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문맹 직장인 자본주의 홀로서기 1
가난뱅이 직장인의 생존법 1
과연 왜?
나는 학부시절 문학을 전공했지만 생각지도 않게 공대생들이 득실거리는 제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제조업이란 곳은 기본적으로 공대생들의 이공계 지식이 기초가 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지식에 대한 갈증은 언제나 '엔지니어링' 분야였다. 나는 기술과 관련된 지식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남몰래 관련된 지식을 탐구했고 알려고 노력했었다. 그리고 나는 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마치 전문가처럼 행동하고 인정받는 것이 나의 직장생활에 있어서 생존을 가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능숙하게 잘 해내는 것이 마치 일의 보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나의 모든 관심과 생각은 늘 거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오로지 직장생활에서 보람을 느끼기 위한 방법을 찾고 그곳에서 나 스스로가 오래 다니기 위한 전쟁을 펼친 것이다. 그 결과 나에게 주어진 것은 기업과의 계속적인 근로계약 없이는 생존이 할 수 없는 노동자, 즉 월급 노예 말곤 없었다. 이 월급을 위해서 내 인생에서 앞으로 남은 청춘의 시간도 모두 헌신해야 되고 정년이 되어서도 쪼금이라도 더 벌어먹기 위해 비루하게 무작정 버티어야 하는 상황까지 몰고 갈 것이 자명해 보였다.
혹자는 회사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재테크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았다. 승진과 연봉 상승 등으로 근로자 개인의 부의 가치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개인마다의 환경(예: 아내의 직업과 연봉, 부모의 재산, 가정환경 등)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재테크라는 가치의 기준도 개인에 따른 차이가 있을 것이라 보지만 나의 경우를 돌아보면 성실히 일한 대가로 평균 이상의 연봉 상승과 승진을 해왔지만 나는 아직도 부(富)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내가 할 수 있는 직장생활이 30년이라 보고 이미 절반을 지나온 지금의 나를 돌아볼 때 남은 절반이 지난 후의 나의 미래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흙수저로 태어났고 나 자신의 경제력 외에는 의지 할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러한 분들이 나의 글을 읽는다면 매우 흥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의 보편적 기준이 될 것이다.
사실 그들은 그저 매우 좁은 영역에서 그와 관련된 변수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수준밖에 안되지만 이러한 진실을 잊어버리고 싶은 듯하다.
그렇다면 그것을 옆에서 곁눈질하고 보고받는 사람의 이해도는 얼마나 될까? 이처럼 엔지니어링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 지식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포장하며 허영을 부리는 직장인들도 많이 보아왔다. 나도 그러한 부류 중의 한 명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부를 증가시킬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기업의 조직이란 곳에서 상사의 기분을 살펴야 했고 해결하기 어려운 업무를 풀기 위해 밤새 고민해왔다. 이러한 일들을 잘해 낼수록 기업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기업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기업에서 나의 연봉을 파격적으로 50%, 100% 올려 줄리는 만무했다. 아무리 일을 잘했어도 연봉 인상률은 매년 2~3% 수준이었고, 경기가 좋지 않으면 동결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는 그저 칭찬 한마디 덕담 한마디 더 듣고 나의 일할 자리를 보장을 받는 수준이었다.
결국 내가 회사를 위해 몰입하고 소모했던 모든 시간, 지나친 에너지 소모로 나의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에 사용할 힘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 가난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보통 직장인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회사생활은 마치 ‘방향제’와 같다. 나 자신이 스스로 내뿜을 수 있는 향기가 사라져 버렸을 땐 조직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의 향기가 사라지기 전에 내 삶을 바꿀 특단의 대책을
사전에 마련해 두어야 한다.
평범한 직장생활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물질만을 쫒다 보면 자본의 풍유함을 누릴 수도 있겠으나 내 삶의 모든 양상이 물질로써의 의미들로만 채워진다면 그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직장인으로서의 삶과 나로서의 삶이 공존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들 삶의 균형을 서로 존중해주는 주체는 바로 '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