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
다음 날, 함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어느덧 세 번째 도시로의 이동이었고, 이젠 혼자서 이동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차츰 혼자 다니는 외로움에도 익숙해져 가는 듯 했다. 베를린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직항 비행기를 타기 전에 남은 시간동안 베를린 장벽을 방문하고,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부다페스트는 동유럽 여행의 꽃이라고 부를 만큼 아름다운 도시였기에 나는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함부르크에서 자신감을 얻은 나는 이번에야말로 성과를 내고 싶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면접까지 이틀정도 남아있어 오랜만에 여행자 모드를 즐길 수 있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는 사치라고 생각했던 오페라를 우리 돈 7000원으로 즐길 수 있었고, 한식이 너무 먹고싶어 하루만 묵기로 한 한인민박에서 야경투어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화려한 야경으로 유명한 부다페스트에서 유럽배낭여행자의 모습을 한 나는 사실 승무원준비생이자 수많은 한국 지원자들 중 하나였고 이날의 밤은 그런 나에게 선물같은 밤이었다.
국회의사당, 세제니 다리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 야경을 한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금은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가난한 여행자인 나지만, 언젠가 저렇게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고 싶다고.
다음날 면접 당일, 여느 때와 같이 새벽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확실히 독일 함부르크보다는 많은 수의 지원자, 역시 동유럽은 경쟁률이 서유럽보다는 더한 듯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한국인 지원자를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처지로 유럽을 돌고 있는 그들을 볼 때면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함께 면접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보다도 훨씬 오랜 기간동안 이 면접투어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나보다 훨씬 많은 나이의 언니들도 있었다. 다 제각각의 배경과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그 어느 하나 간절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오늘은 지원자가 많은 관계로 cv드롭으로 1차적으로 지원자를 거를 모양이었다.
첫인상이 전부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단계는 어쩌면 면접 중 가장 어려웠다. 지원자의 표정, 말투, 걸음걸이 그 모두를 1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파악하는 면접관의 마음에 들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여전히 긴장되는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날도 연습한대로 미소를 지으며 면접관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긴장했던 나머지 면접관의 질문을 처음에 알아듣지 못해서 다시 한번 말해주겠냐며 물었다. 오늘은 정말 망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면접관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내 cv를 가져갔다.
면접은 늘 그렇듯 대기가 정말 피가 말린다. 스몰톡에서 이미 실수했던 나머지 더더욱 괴로운 마음이었고,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더디게 느껴졌다. 함께 면접 본 지원자 동생들은 어차피 이미지이기 때문에 스몰톡에서 실수해도 큰 영향 없을거라며 나를 위로했다.
발표가 나왔다. 한참을 찾아도 내 번호는 찾을 수 없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와 닿는 순간이었다. 함부르크에서 쌓은 자신감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나와 함께 면접 발표를 기다리던 한 동생은 붙고, 한명은 나와 함께 떨어졌다. 떨어진 동생은 내게 어쩔 수 없죠,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맛있는거나 먹자며 나의 손을 이끌었다.
-너는 떨어졌는데 속상하지 않니?
-속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다음이 있으니깐요, 여기서 무너질수는 없죠.
이 친구는 이미 나보다 한달은 더 일찍 와서 면접투어를 하던 중이었고, 더 대단한건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조차 끊지 않고 붙을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내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었다. 나는 내가 어쩌면 좀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특히나 함부르크 면접에서 두 번째 디커까지 올라갔다는 자신감으로 우쭐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부다페스트에서의 면접은 다시금 나를 겸손하게 했고,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이렇듯 1분만에 끝나버릴 수 있는, 이 리스크 큰 면접을 보기위해 매일같이 국경을 넘을 수 있었던 용기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하루하루 단단해져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화려하고 찬란한 야경보다도 더 반짝반짝 빛나는 건 그 순수한 용기와 열정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