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 아들 엄마라는 극한직업(1)

#03 전복 ㅣ 무너지거나 뒤집어 엎음

by 달빅



1

커버린 아이는 부모가 몸을 부대끼며 놀아주는 것을 더이상 원하지 않는다. 나의 눈엔 여전히 덩치만 웃자란 아기 같지만.


몸뚱이는 고등학생이지만 영혼은 초등학생 같은 남자아이가 우리와 서식 중이다. 방학을 했다고는 하나 녀석은 일말의 행복한 탄성도, 모종의 일탈도 시도하지 않는다.


(아, 친구들끼리 물놀이를 가기로 약속했다는 말도 안 되는 도발을 감행하긴 했었다. 초장에 블로킹당하여 결국 수포로 돌아갔지만.)


학기 중 일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무늬만 방학인 시간의 연속이다. 코비드가 선사한 비일상의 일상화. 이젠 넌덜머리 나는 그 말.




2

우리 집의 고등학생은 학업 뽐뿌가 고2 때 온 케이스다. 지난 3~4년간 녀석은 순간의 느낌을 일말의 주저함 없이 행동으로 옮기며, 그날그날의 행복에 충실한 중학생 시절을 보냈었다.


녀석은 비비드한 총천연색의 무지개 터널을 빠져나온 직후 지난 3년의 소회를 딱 한번 단문으로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날마다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었어요."


고장 난 멈춤 버튼. 가속도가 붙은 롤러코스터의 미친 널뛰기를 가까이에서 목도한 것은 나였다.


공중에 아득하게 매달린 채 숨을 몰아쉬었을 위태로움 속 짜릿함과 하강할 때 느꼈을 말 못 할 서늘함은 추측만 할 뿐이었다.




3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확인할 순 없지만 내 아이만큼은 '그분'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 여겼다. 가차 없고 예외도 없었다. 녀석에게도 '내 맘을 나도 잘 모르겠는' 그때가 왔다.


그래, 기왕 온 거면 딱 옆집 아이만큼만 머물다 거두자고 다독였다. 보기 좋게 빗나갔다. 몇 곱절 아니 그 이상 센 풍랑이 몰아쳤다. 그때 나는 그 파도를 감당할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다.




4

녀석이 테마파크의 프리 패스를 흔들어대며 맘껏, 양껏 누리는 나날이 계속되면서 나는 태생적으로 울렁증을 지니고 있는 특정 직업군의 분들과 본의아니게 잦은 소통을 하게 된다.


아이에 대한 지극히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던 대상은 1년에 한 번씩 바뀌었다. '담임 선생님'이라는 동일 포지션의 분들과 전화와 문자가 빈번하게 이루어진 나머지 하마터면 베프 먹을 뻔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시간들을 정량화해 본다면 내 오랜 베프들보다 압도적으로 자주, 더 긴 시간 연락을 주고받은 것만은 분명하다.


당시 그 어떤 것보다 무서웠던 건 대개 이런류의 문자였다.


"어머니, 담임인데요. 지금 혹시 통화 가능하신가요."


도무지 무뎌지지 않는, 읽자마자 여지없이 평정심이 박살 나는 한 줄의 텍스트. 가슴이 벌렁거리며 호흡이 가빠지는 경험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5

아이의 중학교 졸업식 날. 2학년 때 담임을 오랜만에 만났다.


중2라면 녀석의 널뛰기가 최정점에 달했던 때였을 것이다. 두 어른 사이에 일상적인 안부가 오고 간 뒤 대화는 자연스럽게 아이를 매개로 공유하고 있는 지난날의 소회로 이어졌다.


대화 말미쯤 별안간 선생님의 눈시울이 먼저 붉어지시더니 이내 다가와 나의 등을 토닥여주셨다.


"**이 엄마 많이 힘들었지요? 그동안 진짜 고생 많았어요."


위로와 공감과 감사함이 뜨거운 물이 되어 왈칵 솟았다. 눈물 버튼을 잠글 재간이 없었다. 축하의 말이 난무하고 꽃다발이 오고 가는 왁자지껄한 졸업식장 한편에서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연신 소매자락으로 눈가를 훔치던 웃픈 일화 또한 잘나신 그 녀석 덕분이었다.


"우스갯소리로 교사들 사이에서 중2 담임은 액받이라고들 하지. 그런데 있잖아, 이 말 나는 하나도 우습지가 않아."


이는 과거 몇 번의 치가 떨리도록 혹독한 중2 담임 시절을 겪은 경험이 있다던 현직 교사이자 내 친구 중 한 명의 말이었다. 본인 역시 소란한 시간을 넘기면서도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던 친구의 너절한 푸념을 빈번하게 받아주었다.




