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 리뷰

흐려져 버린 이들에게

by 안민

미술에 재능이 있어 보이는 주인공 ‘흐릿’. 가세가 기울어 네덜란드 화가의 집에 하녀로 일하러 간다.


그녀의 어머니가 건넨 “가톨릭 미사에는 귀도 기울이지 마라” 라는 대사로 말미암아 신교 국가 출신(또는 신교 평민 가정 출신이 귀족 가톨릭 가문으로 일하러 가는 것으로)으로 짐작할 수 있다. 1665년이면 영국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후이므로, 네덜란드 구교를 혐오하는 영국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복식사를 공부한 적은 없지만 흔히 초상화에서 볼 법한 의상, 두건 등이 등장한다. 고증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평가받지 않나 싶다. 논외로 창문을 덧대 같은 걸로 당겨 여는 장면이 고즈넉해서 좋았다.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장면.


어떤 영화는 그 자체로 명화가 된다.



자켓으로 만든 카메라 암실로 기초 그림을 보는 둘.

화가(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자켓 속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신문물에 대해 호기심을 보인다.


화가의 어린 자녀는 흐릿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흐릿의 날카로운 색 지각. 하나를 알려 주면 열을 아는 듯하다. 화가는 이때부터 그녀의 재능을 보고, 안료부터 그림까지 속속들이 가르치기 시작한다. 둘은 점점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화가가 손을 겹쳐 쥐자 흐릿은 급격히 표정이 굳는다.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 푸줏간 아들이 머리를 만지려고 하자 화들짝 놀란 모습과 유사하다. 남녀칠세부동석, 성에 대한 금기, 처녀성에 대한 흐릿의 강박을 보여 주려는 연출인 듯하다.


‘파랑의 역사’에서 본 인디고블루일까 했는데 아니었다. 청금석이라고 한다.



가계의 실권을 쥐고 있는 화가의 장모. 흐릿의 초상화를 원하는 주문자에게 그림을 무조건 납품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흐릿에게 화가 아내의 진주귀걸이를 건넨다.

어떤 기분일까. 나는 귀조차 뚫지 않았는데 이미 내가 귀걸이를 하고 초상화의 객체가 되기로 결정되어 있다면 말이다. 체스판의 말이 된 기분일까. 흐릿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대부분의 수치심과 조금의 우열감.






영화 초반부라고 해서 생기발랄한 캐릭터는 아니었다고 해도, 이 시점의 흐릿은 가장 흐릿하다. 내 일이지만 내 일이 아닌. 그렇게 하기로 결정되어 있는 상황. 비록 내 귓볼에 구멍을 내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귓볼을 소독한 뒤

촛불로 지진 바늘을 귓볼에 꽂는다. 너무 아파 보였다.

흐릿은 화가가 귀를 뚫는 순간에 눈물을 흘린다. 이 눈물이 지금껏 그녀가 지켜온 신조가 타인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순간에 터진 눈물일 것이다. 지금껏 내가 어떻게 지켜온 것인데. 내 자존심과 단정함. 흐릿에겐 귓볼이 단순한 귓볼이 아니었다. 고작 진주귀걸이 따위를 걸게 하기 위해 뚫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화가는 흐릿을 캔버스 앞에 앉히고 그림을 완성한다. 실제 작품과 잘 어우러지는 얼굴과 눈빛이어서 조금 짜릿했다.






그림이 완성된 뒤, 흐릿은 푸줏간 아들에게 급하게 달려가 키스를 한다. 내 귀를 뚫은 건 당신들의 의지가 아니었어. 내가 하고 싶어서였고, 내가 선택한 이를 위한 것이야. 삶의 주도권이 그녀의 손에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발악. 이 대목은 그렇게 해석하고 싶었다.

그는 위태로운 흐릿의 내면을 읽는다. 그리고 말한다.

“천천히 해.”






다시 화가의 집. 화가의 아내는 본인의 진주귀걸이를 가져갔다는 걸 알아차리고 따진다. 화가를 빙자한 흐릿에게. 그리고 흐릿은 옆에서 모든 걸 듣는다.

화가에게 그림의 대상은 성적 대상이라고 해석하나 보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화가)가 내 배우자라고 하더라도 용서하기 어렵다.







아내는 흐릿에게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하지만, 화가는 흐릿을 감싸지 않는다. 이에 배신당한 표정을 짓는 흐릿. 화가에게 흐릿 역시도 소모품일 뿐이었다.

관객은 영화의 중간부에서 두 사람이 한창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며 “흐릿이 화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그러나 그림이 완성되고 난 뒤, 갑자기 ‘아내 말을 잘 듣는 수동적 남편’ 입장을 취한다. 관객은 흐릿의 마음에 공감하며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흐릿이 짐을 싸서 떠날 때 나와 보지도 않는다.


의도한 연출인지 혹은 용두사미가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영화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입장에서는 배신감이 증폭되는 장치로써 꽤 좋았다.





사수 하녀. 흐릿에게 온갖 가십을 실어날랐지만 어쩌면 그 기저에는 흐릿을 향한 걱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흐릿이 집에서 쫓겨나는 순간 둘의 눈동자가 잠시 마주친다. 그렇지만 사수 하녀는 금방 시선을 거둔다.






연출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가운데 우두커니 선 흐릿. 이제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다.

흐릿에게 말해 주고 싶다. 너는 지금 갈피를 잡는 중이라고. 그 눈빛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가면 어디로도 흐를 수 있다고.






시간이 흐른 뒤, 화가는 흐릿에게 선물을 하나 보낸다. 내심 그림값의 절반 정도이길 기대했는데.

진주 귀걸이다. 그 진주 귀걸이 너한테나 대단하지,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거장의 작품들 뒤에 얼마나 많은 흐릿들이 있었을지.

흐릿해지고 흐릿해져서 상상으로 메워야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외국 작품인데도 어떻게 그녀의 이름이 ’흐릿‘일수밖에 없었는지. 눈발이 휘날리는 날에 그들을 생각해 본다. 다음 생에서는 선명해지세요. 웅크려 지내지 말고 빛을 트세요. 진주 말고, 무늬를 켜켜이 입히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최악의 에블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