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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석 경영지도사 Oct 10. 2021

담배를 피우는 이유

침묵이란 소통의 철학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나지 않은 척박한 사무실 공간, 비슷한 고민거리로 가득 찬 사람들과의 갈등 속에서 항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집, 엘리베이터, 자동차, 사무실로 연결되는 외로움이란 이름의 파이프라인들이 견고한 무쇠로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무자비하게 배척하고 있는 현실 속 슬픔을 상징한다.


어쩌다가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믿지 못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이 치료제가 굳이 담배였을까?


나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31살에 담배를 끊었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왕왕이 있다. 내가 담배를 피웠던 경우들을 생각해보면 대부분 아래와 같은 단어들로 설명이 가능했다.


외로움의 타개, 고독의 변질, 생각의 전환, 자아에 대한 반성, 가슴 뭉클했던 추억의 상기, 불안의 해소, 영화 속 고독한 주인공, 사랑, 폼생폼사, 내면의 한계...


담배를 실질적으로 끊은 지 오래지만, 담배를 빌려 달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불(火) 필요한 구걸이라도 해서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주위 여러 사람들을 관찰해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는 비단, 나의 경우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굳이 담배여야 하는가? 나는 이 본질적 원인의 공통분모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마침 그것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소통장애를 겪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교감하며 즐거운 소통을 원한다. 그러나 이 소통의 결핍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소통의 결핍은 진실을 왜곡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선택을 무시할 수 있다. 또한 평등과 자유가 보장되지 못할 수 있다. 때론 힘이 센 다수가 힘없는 소수자들 아픔을 내팽개쳐버리게 만들 수 있고, 개인 없는 조직이 목적과 수단을 혼돈스럽게 만든다. 표면적인 소통장애는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말을 못 하거나, 하고 싶었던 말을 못 하게 되는 스트레스성 질환이다. 이러한 답답함의 치유는 각 개인들의 몫이다. 그러나 할 말 다하고 산다고 해서 그렇게 대단히 속이 시원하지도 않다. 이것은 대개 동양의 고 맥락적인 환경 속에 침묵의 존중, 나이 많은 사람들의 자존심, 회사 내 직급이 인생의 계급을 정하는 사회, 일본의 조직문화를 맹목적으로 존경해 왔던 기성세대들의 생각 등 문화적이고 관행적인 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개인은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아래는 '일본전산'이란 책 표지이다. '목소리 크고, 밥 빨리 먹는 사람을 뽑아라',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하라!" 뭔가 권력을 가진 집단이 한 개인에 대해 '투입=산출' 메커니즘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 '소통장애'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일본전산 책 표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라는 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소극적이고 값싼 선택은 그렇게 '담배' 였던 것이다. 담배는 시간과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 괜찮은 소통의 매개가 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말을 많이 하거나, 누군가로부터 어떤 말을 많이 듣는 상황일 때에도, 종종 아무도 이야기하고 듣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 이는 오히려 소통을 더 악화시킨다. 서로에게 조금 더 집중하고 한 발짝 물러서서 상대를 배려하고 생각해 줄 수 있는 공간은 바로 '침묵'이다. 침묵이 들어간다고 해서 아무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말 대신 내가 전하고자 하는 진심이 담긴 감정을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효과적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향하는 소통은 바로 '침묵의 소통'이다.

내가 한 때 외롭고 힘들어 가장 암울했던 시절에 친했던 친구와 단둘이 담배를 피웠던 시간이 있었다. 당시 친구는 나의 모든 상황과 사정을 알고 있었고 나 또한 그랬다. 우리는 부산의 좁디좁은 자갈치 시장의 저잣거리를 지나 고깃배가 드나드는 해안가 주변의 철옹성처럼 넓게 깔린 어느 한 테트라포트에 앉아 아무 말도 없이 바다만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순간, 나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해주는 친구의 그 자체의 모습으로 나는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순간,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서로에 대해 크나큰 사랑과 고마움이 오간 것을 충분하게 느꼈다. 친구의 시혜란 바로 이런 것일까?

남자들끼리는 안다. 우리 손에 뭔가 만지거나 입에 들이댈 것이 없는 채로 아무 말하지 않는 상황에 있다는 것이 매우 어색하다는 것을...


왜, 우리는 침묵이 필요할까?


자석은 N극과 S극이어야 서로를 당긴다. 사람 관계도 그렇게 되어야 궁합이 맞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 사고를 한다. 우리가 소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거나 비슷한 환경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잘 끌어당기지 못한다. 같거나 비슷한 환경 속에서 자기중심적 사고는 이처럼 타인을 배척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종종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잘 모른다. 아니,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도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세계의 비극이다.


어린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도 어쩌면 누군가와 진심이 담긴 대화가 필요해서 일 수 도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거짓과 허세와 무의미한 험담, 배려 없는 말투로 남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소통을 잘하는 방법을 찾아 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나는 '침묵의 소통'을 글 쓰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침묵이 들어간다고 해서 아무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말 대신 나의 감정을 최선으로 상대방에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는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소중한 소통의 통로다. 글쓰기와 문학에 대한 존경심도  갔다. 어쩌면 나의 내면을 가장 솔직하게 표시하고, 이야기할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글쓰기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침묵과 생각이 9 이상이다. 그리고 글을 마치는 순간 모든 것이 완성되고, 충분하게 소통을  기분이다.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것 말고도 우리는 소통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나는 많은 개인들이 이들 방법들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잘 섞어서 스스로 치유하고 해소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하나의 글을 쓰게 되어 기쁘고요, 그렇게 감동적인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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