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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아 Jan 03. 2021

할머니 이야기 #2

운동 안 한 것 들켜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이해 안 되는 내 행동 중 하나는 할머니 앞에서 자꾸 허리 아프다고 하는 것. 아이고 허리야, 하시는 할머니 옆에서 괜히 "나도!" 덧붙이는 것. 물론 난 실제로 허리가 아프니 괜히 하는 소리는 아니다. 나는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 전부터 하루에 8-10시간은 집에서 앉아서 보냈던 것 같다. 대학생 시절 때도 금요일 수업 끝나면 월요일 첫 수업까지 주말 내내 집에서 안 나오고 방콕. 그러니까 안 아픈 곳이 없다. 아니, 안 움직이니까 안 아픈 것뿐이다. 아직은 그럴 수 있는 나이라서.


할머니는 언젠가부터 무릎이 심하게 아프다고 하시더니,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으셨다. 연세가 있으셔서 인공관절 수술도 어렵다고 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아파도 허리는 펴고 다닌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허리도 꼬부라지신 채 휘청휘청 걸으신다. 어린 시절 기억하는 할머니는 늘 다른 할머니들과 달리 꼿꼿이 서서 걸어 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엄청 자랑스럽게 여기셨었다. 저 꼬부랑 할머니를 봐. 나는 달라. 나는 똑같은 할머니가 아니야.


물론 건강을 늘 챙기셨으니, 그렇게 건강을 챙기셨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드셔서 몸이 아프신 게 너무 놀라우셨던 듯하다. 옛날에는 수영을 하셨다. 내가 어릴 때도 하셨는데 어린 나를 주말에 돌보시느라고 그만두셨다. (나는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할머니가 갑자기 늙으신 것이 내 탓 같다. 아닌 걸 알지만. 손녀 탓하실 수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시는 할머니가 너무 고맙다.) 그때도 늘 자기는 나이는 많아도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고 체력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다. 매주 건강 프로그램도 챙겨보셨다. 항암제라는 건 다 드셔 보시는 것 같다. (요새의 항암제는 '생 무'이다. 매 끼 밥과 함께 드시는 데, 나도 한 개 먹어봤는데 꽤나 맛있어서 놀랐다.)


어쨌든 나는 할머니 앞에서 허리 아프다는 얘기를 잘한다. 약간은 공감하고 싶어서. 물론 할머니는 신경이 눌려서 아프신 것이라고 하시니, 내가 가끔 허리가 아픈 것과는 정말 다를 텐데. 약간은 그냥 할머니가 약한 모습을 보는 게 싫은 자기중심적인 행동인 것 같기도 하다. 할머니 아픈 얘기는 듣기 싫으니까 내 아픈 얘기나 들어! 하는 어린아이 같은 감정. 물론 또 약간은 다른 주제로 얘기를 돌리면 할머니가 조금은 아픈 것을 잊으시려나, 하는 마음이 제일 크다. "네가 몇 살이라고 허리가 아프냐!!" "27살!!" 하다 보면 할머니는 어느새 깔깔 웃고 계신다. 


오늘도 부엌에서 아이고아이고 하시는 할머니 등을 만져드렸다. 슥슥 문지르면 할머니 옷은 복슬복슬해서 완전 기분이 좋다. 할머니가 시원하다고 하시면 더 좋다. 오늘은 웬일로 두들겨 보라고도하셔서 여기저기 두들겨 드렸다. 그러다가 나는 여기가 아프다, 라고 허리 부분을 만져드렸다. 그랬더니 "내가 거기 안 아프게 하는 운동 알려줄까?" 하시더니 방에 가서 스트레칭 동작을 알려주셨다. 한쪽 다리를 안고 몸통을 일으켜서 5초 버티기. 3번 반복. 그다음에 다른 다리 반복. 그다음에 전부 3세트 반복. 배에 힘을 꽉 주니까 진짜 엄청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호흡하라고 할머니가 옆에서 이야기하시는데, 힘들어서 푸~ 하고 숨이 저절로 내뱉어졌다.


나도 참. 89세 할머니한테 스트레칭 동작 하나 배웠다. 배우다가 그것도 못하냐고 한 소리 들으면서. "몸통이 그것밖에 안 들리냐?" 힘들어서 3세트는 못하고 1세트만 하고 도망갔다. 2021년은 그렇게 웃으면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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