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도 오토가 있을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면 가끔씩 같이 일하는 동료의 폰을 볼 때가 있다. 동료는 요즘 TV광고에 나오는 유명한 모바일 RPG 게임을 한다. 매대 알바는 바쁠 때도 있고 조금 한가할 때도 있는데, 한가한 틈을 봐서 게임을 한다. 그 틈이 워낙 적다 보니 대부분의 플레이는 오토로 한다. 캐릭터들은 지정된 프로그램대로 전투를 한 다음, 전투 결과를 보고하는 화면을 출력한다. 플레이어는 전리품 확인, 장비 강화 등의 과정을 터치 몇 번으로 끝낸 다음, 다시 전투를 오토로 한다.
나는 오토플레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바쁜 시간을 겨우겨우 쪼개서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것을 감안해도 나는 오토를 좋아하지 않고, 잘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게임을 손으로 하면서 재미를 찾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게임의 재미는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인지하고, 자신의 머리와 손으로 그 상황을 돌파하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공략을 찾아서 볼 수도 있고, 무작정 플레이하다가 게임 오버 화면을 몇 번 보면서 더 좋은 수단을 찾을 수도 있으며, 임기응변으로 넘어가는 때도 있다. 이런 식으로 게임을 플레이면서 문장이나 음성 등으로 수신되는 정보에 더욱 집중한다. 실패 화면을 보면 분하고, 성공 화면을 보면 성취감을 느낀다. 그와는 별도로 게임을 하면서 체력을 소모했는지 게임을 끄면 조금 나른해진다. 이 나른함과 함께 오는 성취감, 혹은 분함을 나는 좋아한다.
오토를 키면 나의 손과 머리는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오토로 돌아다니는 캐릭터를 보는 것은 게임을 할 때 느끼는 기분과 같을까?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동료가 폰으로 하는 게임을 보는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만일 동료가 자기 손으로 게임을 하고 있고, 그것을 내가 지켜보는 상황이라면, 나는 동료의 실력을 칭찬하거나, 오지랖 넓게 동료에게 훈수를 둘 수도 있다. 게임과 게임 플레이어, 그리고 관전자의 구분이 탄생한다. 하지만, 오토플레이를 키면, 게임 프로그램은 자신이 플레이 권을 획득한다. 사람은 캐릭터의 컨트롤 권한을 프로그램에게 넘기고 옆 사람과 같은 관전자가 된다. 이때, 게임을 지켜보는 두 사람은 어떠한 대화도 나눌 수 없다. 프로그램에게 칭찬을 하거나, 훈수를 둘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오토를 키면 손의 역할은 사라지고, 머리는 눈으로 보는 정보를 수신할 뿐이다. 정보를 바탕으로 한 판단, 행동은 게임 종료 후에야 행해진다. 자연히 게임에 대한 몰입감은 사라진다. 성공 화면, 혹은 실패 화면을 보는 것도 남의 일처럼 느껴지게 된다. 즉, '내가 게임을 한다.'는 통합적인 감각은 사라지고, '남이 하는 게임을 구경한다.'는 시각적인 인지만이 남는다.
인생이라는 것도 결국은 아주 거대한 게임이다. 우리는 이 거대한 게임의 플레이어이기도 하고, 아바타이기도 하다. 플레이어인 우리는 아바타인 우리를 움직인다. 인생이라는 게임은 더욱 복잡한 상황이 등장하고, 여러 가지 상황이 게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변하며, 때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인생이라는 게임을 하면서 위의 오토플레이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면 아주 많은 물음이 나온다.
플레이어인 당신은 아바타인 당신을 어떻게 컨트롤해왔는가?
스스로 방향키를 조작하고 Y 혹은 N 버튼을 눌러왔는가?
아니면 당신은 오토를 켰는가?
만일 오토를 켰다면 당신이라는 아바타는 누가 조종하는가?
플레이어인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오토를 켜서 당신은 정말 이 게임에 재미를 느끼는가? Y와 N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만일 Y를 주저 없이 누를 수 있다면 내가 할 말은 별로 없다. 하지만, N 버튼을 누르거나, 적어도 Y와 N 무슨 버튼을 누를지 갈등을 하는 상태라면, 아니, 갈등을 하는 시점에서 당신은 N을 누른 거나 마찬가지다. N을 눌렀다면, 당신 인생의 오토를 해제하자. 눈 앞의 화면을 똑바로 보고 컨트롤러를 잡자. 그리고 머리와 손, 발, 때로는 몸 전체를 써가면서 재미있게 게임을 하자.
하지만 게임 오버 화면이 나왔다고 섣불리 게임 디바이스를 집어던지지는 마라. 집어던져서 부서진 기기의 대가는 아주 비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