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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Aug 27. 2021

남을 짓밟으며 희열을 느끼는 불쌍한 인생들에게

-통역사에게 자기 일을 떠미는 간호사의 텃세라니

 나는 어려서부터 항상 남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부모님께 교육받으면서 자랐다. 남들과의 언쟁이나 다툼은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쉬우니 피해야 할 것이었고 한 번도 친구들과 치고받고 싸운 적도 없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혼나면 토 달지 말고 죄송하다, 잘못했다고 하면 늘 혼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죄송하다는 말이 습관이 된 건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도 화가 나는 상황이 오더라도 화를 잘 낼 줄 모른다.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 순간에 화를 잘 내지 못하니 사람들은 내가 화를 낼 줄 모르는 성격 착한 사람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본성적으로 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얼굴과 말투에 티는 확연히 난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상대방과의 껄끄러운 다툼과 언쟁을 피하고 싶을 뿐이기 때문에 내가 참고 말지, 라는 식의 방법으로 대부분 해결해왔다. 물론 강압적인 말투나 태도로 상대를 압박하는 사람, 이성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아예 엮이고 싶지 않아 피하기 위한 목적도 다분하다. 하지만 그 후폭풍은 내 몫이었다. 그로 인해 항상 상처 받거나 속상해하는 건 내쪽이었고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데 그 상처에 갇히고 힘들어하는 쪽은 항상 피해자라니.


물론 점점 사회생활을 하는 연차가 쌓일수록 동료나 친구 등 나와 엮여있는 인간관계에서는 대화로서 풀려고 노력하는 부분도 생겼다.

하지만 내게 지적할 만큼 자격을 갖추지 않은, 나와는 분야가 다른 제삼자가 나에게 일적인 부분으로 자존감을 건드리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날도 일본인 환자가 수술을 마치고 퇴원하는 날이라 통역을 위해 아침부터 병동으로 출근을 했던 날이었다. 일단 퇴원 응대 자체가 처음이었고 회진시간을 생각하지 못해 조금 급하게 도착한 건 내 실수였다.


입원실로 들어가자 큰 수술을 마치고 정신이 없던 환자의 옷이 다 풀어헤쳐져 있었다. 병동의 간호사가 아무도 케어해주지 않은 건가 의문스러웠지만 내가 입원실로 들어오자마자 회진을 도는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나는 곧바로 통역을 시작해야 했다.


통역을 하고 있는 도중, 나를 향해 매섭게 쳐다보는 간호사의 눈빛을 느꼈다. 나에게 눈으로 자꾸만 옷을 여미라는 사인을 보내는데 통역에 집중을 할 수 없을뿐더러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애초에 우리 통역사들에게는 환자의 몸에 손을 대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환자의 옷매무새를 바로잡아주는 건 환자를 케어하는 정확한 술기를 배운 간호사들의 일이지, 나의 업무는 아니었다.


그 간호사의 말도 안 되는 텃세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치료를 위해 잠시 대기하는 도중, 그 간호사는 내게 큰소리를 내며 내가 겨우 다듬어준 환자 옷을 확 풀어헤치며 옷을 이렇게 입히면 어떡하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건 엄연히 간호사인 본인의 일인데 본인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직무유기 책임을 물어도 모자랄 판에 왜 엉뚱한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물론 내가 담당하는 일본인 환자를 위해 도움이 필요하면 손을 보태줄 준비는 되어있지만, 마치 내가 후배 간호사인것마냥 나에게 옷을 제대로 왜 안 입히냐고 소리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10분 정도 일찍 오지 않아서 급하게 회진 통역을 한 것에 대한 질책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의무는 환자와 의료진의 커뮤니케이션이고 회진시간에 제대로 통역을 해주는 거였고 늦지 않게 나는 통역을 마쳤다.


옷을 제대로 입혀주지 않은 이유가 일본인 환자와 말이 안 통해서였다고 변명하는데, 그건 눈짓 손짓으로 해도 다 알아들을 정도의 케어인데 명백히 이건 책임전가였다. 나는 당신네들과 같이 24시간 병동에 상주하는 간호사가 아니다. 통역사인 내게 마치 손아랫사람인 간호사로 생각하고 다른 환자들이 다 있는 로비에서 내게 소리를 치는 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막무가내로 위압적인 그 태도에 이 사람은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이 들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퇴원 응대가 처음이라 죄송하다 라는 말로 그 상황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애초에 듣고 싶은 말은 자기에게 굴복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모양인지 그 이후 태도가 싹 바뀌며 말투가 한껏 상냥해졌다. 내 주위에 이렇게 가까이 사이코패스가 있었다니. 소름이 끼쳤다.



사실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동료들 중 수많은 성격장애들을 만났지만 우리는 팀 비행이 아니니 그날만 잘 버티자 생각하고 안 보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서로 리포트를 하니 마니 성가신 일에 엮이는 것도 질색이었다.


아마 이번 일도 어쨌든 병원에서 벌어진 일이니 언쟁이 커지면 상부에 보고가 올라갈 일이었다. 그 간호사는 매번 보는 동료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수술이 잡히는 한 계속해서 봐야 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건 환자가 보고 있는 앞에서 큰 소란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분명 이 간호사라면 큰소리가 나올게 뻔한데 그런 프로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건 좋을게 하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사히 퇴원까지 시키고 내게 남은 건 방금 그 간호사가 잘근잘근 짓밟아버린 나의 자존감이었다. 아마 그녀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겠지. 그저 병동에서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만만해 보이는 통역에게 실컷 퍼부었고, 그렇게 원하는 죄송하다는 말을 들었으니 기고만장할 테지. 나는 문득 그렇게 남을 짓밟으며 희열을 느끼는 벌레만도 못한 인생들이 참 가엾게 느껴졌다.


나는 분명히 말해두건대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그 어떠한 편견과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3교대 근무를 하며 환자를 돌보는 일은 충분히 대단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게다가 나 역시 불규칙한 3교대 근무를 해본 적이 있어서 그 피곤과 스트레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는 관대하고, 통역 없이는 한마디도 환자에게 말도  하는 주제에 당당하게 통역에게 환자케어 잘하라고 지적질을 하는 간호사라니. 그녀가 병동에서 일하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피곤했는지    아니고 알아야  이유도 없다. 그걸 엄한 사람에게  정도로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사람은 간호사라는 호칭조차도 아깝다. 주변엔 훨씬  힘든데도 항상 남을 배려하고 친절하신 간호사들이  많다.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법, 우아하게 무례한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법.. 요즘 이런 말들이 많이 보이고 들리는걸 보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만난 간호사보다 더한 성격장애들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지 못해 남을 깎아내리며 자존감을 올리고 희열을 느끼는 불쌍한 인생들일 뿐이다. 우리는 한껏 가엾게 여기고 저 인생처럼 살지 말자고 좋은 본보기로 삼으면 된다.


아마 나는 다시 그 간호사와 일하게 된다면 분명히 말해둘 거 같다.

쯧쯧, 남 짓밟는게 무슨자랑이라고, 불쌍한 인생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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