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에서 35년간 근속하고 정년을 맞은 A 씨
주위에서 축하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A 씨는 한 직장에서 삶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햇볕도 들지 않고, 50 데시벨이 넘는 쇠를 깎는 기계들과 쾌쾌한 작동유 냄새와 미세먼지들로 가득한 작업장에는 28도로 맞추어진 난방 히터의 온기만이 가득 차 있었다. 점심 식사시간에는 기름때 묻은 손톱으로 얼룩진 오른팔로 혼탁한 철판에 담긴 하얀색 밥을 맛있게 먹었다. 언제나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사람과, 정해진 작업물을 마주하며 35년간의 세월을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친 것이다. 그간의 노동으로 아들, 딸 대학교도 졸업시키고, 집 한 채도 장만하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이제는 떠나는 것이다.
정년을 맞이하고 떠나는 A 씨에게 직장동료 모두는 축하한다고 한다. 회사에서도 정년을 맞이한 A 씨에게 특별 위로금을 건넨다. 그런데, 과연 직장동료들은 A 씨에게 무엇을 축하하는 걸까? 과연 A 씨는 축하를 받을 만큼 축복 속에서 인생을 산 것일까? A는 회사 정문의 경비실 앞 바리케이드를 통과한다. 그 순간, 그가 받은 모든 축하 메시지 그리고 그의 존재는 삽시간에 사라진다. 대부분 그의 자취를 기억하지 않는다. 오로지 일부 사람만이 자신의 기억 속에 그의 존재를 잠시 가등기시켜둘 뿐이다.
다시 홀로 살아야 할 시간, 하지만 인생은 생각보다 짧았다. 대한민국 평균 건강 수명이 71세로 치면, 자신의 의지와 생각으로 두발로 걸어 다닐 날은 대략 3,650일 정도 일 것 같다. 그중에서 잠을 자야 할 시간은 거의 절반이 넘을 것이다.
나머지 시간은 병원 침상에서 누워 하얀색 석면텍스의 무늬를 바라보며 지나간 과거의 후회를 드러내야 될지 도 도 모른다.
A의 딸과, 아들도 A와 같은 배우자, A와 같은 직업을 얻어서 행복하게 살길 바랄까? 세상 모두가 A와 같은 삶을 살아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A와 같이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세상이란 냉철한 경쟁 속에서 누구나 다 똑같이 행복하게 살 수는 없다. 세상은 시간을 차지하기 위한 인간들의 상대적인 경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경쟁이라....
한 직장에서 35년간을 똑같은 일을 하며, 오직 월급만을 위해 인생의 의미를 두지 않고 보내 버리 그 시간들...
나는 정년을 맞이한 A에게 축하가 아닌, 한탄이 담긴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것 같다. 물론 그 짧은 위로도 잠시 지나가는 생각과 말에 지나지 않고, 반대로 과연 '내 삶은 어떻게 되어야 하나?'라고 자문해 볼 것이다.
왜 시간을 사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누군가는 A가 보낸 35년간 시간을 이미 현금으로 바꾸어, 자신만의 금고 속에 고이 간직해 두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