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니스
베니스 면접이 다가올수록 나는 이번 면접이 정말 마지막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면접에 모든 걸 쏟아부어야 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더더욱 긴장되는건 어쩔 수 없었다. 만약에 정말 이번에도 cv드롭에서 탈락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왔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불안감을 넘어서야 했다. 애초에 탈락이 무서웠다면 오지도 않았을 이곳이었다. 이미 다섯 번째 오픈데이였다. 나는 이미 국경을 몇 번이고 넘었고 이제 와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면접 당일,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몰렸다. 오늘은 이탈리아 현지 지원자들이 많이 보였다. 한국인들은 거의 찾기 힘들었다. 유리할수도, 불리할 수 도 있는 면접이었다. cv드롭이 시작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관 앞에 섰다. 면접관은 내게 밝게 인사를 건넸지만 스몰톡은 또 긴장한 나머지 매끄럽게 말을 하지 못했다. 정말 내 자신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정말 이번에도 CV드롭에서 탈락한다면 이건 정말 내 역량 부족이라고 받아들이고 당장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정했다.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며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건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온갖 생각들이 다 들며 1차 Cv결과를 기다렸다.
결과가 나왔고, 나는 어차피 떨어졌겠거니 하며 힘없이 내 번호를 확인하러 갔다.
놀랍게도 선명하게 내 번호가 적혀있었고,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다섯 번째 오픈데이를 참가하며 cv드롭에서 합격한건 처음이었다. 함부르크에서는 cv드롭을 거르고 바로 다음단계로 올라갔기 때문에 cv드롭에서의 합격의 의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그 후로 두 번이나 cv의 문턱에서 실패한 후 합격은 정말이지 내게 의미가 남달랐다. 나와 함께한 동행인 동생 둘도 합격했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신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했다.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1차 디스커션, 함부르크 이후 처음으로 디스커션을 하려니 손이 덜덜 떨렸다. 침착해야 했다.
이번에도 둥글게 모여 앉아 팀원들과 짧은 토론을 나누고 결론을 도출하는 디스커션이 진행되었고, 나는 이번에도 결론을 프레젠테이션 하는 역할로 지목받았다. 너무 튀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의견이 없어서도 안되는 디스커션은 강약조절이 그래서 중요했다. 나는 차분히 팀원의 의견을 요약해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1분 남짓 되는 프레젠테이션 동안 내 심장은 터져버릴것만 같았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내 모습은 내 자신도 신기할 정도였다.
그만큼 간절했다. 나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가 없었기에.
1차 디스커션이 끝나고, 초조한 마음을 달래려 호텔로비에서 커피를 마시고, 화장과 옷매무새를 다듬기도 하고, 동행인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며 대기시간을 견뎌야 했다.
결과는... 1차 디스커션 합격이었다.
동행인 두 동생은 아쉽게 1차에서 탈락해야 했고, 나는 곧바로 2차 디스커션을 준비해야했다. 두 번째 2차 디커, 함부르크에서도 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탈락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순간 불안하고 두려워졌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2차 디스커션이 시작되기 전 암리치라는 팔 길이를 재는 단계를 거쳤다. 승무원은 비행기 안에서 짐을 넣는 오버헤드빈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지원자격에 암리치가 정해져 있었다. 그 당시 에미레이트 암리치 기준은 212cm였고 생각보다 이 높이는 꽤나 높다. 나는 면접관에게 내 자켓을 벗어도 되냐고 묻자 세상 친절하게 물론이지! 라며 내 자켓을 들어다주었다. 나는 정말이지 이 면접관과 파이널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2차 디스커션은 15명 남짓 되는 대 인원이 함께 토론을 나누는 방식이다. 팀원들은 이탈리아, 프랑스, 동유럽 등등 여러 나라에서 온 지원자들이였고 한국인은 나 포함 2명이었다.
확실히 유럽 지원자들은 본인들의 주장이 세고 발언이 거침이 없었다. 그 안에 참여해서 얘기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겨우 한마디 의견을 냈지만 면접관에게 어필하기엔 너무나 약했다. 정신없이 휘둘리는 느낌이었다. 한국지원자들은 정말 얌전하게 디스커션을 하며 서로를 배려해주는 반면, 유럽지원자들은 한치의 양보가 없었기 때문에 이 분위기의 디스커션은 정말이지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지옥 같던 2차 디스커션이 끝이났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지독한 기다림의 시간을 버티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