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문맹 직장인 자본주의 홀로서기 4
금융문맹 직장인 자본주의 홀로서기 4
우린 언제 적부터 키보드에 익숙해졌을까? 2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스무 살 초반에 나를 시시때때로 애먹였던 '독수리 타법 고문'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눈을 감고도 영어와 한글을 분당 600타 이상을 친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힌 순간 이 플라스틱 자판은 아무런 비밀번호 없이 나의 뇌와의 페어링에 성공한다. 그러므로 항상 고민하고 집중하는 것은 '무엇을 쓸 것인가'이다. 이 키보드 자판은 언제부터 이렇게 나의 생각의 시녀가 되었을까?
이와 비슷하게 나는 20년째 기타를 치고 있다. 기타는 코드를 통째로 외워서 리듬을 연주하거나 타보(TAB) 악보를 외워 솔로(Solo)도 가끔 완벽하게 친다. 하지만 컴퓨터 키보드를 다루는 것처럼 내가 생각하는 어떤 리듬을 즉흥적으로 연주하지는 못한다. 똑같은 손가락, 똑같은 두뇌인데, '컴퓨터 키보드냐?', '기타 자판이냐?'의 차이일 뿐인데 말이다. 나는 아직도 기타가 어렵다.
독수리 타법을 치며 키보드를 배우던 시절을 떠 올려 보았다.
'가나다라마바사', '동해물과 백두산이...', '간장공장 공장장은...'
이렇게 수백, 수천번 반복한 결과가 지금의 나의 실력이다. 사실 기타는 코드만 외워서 쳤다. 키보드의 자판은 하나하나 글자를 독수리 타법으로 인지하려 노력했던 것에 반해, 기타는 너무 많은 스케일로 여섯 줄 각 프레임의 음계를 하나하나 생각해 보려 하지 않았다. 결국 이것이 결정적 차이였다. 그렇게 때문에 20년 기타를 쳤어도 그 실력은 형편없는 것이다. 악보를 보지 못하고 코드만 외워서 치는 기타 연주는 결코 창의적일 수 없었고, 남들 앞에서 연주할 수 없었으며, 들을수록 소음으로만 여겨지는 '식상함' 그 자체였다.
결국 세월이 능사가 아니다. 수많은 세월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인지하며 사는 삶'과 '인지하지 않고 사는 삶'은 이처럼 분명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