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그 무모하고도 짜릿한 자유

-스페인 바르셀로나 1st day

by 셜리shirley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기로 마음먹은 건, 바르셀로나에 너무나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피렌체에서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동행인 동생과도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무거운 내 배낭까지 들어주며 공항버스를 타는 곳까지 배웅해줬던 동생과 막상 헤어지려니 눈물이 났다. 같이 고생한 기억들 때문일까, 언제나 서로를 보는 눈은 비슷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정말 잘되길 바라는 애틋한 감정들. 언젠가 좋은 소식으로 다시 만나자며 서로를 격려해주며 손을 흔들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건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도착해서 호스텔을 찾아가야하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구글지도를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날은 어두워져 가는데다 몸은 내몸만한 캐리어를 끌고다니며 이동을 거듭해 너무나도 피곤했다. 나는 결국 스페인 현지 사람들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길을 묻기에 이르렀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소통이 힘들었다. 몇 명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길을 물어보았지만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헤매기를 아마 한시간이 넘었고, 겨우겨우 호스텔을 찾을 수 있었다. 살았다- 라는 안도감과 함께 긴장감이 풀리자 미친 듯이 허기가 졌다. 그날도 한끼도 제대로 먹지못한채 계속 이동만 한 탓이었다.


호스텔은 지인에게 추천받은 곳이었는데 지금까지 머문 호스텔 중 가장 깔끔했다. 짐을 옮겨놓고 밖에 나가 저녁을 먹어야하는데 씻고 침대에 누운 순간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가 없었다. 이미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내일 나가서 제대로 이 허기를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잠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다음날 아침, 날씨가 너무나도 맑았다. 분명 겨울인데도 이곳의 겨울은 온화했다. 첫날부터 뭔가 따뜻한 느낌의 이 도시가 나는 벌써부터 좋아졌다. 그렇게 처음으로 간곳은 가우디의 건축물들이었다. 투어를 신청하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꽤 큰 금액이었고 혼자서 돌아다니면서 보는것만 해도 충분히 내게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길을 걷는 내내 깔끔히 정돈된 도시에 놀랐고, 게다가 친절하게 와이파이까지 있는 걸 발견하고 두 번째로 놀랐다. 물론 한국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와이파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느낌이랄까.

걷고 걷고 또 걷다보면 가우디 건축물 하나, 또 다른 곳 하나, 그렇게 눈도장만 찍으며 돌아와야했지만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이역시도 가우디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었다.

압도적인 규모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여느 성당과는 다른 건축 구조가 너무나도 신기했다. 색색깔의 스테인드 글라스에 비쳐 잘게 부서지는 햇살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렇게 홀린 듯이 성당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 여자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

‘네, 맞아요.’

‘혼자 여행중이신거면 같이 동행하시지 않으실래요?’


마침 동행이었던 동생의 빈자리가 허전하게 느껴지던 참이었어서 너무나 반가운 제안이었다.

그녀는 파리에서 가이드로 일하다가 곧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바르셀로나에 들렀다고 했다. 나보다 서너살은 어린나이였던 것 같은데 외국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모습이 제법 당차보였다. 게다가 그녀의 사진실력은 가이드라는 직업에 어울리게 훌륭했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내가 나온 사진은 잘 없는게 아쉬웠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미 고마웠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꽤 오랜시간을 보낸 후 그녀의 추천을 따라 벙커 드 카르멜이란 곳으로 이동했다. 내가 가려던 코스에는 없던 곳이었지만, 바르셀로나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곳으로 그당시에는 덜 알려진 핫스팟이라고 했기에 함께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고 거의 등산하다 시피 오르막을 오르던 끝에, 드디어 그곳에 도착했다.


그리 높지 않은데도 탁 트인 바르셀로나의 전경이 펼쳐졌다.

뭔가 가슴 한구석에 있던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내 안에 꼭꼭 숨겨두었던 외로움들과 불안감들이 소리내 외치는 것 같았다. 몇 분간 말을 잃은 채 눈을 감고 그 시간을 오로지 느끼려 했다. 따스한 바람이 귓가에 일렁이며 그동안 고생많았지- 라며 속삭이는 듯 했다.


자유, 그 두 글자 이외엔 이 모든걸 설명할 단어가 없었다.

한참을 온전한 자유를 느꼈던 시간은 아마 내 유럽면접투어 중에서도 손꼽는 순간일거다.



이상하게 이 도시에게서 나는 계속 받는 느낌이었다. 그 다음 들렀던 보케리아 시장에서 산 1유로짜리 달콤했던 딸기주스도, 피카소 박물관에서 느낀 그 신선한 피카소의 천재적 예술성도, 스페니쉬 요리를 함께 나누며 샹그리아를 기울였던 따뜻한 저녁도, 정열적이면서도 애환이 느껴지던 플라멩고 공연까지. 이토록 여행이 선물같이 느껴지는 건 분명 이 바르셀로나가 내게 특별한 곳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겠지.

더구나 나와 하루동안 동행하며 말동무가 되어주고, 어쩌면 혼자서는 하지 못했을 것들을 함께해준 멋쟁이 가이드였던 그녀를 만났던 건 내겐 큰 행운이었다.


특히나 계획에도 없던 곳을 망설임 없이 갔고, 그곳에서 느낀 완벽한 자유.

바르셀로나에서의 이 특별한 경험은 내게 또 하나 깨달음을 주었다.

인생에서 정해진 해답이란 건 없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그 계획에도 없이 발걸음을 내딛었던 내 무모한 결정을 통해 뜻밖의 선물을 얻었다는 것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무모하고도 대책없었던 면접 투어 역시

내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용기라는 선물을 주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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