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다고 힘들지 않은게 아니야

-바르셀로나 2nd day

by 셜리shirley

바르셀로나에서의 두 번째 날이자 마지막 날.

그래서 그 전날과는 다르게 오늘은 조금 느리게 여행할 생각이었다.

오늘 갈 곳은 구엘공원과 바르셀로네타 해변, 딱 두곳으로 정했다.

어제 열심히 돌아다녀 피곤했던 탓인지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났고, 뭔가 오늘은 평소보다 더 예쁘게 꾸미고 싶어서 그런지 준비시간이 길어졌다. 아마 누군가와 함께 여행했더라면 이런 부분조차 신경쓰였을 텐데 혼자하는 여행은 사소한 것에서 편안함을 주는구나,


밖으로 나가자 날씨가 어제보다 더 따뜻했고, 매일 입고 다니던 두꺼운 야상을 입지 않아도 충분했다. 항상 추위를 타던 내가 야상을 입지 않고 돌아다닌 곳은 바르셀로나가 유일했다.

야상을 벗으며 어깨가 가벼워지고 내 기분도 함께 가벼워지는 그런 자유를 만끽 할 수 있는 곳.

오늘도 정처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래도 오늘이면 마지막으로 이 도시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아쉬우면서도 묘하게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걷고, 버스를 타고 도착한 구엘공원은 가우디의 손길이 그대로 담긴 거대한 예술작품이었다. 남들도 다 찍고 간다는 모자이크 도마뱀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앉아서 한참을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 케이크로 만든 집 같은 건축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걸 하나씩 베어무는 말도 안되는 상상이 떠오르는 걸 보니 배가 고파졌다.



구엘공원을 나와 걷다가 들른 츄로스 가게에서 갓 구운 츄로스와 초코디핑소스를 샀다.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츄로스를 달콤한 초코소스에 찍어먹으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여유로운 오후였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한참을 걷다보니 바르셀로네타 해변이 보였다.

겨울바다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조용해서 더더욱 좋았던 바르셀로네타 해변.

적당한 곳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바다를 바라보는데, 그제서야 오로지 혼자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아기 엄마와 아기가 산책 나와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괜스레 엄마생각도 나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보고 싶어졌다. 사실 면접에서 합격한 상황이 아니라 연락하기엔 자신이 없었다. 좋은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여전히 나는 미완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감고 바다와 바람소리를 느끼다가,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들에 몸을 맡기고 한참을 앉아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베니스 면접에서 최종전에 떨어진 후 실컷 울지조차 못했다. 울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고, 왠지 한국으로 바로 돌아가고 싶어질 것 같아서 나는 아마 필사적으로 울고 싶은 감정을 눌러왔다. 그래야 내가 남은 시간들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울지 않았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게 아니었다. 아니, 죽고 싶을만큼 힘들었다. 그동안의 여정들이 머리에 스쳐지나가면서 고생한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짐을 잃어버려 당황하고 무서웠던 기억, 밤늦게 어둡고 무서운 거리에서 혼자 도망치듯 호스텔로 돌아와 배고픔을 참으며 잠들었던 기억, 새벽부터 열심히 준비하고 간 면접에서 1분도 안되는 시간에 탈락을 맛보고 돌아서야 했던 기억....


억눌려온 슬프고 서러운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좀 울어도 되는데, 좀 운다고 해서 내가 무너질 것도 아니었는데,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지 나는 내 감정들을 뚜껑에 꼭꼭 잠궈 새어나오지도 못하게 했던 걸까.

아마 지나가던 사람이 보면 이상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랑곳없이 음악을 더 크게 틀며 실컷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컷 울고 나자 이상하게 마음이 가뿐해졌다.

애도의 과정이란 것이 이런거구나, 그걸 하지 않고 내가 이만큼 참아온 것도 신기한 거였다.


나는 애초에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너무나도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 해외까지 나와 면접을 보고 탈락하는건 어느정도 예상했지만, 내게는 처음 겪는 일이었고, 그 도전을 위해 감내해야하는 역경들은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기에 이 모든걸 혼자 몸으로 겪어내기엔 당연히 힘들 수 밖에 없었다.



참는 게 다가 아니라고, 실패가 쓰라리면 좀 울어도 된다고,

그러고 나면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일어날 힘이 생기는 거니까.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의 시간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보석같이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