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스페인을 면접보러 오다니

-스페인 마드리드 via 빌바오

by 셜리shirley


부다페스트에서의 면접 탈락 후, 나에겐 절망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면접장 호텔로비에서 바로 다음 면접 장소로 갈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다음 목적지는 스페인, 빌바오였다.

영국유학시절에도 그렇게 가까운데도 가보지 못했던 스페인, 늘 나에게는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스페인을 면접을 보러 가며 처음 가게 되다니, 그것도 마드리드는 잠시 경유하는 도시라 관광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후 이렇다 할감흥도 없이 누릴수 있었던 건 호텔 앞 식당에서 먹은 빠에야와 샹그리아가 전부였다. 너무 맛있었지만 너무나 짠 빠에야 때문에 그날 밤 내내 물을 마셔야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면접만 아니었더라면 더 자유롭게 여행할수 있었을까.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마드리드였다.


빌바오는 스페인에서도 나름 큰 도시라도는 하지만 마드리드를 경유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했다. 다행히 마드리드-빌바오로 이동하는 버스는 굉장히 깔끔했고, 이동하면서 영화까지 볼수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비긴어게인'을 스페인어 더빙으로 보며 내 생애 첫 스페인을 나름대로 만끽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들, 비록면접에 탈락해 다음면접을 보기위해 떠도는 가난한 면접자지만 내게 주어진 것들은 오롯이 누리자는 마음들은 나를 버티게 해 주었다.


4시간 남짓 후 드디어 도착한 빌바오.

숙소에 짐을 풀고 곧 저녁시간이 되어 시내를 나가 식당을 찾아보았지만 죄다 타파스라는 간단한 식사만 먹을 수 있었고 배가 고팠던 나와 일행은 헤메다 못해 결국 KFC에서 햄버거를 신나게 먹었더랬다.

은은한 불빛, 어둠이 깔려가던 저녁어스름의 잔잔한 이 도시의 첫인상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내일을 알수 없는 불안감 가득했던 마음들과 그럼에도 어느 도시에서 합격의 기쁨을 누릴지도 모른다는 기대, 돈이 점점 떨어져가는데도 여행은 하고싶은 마음들,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인 하루들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부디 내일 면접에선 긴장하지 않고 더 나아지기를, 혹시나 또 떨어지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단단해지기를. 그렇게 바랬던 면접전날 빌바오에서의 저녁이었다.





다음날, 빌바오에서의 면접은 부다페스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면접관이 남자친구의 어머니라는 암시를 걸면 얼마나 잘 보이고 싶겠냐며, 한번 시도해 보라는 지원자 동생의 조언에 힘입어 참하고 예뻐보이려고 미소짓느라 광대가 덜덜 경련이 올 정도였다. 게다가 이번 cv드롭에서는 스몰톡에서도 떨지 않고 잘 대답한 것 같았다.

그러나 한국인을 선호한다는 소문까지 있었던 면접관에게도 결국 나는 선택받지 못했다. 이쯤되자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는 지경에 이르렀다. 면접관은 우리가 떨어진 이유에 대해 절대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뭐가 문제인지 말만 해주면 고칠 수 있을텐데 왜 그걸 말해주지 않는지 야속하게 느껴졌다.


간간히 합격한 한국인 지원자들은 유달리 예쁜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았다. 전날 화장법도 바꾸려 몇 번을 연습하고, 면접복도 몇 벌 되지 않지만 다르게 매치해보며 첫인상을 어떻게든 좋게 해보려고 노력했던 것도 다 허사인 것만 같아 허탈했다. 마치 미스코리아를 선발하는 것 같은 이 면접에 의미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던 것 같다.


어느덧 유럽면접투어도 3주째에 접어들었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점점 다가왔다. 마음은 조급해지는데 이렇다 할 성과가 없으니 가족들의 연락에도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상 다음 목적지 이탈리아 베니스, 그리고 아테네에서의 면접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아테네까지의 이동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면접까지의 남은 시간도 길었다. 점점 떨어져 가는 경비도 걱정이었다. 이대로 아테네 면접을 포기하고 베니스 면접을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냐, 1주일 연장을 해서 한번이라도 더 면접을 볼 것이냐 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해야 했다. 만약에 연장을 해야 한다면 비행기 티켓 날짜 변경을 해야했고, 수수료 또한 만만치 않았기에 결정은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다음날 일단 베니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새벽 3시에 일어나야했다. 앞으로의 고민으로 쉽게 잠들 수 없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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