 조각이 목에 걸린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내려가질 않는다. 결국 또 다시 입을 앙 다물게 되었다.


결국 표면에 흰 가루가 잔뜩 묻어 있는, 꽤나 예쁘며 틈새가 일정한 줄무늬를 가진, 꼭다리가 꼬불랑한, 배꼽이 작은 수박을 고르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낑낑거리며 집에 가져와서는 정성껏 흐르는 물에 씻고, 손이 베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무겁고 달콤한 동그라미를 반으로, 그리고 또 그 반으로, 반으로, 반으로... 자르는 것도 나였다. 세 꼭지점에 칼집을 넣고, 다시 돌려가며 한입 사이즈로 썰어 락앤락에 우르르 부어 넣는 것도 나였다. 수박 조각을 기대한 나에게, 수박 조각을 건넬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그러니 이제 일어나야지. 이 경기장에서 가장 달콤한 수박을 손에 넣어야지. 씨를 못 먹는 강아지와 나누어 먹어야지.


가는 길엔 조금 뛰어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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