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의 변화
2018년 3월 31일을 기하여 무한도전이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잠깐의 휴식인지, 아니면 영원한 이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쉬움과 공허함은 어쩔 수 없군요. 그리하여 무한도전의 추억을 정리하는 글을 남깁니다.
「무한도전」의 진화는 곧, 2006년 이후의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변화와 이어진다. 「무도」의 진화로 인해, 기존까지의 예능프로의 문법은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2007년, "무한도전을 4주 안에 잡겠다!"는 호언장담과 함께 SBS에서 런칭한 「작렬 정신통일」이 그 예다. 당시 「무도」와 정면대결을 벌였다가 '정신 못차리고 무너진'(실제 무한도전 50회 특집 예고에서 정신통일을 이렇게 '디스'했다.) 「작렬 정신통일」은 이전 예능 문법에 너무도 충실하고 정석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옛 방식으로는 새로운 흐름을 이길 수 없었다. 그것을 기점으로 「무도」는 예능의 변화를 가속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2010년 이후 일어난 수많은 인기 예능의 산파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예능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무도」 이전 예능 프로그램에는 제각기 '간판 게임'이라 불리는 게임이 존재했다. 간판 게임은 따라하기 쉽고 간단한 규칙을 지니고 있어서, 예능 프로그램은 새로운 게임의 보급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예를 들면, 「공포의 쿵쿵따」, 「여걸 식스」의 '잡아라 쥐돌이'(이건 일본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등이 있다. 「무도」도 한때는 간판 게임을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거꾸로 말해요 아하'인데, 「무도」의 웃음 포인트가 게임이 아닌, 멤버들 사이에서 티격태격하는 장면(시청자들에게는 '거기서 거기'이지만, 자신들에게는 절박한 '순위선정'을 하는 장면.)임을 캐치한 제작진은 '아하' 노선을 접고 이 부분의 극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간판 게임이 탄생하는데 바로 '추격전'이다. 사실 이전 간판 게임들은 모두 룰이 고정되어있었다. 룰이 고정되어 있으면 따라하기 쉽고 게임 자체의 속도도 매우 빠르지만, 프로그램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장면 또한 고정되어버린다. 게임 시작→누군가 실패자가 나옴→벌칙의 지루한 반복이다. 간혹 부수적인 룰을 추가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룰 자체는 동일했기 때문에 큰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추격전의 경우 매번 다르면서도 체계적인 룰을 설정하고, 게임 시간도 1시간~1일 단위까지 길어졌다. 기존 간판 게임들에 비해 '방송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고, 그만큼 게임 수행 과정을 많이 보여줄 수 있게 되며 지루함도 없다. 이후 「1박2일」에서는 '복불복'을 간판 게임으로 내세우는데, 공유하는 것은 복불복이라는 이름 뿐이고, 매회 룰을 바꾸어가면서 유기적으로 운용했다. 그리고 무한도전의 추격전 콘셉트를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구성한 「런닝맨」은 새로운 형식의 간판 게임의 약점이었던 대중 보급도 어느정도 성과를 내었다. 각 학교 등지에서 '이름표 떼기'를 응용한 체육 활동이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도」 이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고정 출연진의 비중이 대폭 증가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고정 출연진과 게스트 출연진의 비율이 5:5 정도로 맞춰져있었지만, 출연진간의 호흡을 중요시하게 되면서 게스트를 섭외할 필요성이 많이 낮아졌다. 프로그램 전체는 고정 출연진이 이끌게 되었고, 게스트는 어쩌다 한 번 부르는 정도로 섭외율이 많이 감소하였다. 게스트가 출연하는 목적은 자신, 혹은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가수일 경우 신곡의 홍보를 위해 예능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무도」 이후 게스트가 홍보용도로 예능 나들이를 하는 빈도는 많이 줄었다. 그 대신, 제작진이 큰 그림을 그리고 기획적으로 게스트를 찾아 섭외하는 빈도가 늘었는데, 그 좋은 예가 「토토가」이다. 「토토가」는 '9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인기 가수들의 귀환'이라는 명확한 그림을 그리고, 그에 걸맞는 게스트를 섭외하여 강한 파급효과를 낼 수 있었다.
이것은 어두운 면도 있다. 신인급 연예인들이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장이 급감한 것이다. 그 틈을 오디션 프로그램이 접수하기 시작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일반인 중에서 연예계에서 빛날 수 있는 원석을 발굴한다는 기본적인 목적 외에 대형 기획사들이 자사의 신인들, 혹은 유망주들을 미리 소개하면서 그들의 홍보도 겸하는 두 번째 목적을 지니게 되었다. 이외에도 유튜브 등 인터넷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수에 한정한 상태이다.
「무도」 이전 예능의 경우, 예능 출연자에게 필요한 능력은 한정되어있었다. 딱 게임을 능숙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신체능력, 퍼포먼스(주로 댄스) 능력, 그리고 특히 '연애'에 특화된 입담 정도였다. 「무도」가 인기를 얻은 하지만, 「무도」를 기점으로, 출연자는 더욱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만큼 체력과 지구력, 상황 적응력, 두뇌 회전력, 때에 따라서는 생존능력, 다양한 주제의 입담 등을 필요로 하기 시작하였다. 예능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점점 하드해졌고, 방송사들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출연진을 편성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예능 출연이 급감했다. 「무도」 이전 예능에서, 여성에게 신체능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활동을 시키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 혹여 남성과 여성이 같이 게임을 하게 될 때에도 여성의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비교적 간단한 게임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예능 환경의 변화에 따라, 여성도 남성과 거의 같은 수준의 신체 활동량을 요구받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여성 연예인의 수는 매우 적었고, 자연히 남성들을 우선하여 예능 출연진으로 편성하기 시작하였다.
이 글은 2018년 3월 30일, 제가 스팀잇에 업로드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steemit.com/busy/@cyranodcd/vzf3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