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피렌체에 도착했다. 오렌지빛 큐폴라가 보이는 걸 보니 내가 피렌체에 온 게 맞긴 맞구나. 벌써부터 이 도시는 나에게 적잖은 설렘을 선사했다. 꽃같이, 꽃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 무거운 캐리어를 끄는 내 마음은 참을 수 없이 두근두근거렸다.
1박2일짜리 짧은 피렌체 여행은 사실 큰 욕심이 없었다. 그저 두오모 성당에 올라가서 피렌체 전경을 눈에 담는 것이 전부였다.
먼저 한인민박에 체크인을 하고, 곧장 길을 나섰다. 점심을 먹은 후 티라미수가 유명하다는 몇 백년도 더 된 케이크집에서 달콤한 호사를 누렸다. 사르르 녹아드는 티라미수는 말도 안되게 맛있었다.
그렇게 피렌체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보니 ZARA가 보였다. 멋쟁이들의 도시 이탈리아의 ZARA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그렇게 들어선 매장 안에는 너무 예쁜 옷들이 많았지만 그중 파란색 에스닉한 원피스가 눈에 단연 띄었다. 한참을 원피스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물끄러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똑같은 검정색 야상점퍼와 검정색면바지와 남방, 몇일째 똑같은 옷만 돌려입느라 내가 오늘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딱히 유행에 민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예쁜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은 여느 20대 여자또래들과 나 역시 똑같았다. 하지만 면접을 위해 온 이곳이었기에 면접에서만 예쁘게 보이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 나머지의 시간은 가장 편하고 캐리어의 부피를 덜차지하는 옷이면 충분했다. 이동하는 시간엔 가장 싼 호스텔에 머물면서도 면접당일 나를 예쁘게 꾸밀 수 있도록 일정한 공간이 있는 호텔을 찾아야 했다. 아껴야 하지만 아낄 수 없었던 이 아이러니한 유럽면접투어에서는 이 20유로짜리 원피스조차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깨달았다.
면접장에서만 예뻐보이는게 다가 아니라는 것, 평소에도 내가 예뻐보이려고 노력해야 그게 몸에 배여서 면접때도 위화감이 없다는 것.
면접을 위해서만 꾸며진 나의 모습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닌 것처럼 보여졌을지도 모른다. 아마 내가 첫인상이 중요한 cv드롭에서 탈락율이 높았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지 않을까.
결국 맘에 들었던 원피스를 시착하고 거울 앞에 섰다. 면접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활짝 웃어보는게 얼마만인지, 화장기 없는 얼굴에도 말갛게 웃는 내 모습은 왠지 예뻐보였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 한가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원피스를 결제했다. 2만원 남짓의 원피스가 주는 행복감은 생각보다 강하게, 오래 지속되었다.
다음날 아침, 드디어 두오모 성당이 보이는 조토의 종루에 올라가기로 했다.
꼭대기까지 오르고 올라가는 동안 몇 번이고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내 체력을 과대평가 했는지를.. 작고 오래된 돌계단은 오르고 올라도 끝이 나지 않았다. 내 몸만한 짐을 옮기고 계속되는 이동을 하며 나름 체력이 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평소에 운동하지 않는 나의 체력이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쉬다가 다시 올라가고, 쉬다가 다시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언제 다시 여기를 올 수 있겠냐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꼭대기에 도착하자 펼쳐지는 전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둥그런 큐폴라와 오렌지빛 건물들은 너무나 따뜻함이 느껴졌다. 힘들게 올라오길 잘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또한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를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했다.
눈에 담아도 담아도 아름다운 피렌체,
이 도시가 나에게 준 선물은 다름 아닌, 낮아질 대로 낮아진 나의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계속 반복되는 좌절에 꺾이고 꺾여 이미 지쳐있는 무릎이었지만, 그 무릎으로도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