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년째 장규직 팀장을 모시고 있다. 장규직 팀장은 팀원들에게 무뚝뚝하다. 아니 그는 무뚝뚝하길 넘어 팀원들에게 억척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고집이 강한 분이다. 그는 남들의 얘길 잘 듣지 않는다. 팀원들은 그로부터 야단맞지 않기 위해 평소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나도 그와는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종종 있는 그와의 대화는 오직 일에 대한 것뿐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본 적이 별로 없는 듯하다. 그는 회사를 위해 열정을 다 쏟아 부고 언제나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장규직 팀장을 존경하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어떤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장규직 팀장은 경영진으로부터 열심히 일하는 팀장중의 한 명이며 일 잘한다는 소릴 듣는다.
오늘 장규직 팀장은 팀원들에게 회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일과 후 시내 중앙상가에 있는 한 고깃집에서 10명의 팀원들이 자리에 모였다. 팀원들이 대부분 젊은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분위기는 그렇게 썩 나쁘지 않았다. 젊은 팀원들은 자신의 사수 뻘 선임이나 상사들에게 온갖 미사여구와 아부성 멘트로 앞으로 잘 좀 봐달라는 변죽의 눈초리로 쓸쓸한 로비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들은 장 팀장의 썰렁한 농담도 받아주며 모임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십거리 건배사 메들리는 오늘 안주 보더 더욱 감칠맛 나는 자연산 활어회 코스요리와도 같았다.
장규직 과장은 술만 먹으면 기분이 업되는 듯하다. 평소에 얘기가 없다가도 회식자리에서는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된다며 팀원들에게 스트레스를 풀라며 웃고 싶지 않은 웃음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런 그의 모습에 모두들 분위기가 좋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이렇게 웃고 떠드는데 하나도 재미가 없다. 모두가 큰소리로 웃음을 치며 하늘이 내려앉을 정도로 낄낄대며 재밌다고 소리를 치고 있지만 이 인위적인 상황과 진의 없는 대화는 너무나도 재미가 없다.
하지만 아무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자리가 더욱 싫어진다.
여기 모인 모든 이들도 나와 같을까?
나도 나를 따른 던 팀원이 두어 명 있었다. 그들이 나와 함께 일을 할 때 회식자리에서 나에게 고맙다거나 존경한다는 말을 종종 했었다. 그런 표현에 나는 늘 고마움 반 미안함 반이었다. 그래도 그러한 부하들의 고마운 마음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해줘야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연이란 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몇 해가 지나 그들은 새로운 보직을 맡으며 다른 부서로 이동했고 나와의 업무적인 인연은 종결되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들과의 인연은 거기 까지였다. 그 이후 같은 팀원으로서 한 울타리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그들은 나와의 어떠한 개인적인 연락도 없었다.
그들이 나에게 표현했던 모든 표현들은 사실 그들이 처해진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생존과 안위를 위해 나에게 아무 의미 없이 던진 미끼였을까?
그 들을 위해 그래도 나름 신경 쓰고 밤잠을 설쳤던 나날들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는 기업이라는 무대에서 만나 정해진 역할극 속의 주어진 대본을 읽는 싸구려 배역들이었는가?
우리들의 관계는 무엇에 의해 그렇게 조장되고 기업의 자본을 위해서 비정한 연대를 담보로 한 값싼 위로로 조롱받았을까?
회식자리에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회식을 왜 하는 걸까? 서로룰 위해 희생하며, 아끼며 보살피며, 가르치며, 올바른 길로 이끌고, 서로 배우고 사랑하며, 좋은 인연이 되고 어쩌고 저쩌고..... 그렇게 해서 결론은 그래서 뭐야?
사기꾼이란 거짓을 이용하여 남에게 금전적 손해만을 끼치는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난데없이 마음에 없는 말을 계속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사기꾼이다.
-즐거운 기업 아름다운 인생 中에서-
내가 사실 듣고 싶은 이야기는 나의 안위와 나의 미래이다. 그리고 그와 관계된 서로의 생각과 지혜이다.
다소 거창하거나 불분명한 진리를 담고 있는 망상이라도 나의 방황을 멈추어주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의 일탈을 꿈꾸며 설레고 싶을 뿐이다. 그런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지금 본인들이 서있는 자리에서 그 지위를 평생을 보장받으며 먹고살 것처럼 그런 이야기를 할 의자가 아예 없는 듯하다. 마치 자신의 자리가 영원히 보장받은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겉으로는 기업을 너무 사랑한다. 나는 소싯적 기업만을 바라보고 열심히 일만 해오다 조직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쓸쓸히 짐을 싸는 광경을 본적이 여러 번이다. 언젠가 그런 시간 들은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이다.
직장인들은 그 다가올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다들 그렇게 거짓 표정을 일삼으며 그것조차 동정표를 받는 선량한 행위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좋은 인연을 이어가려면 마음에 없는 소리를 줄여야 한다.
그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음에 없는 소리는 은연중에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계속한다는 것은 모두를 파괴하는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