6

녀석은 요즘 문제집을 펼쳐놓은 테이블에 코 박고 앉으면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는다. 나는 월, 수, 금 공부 버디로 녀석에게 찍힘을 당했다. 다른 요일에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동선의 반경에 있는 친구들과 공부를 이어갔다.


집도, 독서실도 마다하고 걔들 말로 카페에서 '뻐기며' 공부하는 게 비교불가 고효율이라는 MZ 세대의 괴상한 허튼소리를 산업화 시대에 제도권 교육을 받은 꽉 막힌 우리 부부는 이해하질 못했다.


카공의 효용에 관해 우리가 강하게 만류하고 부정해 봐야 소용없음을 재빨리 인식할 필요가 있었다. 나름 좀 쿨내 나는 어른인양 몸을 부풀리고 있긴 하지만 변하는 세상을 쫓으려면 버려야 할 낡은 것들이 아직 많다.




7

미친 롤러코스터 폭주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뭔 소린가 싶을 것이다. 궤도 저편으로 먼 여행을 떠났던 녀석은 무지개 터널을 훅 빠져나와 비로소 정속 주행 중인 것이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5달쯤 전의 일이다. 남자아이의 속마음은 도통 알 도리가 없다.


"엄마, 난 공부가 세상에서 나랑 가장 안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야 하는 창작은 더더더 죽도록 어려운 거더라고요. 그냥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이미 고민해서 이루어놓은 걸 내가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입시 준비가 훨씬 훨씬 편하고 쉬운 일 같아요."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 아이인데 창작의 어려움이란 큰 벽에 반복해서 부딪힌 후 비로소 주위로 눈을 돌려보고 스스로 얻은 깨달음이라 이해했다.


깨우친 바가 있어 깊은 사유 후에 도달한 결론일리 없다고 생각한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한 대 맞고 정신 차린 무학의 통찰에 가깝지 않나 싶다.




8

아이들은 크면서 자연스레 행동반경이 넓어지기 마련이다. 아빠 엄마에 의해 규정된 울타리 밖을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탁! 넘은 시기가 오고야 만다.


늘 지켜보는 아이였기 때문에 내 자식만은 그러지 않을 줄 알았으나 나의 착각이었단 걸 지난 몇 년 간 녀석이 친절하게 증명해 보인 셈이다.


어떻게? 주저함도 없이, 갖은 만류와 저항에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그리고 뻔뻔하게.



9

옆집 아이보다 조금은 더 심리적 격변을 겪고 있는, 딱 봐도 내일 없이 사는듯한, 나도 잘 모르겠는 '내 안의 그놈'에게 시달리는 녀석으로 인해 덩달아 버라이어티 한 하루하루를 보낸 후에야 알았다.


당시 아이에게 일어난 모든 변화들은 알고 보면 길고 긴 아이의 인생에 있어 무심한 통과의례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에 하나 동거인 가운데 내일이 없이 사는 그분들로 인해 날마다 뒷목 잡는 중인 분이 계신다면, 아이에 앞서 나 자신을 탓하며 자괴감에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가 가까스로 헤어 나오기를 반복하고 계신다면, 그 고단함과 지난함을 알기에 크나큰 토닥임을 돌려드리고 싶다.


바라봐주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기다려주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에 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머리 풀고 돌아다니기 일보 직전 먼저 겪은 선배 부모들이 얘기해 줄 땐 흘려들었던 이야기였으나 꼭 부딪혀보고서야 깨닫는 어리석은 사람이란 걸 부정할 수 없다.



10

"많이 넘어져 본 사람일수록 쉽게 일어선다. 반대로 넘어지지 않는 방법만을 배우면 결국에 일어서는 방법을 모르게 된다."


정신의학박사이기도 한 사이토 시게타의 책의 구절이 요즘 와닿는다고 얼마 전 아이에게 말해 주었다.


속 시끄럽게 하던 '내 안의 그분'을 스스로의 힘으로 대차게 패대기쳐버린 아이는 좋아하는 일과 현재 해야만 하는 일을 토 달지 않고 둘 다 잘 해내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본인이 좋아하는 일만 즐기면서 해도 좋겠단 생각이다. 그게 어딘가. 비록 결과물로 가는 과정이 힘들어도 그 속에 뿌듯함과 행복이 공존한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은가.


'결과만이 과정을 입증한다'라고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과정이 옳다면야 더는 바랄 게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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