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면접도시, 독일 뒤셀도르프
나의 유럽면접투어 마지막 목적지는 독일 뒤셀도르프였다.
원래 내 계획에는 없던 도시였고, 뒤셀도르프에서의 면접은 내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단 한번의 기회였다. 바르셀로나에서 뒤셀도르프로 가는 비행기를 타며 다시 면접을 위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이제 달콤한 여행은 끝났고 다시 현실의 시작이었다.
뒤셀도르프에서는 이미 도착해 있는 다른 동행인 동생과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동생은 자신이 지내고 있는 호스텔 주소를 문자로 보내주었고, 숙소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뒤셀도르프의 보도는 생각보다 잘 정돈되지 않아 울퉁불퉁했고 언제부턴가 걸음이 느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드르륵-드르륵- 캐리어를 끄는 소리가 어딘가 이상했다. 캐리어 바퀴를 확인해보니 한쪽 바퀴가 이미 닳아서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있었다. 그래서 20kg짐이 훨씬 무겁게 느껴진 거였구나, 아직 숙소까지 갈길이 먼데 막막해졌다. 거의 짐을 들다 시피 하며 낑낑대며 겨우 숙소에 도착하자 완벽하게 몸이 방전돼버렸다.
동생과 만나자 그래도 뭔가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동생은 오느라 너무 고생했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체크인 후 호스텔에서 같이 저녁 만들어 먹자며 함께 장을 보러 나가기로 했다. 뒤셀도르프는 의외로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였다. 그래서 곳곳에 한인마트가 있었고, 동생과 나는 너무나 밥이 먹고 싶어 쌀과 볶음밥 만들 재료 몇가지를 샀다.
물론 호스텔에 밥솥이 있을 리 만무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냄비밥을 지어 감을 잃었던 탓인지 물 양도, 뜸들이는 시간도 정말이지 대충대충이었다. 결국 설익은 꼬들꼬들한 밥이었지만 볶음밥 재료와 볶으면 좀 익겠지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요리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더 딱딱해진 볶음밥은 돌을 씹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실로 오랜만에 먹는 밥이라 그런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식사를 해치웠다. 그리고 그 볶음밥은 밤새 배탈로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나를 괴롭혔다.
따뜻했던 바르셀로나와는 다르게 뒤셀도르프는 너무나 추운 겨울 그 자체였다.
배탈이 난데다 짐을 끌고 오느라 기운이 없어 뒤셀도르프 구경은커녕 호스텔 침대에 가진 옷을 둘둘 껴입고 누워있어야 했다. 현실로 돌아온 환영식은 너무나 혹독했고, 서글픈 마음이 다시금 덮쳐왔다. 컨디션 난조는 지금까지 유럽면접투어중 처음에 가까웠던 일이었기에 마음까지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나를 걱정하던 동생은 나를 수시로 챙겨주려했고, 그 마음만으로도 고마웠다.
조금만 더 버티면 이제 곧 마지막 면접이었다. 이 면접을 위해 충분히 나를 위한 쉼을 주었고, 나는 이 면접에 다시금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했다.
다음날, 면접장과 가까운 호텔을 겨우 찾아 숙소를 옮겼다.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면접 전날인 오늘은 무리하지 않고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느지막히 일어나 밥을 먹으러 나갔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와 면접준비도 하고 음악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치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새벽3시경, 누군가 우리방문을 쾅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꿈인가 싶었지만 소리가 너무나 또렷했다. 겨우 눈을 떠 보니 계속해서 한 여자가 문을 두드리며 알수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독일어를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저 말은 횡설수설대며 하는 말인 것은 느낌으로 알았다. 몇 분의 간격을 두고 계속되는 소리에 우리는 너무나 무서워서 호텔 프론트에 전화했지만 너무 작은 호텔이라 프론트가 닫혀있었다. 하는 수 없이 문을 꼭 걸어 잠근 채 귀를 막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날 밤을 꼬박 샌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6시경, 뜬눈으로 지샌 탓에 피곤한 얼굴이 역력한 우리 둘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면접당일, 전투를 하는 심정으로 화장과 머리를 하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을 고치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속상한 마음을 겨우 다잡아야 했다.
