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상처 받은 그대에게

금융문맹 직장인 자본주의 홀로서기 3

by 슈퍼노바

사회생활은 타인과 함께 아무도 모를 어떤 상처를 계속적으로 주고받는 관계의 연속이다. 나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고 누군가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던진 이야기가 내 가슴에 화살처럼 꽂히기도 한다. 이것은 바로 회사라는 좁은 공간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다 보니 크건 작건 간에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누구나 마음속 박쥐 한 마리 키우고 있을 것이다.

때론 비겁해지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비겁함이 비겁함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곳은 아무도 찾지 않는 어두운 동굴 속과도 같은 곳이 된다. 그러므로 '공정'이라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 어떤 빛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빛을 보면 우리는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 그리고 답답함을 풀 수 있다.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도 모르는 박쥐 한 마리는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비겁함의 상징이 박쥐라고 해도 그 박쥐도 언젠가는 '새로운 빚'을 마주해야 한다.




왜 괴로운 가?


괴로운 이유는 보통 사람 문제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항상 같은 길을 향해 걷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도 나온 듯하다. 사람과의 갈등은 언제나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내 삶이 망가진다면 그 시간만큼은 행복해질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사회생활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자. 일 년에 몇 번 안 보는 친구나 가족들과의 관계도 별거 아닌 것으로 토라지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마련인데 직장에서 만나는 이들은 일 년에 최소 200번 이상 만나고 있다. 수치적 통계로만 따져보면 직장인들은 아주 사이가 좋은 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사람 관계에 대한 괴로움이 있다면 이 괴로움의 이유를 찬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괴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RHETORIC)에서는 사람에 대한 설득의 3요소를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라고 하였다. 그는 그중에서 에토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다.


로고스(logos)가 '이성적인 논리'라고 한다면 파토스(Pathos)는 '듣는 사람(청중)', 에토스(Ethos)는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하고 싶다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와 그 노래를 하나 떠올려 이야기해 보라!' 예를 들면, 조장혁이라는 가수의 '중독된 사랑'이라는 노래가 있다. 조장혁이라는 가수의 음정, 박자, 허스키한 보이스, 높은 고음을 '로고스'라고 하자, 조장혁은 가수이므로 당연히 '에토스'가 된다. 그리고 그의 노래를 듣는 나는 '파토스'다. 세상에는 '중독된 사랑'을 조장혁이라는 가수보다 훨씬 더 잘 부르는 가수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조장혁'이라는 가수가 부르는 '중독된 사랑'을 듣고 싶어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손흥민이 속한 토트넘 핫스퍼에는 주전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이라는 에토스가 있다. 2019-2020 유로파 챔피언쉽 결승전에서 부상으로 한동안 뛰지 못해서 경기력이 많이 떨어진 해리 케인을 주전으로 내세운 데에는 그 팀에 '해리 케인'이라는 에토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리 케인은 그 중요한 경기에서 부진할 것이란 예측이 컸지만 그는 주전 스트라이커로 출전한 것이었다. 결과도 역시 부진했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도 마찬가지다. 유독 가을야구에 약한 '클레이튼 커쇼'도 그가 잘하건 못하건 관계없이 그의 확고한 에토스로 가을야구의 1차전 선발은 언제나 그의 차지였다.





이처럼 사람 관계는 논리적 이성보다 그 커뮤니케이션 과정 속에서 '누가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때론 논리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 이야기를 하는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2. 나의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의 마음 상태는 어떠 한가?


위에 대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 본다면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이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나 자신은 물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상대방의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나 자신이 도무지 설득이 되지 않거나 억울하다고 느낄 때는 이를 논파하기보다 나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는 것이 나에게 덜 상처 주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 인간관계도 투자와 같은 노력이 필요하단 걸 느꼈으면 한다.



어느덧 가을이 오고 있다. 내 인생도 하나의 작품처럼 오늘도 그렇게 쓰인다. 상처 받은 그대에게 로버트 프로스트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아닌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을 거닐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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