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의 1일 난민체험, 그래도 이 도시는 아름다워

-이탈리아 베니스

by 셜리shirley

빌바오에서 베니스까지의 이동은 벨기에 브뤼셀을 경유하는 비행이었다.

새벽 비행기라 꼭두새벽부터 준비해 택시를 타야했고 24시간 운영이 아닌 공항이라 열리지 않은 공항 앞에서 추위에 덜덜 떨어야했다. 북부 스페인쪽이라 그런가 정말 칼바람이 매서웠다. 공항이 열린 후 무사히 체크인을 하고, 브뤼셀에서 비행기를 잘 갈아탔다.

정말이지 베니스에 도착할 때까지는 아무 일 없이 순탄히 흘러가는 듯했다. 적어도 수하물을 가지러 가기 전까지는..!



비행기에서 내려 한참을 기다려도 수하물 벨트에서 내 캐리어는 나오지 않았다. 워낙 눈에 띄는 연두색이기도 해서 다른 승객이 바꿔서 가져갈 리도 없었기에 이건 뭔가 잘못됬다고 생각이 들었다. 결국 로스트 앤 파운드 오피스로 가서 내 캐리어의 모양과 색깔을 설명하고 한참을 알아본 결과..


경유지인 브뤼셀에서 내 캐리어가 연결이 되지 않았다는 황당한 소식이었다.

저가항공사에서는 종종 짐 분실이 일어난다는 얘기를 동행들에게 들었었지만 설마 그게 내 일이 될거라곤 생각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 모든 짐들, 면접복, 구두, 하다못해 세면도구까지 모두 내 캐리어에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 난감한 상황이었다. 난감함에 발을 동동 구르는 나에게 로스트 앤 파운드 직원은 이런일은 자주 겪는다는 듯이 아주 사무적이게 내게 무언갈 건냈다.



바로 난민자키트....! 간단한 세면도구와 반팔티셔츠까지 친절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내가 이 유럽땅에서 정말 별 우여곡절을 다 겪는구나..

다행히 캐리어는 오늘 저녁중으로 숙소로 택배로 부쳐준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긍정을 잃으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십상이었다. 분실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며, 면접전에만 캐리어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우선은 숙소체크인을 하고 맛있는 걸 먹고나면 기분전환이 될게 확실했기에 우리는 공항에서 숙소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구글지도를 찾고 물어물어 겨우 도착한 베니스 숙소.

오픈데이투어에서는 최대한 저렴한 숙소를 골라야 했기에 그리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면접전날에는 최대한 면접장과 가까운 호텔을 예약하기 위해 경비를 아껴야했다. 그렇게 예약한 숙소는 거의 캠핑장 같은 호스텔이었다.

정말이지 침대와 화장실만 딸린,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춥기 그지없었다.

고생할 각오를 하고 이 투어를 온건 사실이지만 짐까지 누락된 마당에 숙소마저 손바닥만한 크기에서 손바닥만한 침대에서 웅크리고 있자니 어딘가 서러웠다. 정말이지 눈물이 또르르- 흐를것 같았다. 침울해져 있는 나를 보더니 동행인 룸메는 맛있는거 먹으러 나가자며 내 손을 이끌었다.


숙소를 나가자마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그래, 이곳은 이탈리아 베니스였다! 마음은 추웠지만, 이 도시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길을 걷다가 아무식당이나 들어가서 피자와 라자냐, 깔라마리를 시켰다.

아니,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 맛있게 만들수가 있는거지? 내가 지금껏 먹어온 이태리 음식은 대체 뭐였나 싶을 정도로 음식이 훌륭했다. 특히 깔라마리의 바삭함과 신선함이 입안에서 넘나들었다.


그리고 정처없이 또 걷다가 젤라또 집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인생이 텁텁할 땐 역시 당이 필요한 법이다. 쫀득하고 달달한 초코맛 젤라또를 시켜 한 스푼 입에 넣자마자.. 감탄이 절로나왔다.


내 인생도 언젠가 이 달콤한 젤라또처럼 달달해질 날이 오겠지-라며 내 마음을 달래던 베니스에서의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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