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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아 Dec 31. 2020

할머니 이야기 #1

나 좋자고 쓰는 글

할머니 팔아서 서울대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한동안 했었다.


이유는 서울대 수시 자기소개서인가에 할머니 이야기를 썼어서. 625 때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다니셨던 우리 할머니. 내가 어릴 때부터 집에서 늘 공부도 봐주시고, 앞에서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책을 읽으시던 그 모습이 롤모델이 되어서 나도 독서와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 뭐 이런 식으로 썼던 것 같다. 물론 돌아보면 서울대는 성적이 좋아서 갔고 실제로 우리 할머니 이야기는 입학사정관들이 읽기는 읽었나 싶고, 똑같은 이야기를 영어로 쓴 곳은 다 떨어졌으니 할머니 덕분이라고 이야기하기도 좀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덕에 서울대 갔어!"라고 이야기했던 날 진짜 행복했다. 휴먼 스토리의 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착하게 들어주는 사람들은 다 붙들고 나는 시시콜콜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할머니가 옛날에 캐나다로 편지에 수학 문제를 적어서 보내주시던 이야기, 할아버지가 이메일 처음 배우시던 이야기, 할머니가 학원에 데려다주시던 이야기, 할아버지가 학교에 데려다주시던 이야기... 내가 "착하게" 라고 어쩌면 조금은 시니컬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진짜 주변의 착한 사람들만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서다. 사실은 다들 관심없는데, 그나마 착한 (아니면 예의바른?) 사람들은 내 생각을 해서 그냥 "아,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우리 집에 무슨 대단한 드라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른 사람이었어도 어떤 아무개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랬다 저랬다 뭐 이런 이야기는 그냥 별로 재미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문학을 공부하다보니 (이렇게 말하면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고등유민처럼 지내다보니) 글을 쓰는 것만큼 남을 추억하는 방법도 없는 것 같다. 쓰다 보면 쓰기 전에는 잘 몰랐던 내 감정과 생각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니까. 약간은 추억보정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보정된 추억이나마 남아있는 것이, 가만히 앉아있다가 시간에 기억을 다 빼앗기는 것보다는 나은 듯 싶다. 


요새 졸업 프로젝트 때문에 하루종일 반강제로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좀 쉴 틈이라도 있으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있었던 일들을 이래저래 쓰고 있는 날 어느샌가 상상하고 있다. 그렇게 글 쓰기 싫다고 징징대다가도 쓰고 싶은 것이 있다니. 그럼 써야지. 그래서 슬슬 생각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나 좋자고.


지금의 할머니의 모습은 어릴 때 보던 모습과는 새삼 다르다. 옛날에는 좀 무서워했었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사실 이것도 일단은 불확실한 기억이다, 그런 것 같을 뿐.) 그에 비해 요새 할머니는 엄청 작아보인다. 아니, 실제로 체격이 있는 나에 비하면 참 작으시다. 눈이 잘 안 보이시고 집중력도 떨어져서 책도 잘 못 읽으시고 걸으실 때도 휘청휘청 간 떨어지게 하신다. 그런데도 맨날 부엌에서 어슬렁대면 업어줄까? 물어보신다. 나 참. 그런 말을 들을때면 웃기기도 하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네, 싶기도 하고, 진심인가 잠깐 의심하기도 하고, 이제 내가 업어드려야 하는데 체력이 없어서 죄송하기도 하고 (내가 남자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많이 늙으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프기도 하고 마음이 참 복잡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 기쁘기도 하다. 적어도 우린 단순한 사이는 아니고, 아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특별한 사이라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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