준비를 마치고 면접장까지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에서 기다리기를 한참,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는 오지 않았다. 만일을 대비해 일찍 나오긴 했지만 더 이상 기다렸다간 아무래도 빠듯할 것 같았다. 우리는 서둘러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하필이면 그 동네는 택시조차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다급해진 우리는 가까운 작은 상점에 들어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영어를 잘 하셔서 의사소통에 무리 없이 곧바로 택시를 불러주셨다. 택시가 오는 시간동안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아주머니는 걱정 말라며 우리를 안심시켜 주셨다. 아주머니가 베푼 친절은 우리가 면접을 볼 수 있게 해준 그날 최고의 행운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택시를 타고 면접장 호텔에 도착한건 정확히 9시가 되기 3분전이었다.
승무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지각은 치명적인 마이너스 요소이다. 우리는 다행히 지각을 면했고 대기장소에 무사히 착석할 수 있었다. 바로 면접관이 들어왔고, 오늘의 일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어렴풋이 60명은 되는 숫자였기에 면접관은 일단 스몰톡을 생략하고 cv를 걷겠다고 했다. cv에서 탈락시키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cv와 증명사진, 그리고 신청서류를 작성했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한자한자 더 신중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저 cv를 제출하는 것이였지만 면접관의 눈은 항상 지원자들의 표정, 태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시종일관 미소를 짓는 나의 모습은 어딘가 마네킹 같았다. 사실 컨디션이 여전히 좋지 않았고, 어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에 아무리 화장을 해도 가릴 수 없는 피곤함이 신경쓰였다.
다음 단계는 1차 그룹 디스커션이 진행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둥글게 의자에 둘러 앉아 3명씩 팀이 되었고, 동생과 나, 그리고 독일에서 온 한 남자지원자가 한 팀이 되었다. 주제가 생각보다 아이디어를 내기에 까다로웠고, 주어진 시간에 결론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팀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내 의견 또한 내려고 노력했다. 이번에는 프레젠테이션에 면접관에게 지목당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팀의 팀원이 발표하는 모습까지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1차 디스커션이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은 늘 그랬듯 조마조마했다. 이 디스커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다음 단계로 갈수도 있는 그 경계에 서있는 그 시간은 정말이지 낭떠러지를 걷는 기분이었다.
실수한 것은 없었을까, 내 표정이 긴장해서 굳어있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 시간을 견디는 건 아무리 면접을 거듭해도 힘들었다.
평소보다 배는 더 기다린 것 같은 시간 끝에 결과가 나왔다.
제발 이 단계를 넘게 해주세요.. 간절히 기도하며 명단을 보았지만, 내 번호를 찾을 수 없었다. 동생 또한 이 단계를 넘지 못했고 우리의 마지막 오픈데이 면접이 끝이 나는 순간이었다.
1차 디스커션에서 눈에 띄었던 유달리 밝고 낭랑한 목소리의 한국인 지원자가 합격한 건 예상한 일이었다. 몇 명 합격하지 못한 한국인들 중 그녀의 행운을 빌어주며 면접장 호텔을 나왔다.
사실 여러모로 그날의 면접은 힘겨웠다. 참가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낯선 상점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택시를 불러주지 않았다면 면접자체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좋지 않은 컨디션과 까다로운 디스커션 주제는 어쩌면 그날의 나의 운이 따라주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면접이었기에 최선을 다했고, 후회가 남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자신과 상황이 원망되지 않았다. 악조건들 속에서도 직진한 마지막 도전은 충분히 의미 있었고, 수고한 우리를 위해 근사한 저녁을 선사할 예정이었다.
한달간의 유럽면접투어의 마지막 도시, 뒤셀도르프를 만끽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