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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아 Jul 16. 2021

초보운전일기 #1

의외의 이야깃거리

나는 초보운전자다.


면허 딴 지는 한참이다. 대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땄으니, 이제 거의 10년도 전의 일.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니 정말 운전할 일이 없어서 면허는 내내 장롱 신세였다.

 

하지만 대학원생이 되어서 미국 시골 한복판에 살다 보니 운전이 꼭 필요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사람은 잘 만나서 여자친구와 동기가 온 데 데려다 주기는 한다. 학교도 마트도 카페도 공항에도, 친구들 덕에 불편함 없이 살았다. 하지만 한번, 같이 사는 여친이 호되게 아팠던 적이 있다. 보험 없는 여친의 입에서 응급실에 가야할 수도 있겠다는 말이 나왔다. (미국에 살아본 사람은 이게 얼마나 하기 힘든 말인지 알 것이다.) 난 운전을 못하니 약국에서 약을 사다주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밤새도록 토하던 여친은 결국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자기 차를 끌고 나갔다.


이번 여름, 옛날에 운전연수 받았던 선생님께 다시 연락했다. 친구가 소개해준 분. 면허 딴 뒤에도 10시간 정도 받았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친구는 지금 아무런 문제 없이 자차로 잘 다니기 때문에 믿고 맡겨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애매하게 하지말고 20시간은 하기로 했다. 금액이 부담스러웠지만 운전을 배운다고 하니 아버지도 할머니도 선뜻 연수비를 지원해주셨다. (감사합니다!) 처음 10시간은 조수석에도 브레이크가 달린 선생님 차를 타다가, 나머지 10시간은 엄마 차로 진행하기로 했다. 


연수하는 동안은 어렵지 않게 차를 몰았다. 면허따고 얼마 안됐을 때, 가물가물한 연수 기억 중 선명하게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다. 긴장하면서 동네 길을 가고 있었는데, 골목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나왔다. 내 차 앞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한 차선 건너서 저~만치에서. 심지어 차도로 들어오지도 않고 인도로 올라가 유유히 떠났다. 하지만 놀란 가슴에 브레이크를 길 한 가운데서 밟았다. 낮에 차가 없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뒷 차와 큰 사고가 났을수도 있었다. 그 때 선생님이 대체 뭐하는거냐고 얘기하시던 기억은 난다. 내 앞에 끼어든 오토바이도 아니고 저 멀리 있는 오토바이를 보고 무서워하면 어떡하냐고. 적어도 이번에 연수하면서는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혼자 운전하면 참 느낌이 다르다! 보는 눈이 적다고 생각하니 속도 내는 것도 무섭고, 끼어드는 것도 엄청 소심하게, 조심조심 끼어들게 된다. 답답한 뒷 차들이 참 많았을 것 같다. 내 꽁무늬를 쫓아오다가 그냥 추월하는 차가 한 두 대가 아니었다. 도로의 마음 급한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아직 익숙하지도 않은데 속도를 내다가 사고를 내느니, 차라리 빵빵 소리 좀 듣더라도 여유있게, 양보하면서 가는 게 마음이 편하더라.


선생님께는 자신있게 주차는 잘한다고, 후방 카메라보면서 하면 쉽다고 얘기했는데, 오늘 혼자 운전하면서 갑자기 주차가 안돼서 당황했다. 분명 머리로는 이해했던 것 같은데 몸으로 하려니 왼쪽 오른쪽이 헷갈리고, 생각한 것과 반대로 계속 핸들을 돌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앞으로 나왔다가 뒤로 뺐다가를 정말 몇 번이나 했다. 단지내 주차장에 정차하고 있는 차가 한 개 있었는데, 저 사람은 대체 뭐하고 있는건가 생각했을 것 같다. 아침에 만난 쓰레기차에 타고 있던 아저씨 3명은, 내 딴에는 최대한 비켜드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멈추더니 대놓고 기분 나쁘다는 표정과 손짓을 하고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만 침착하게, 선생님이 가르쳐준 "주차공식"대로 했으면 어렵지 않게 주차했을텐데.


그래도 용기를 내서 모르는 곳에 찾아가서, 친구도 만나고 집에 돌아오니 굉장히 뿌듯했다. 나도 이렇게 차로 다닐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구나, 생각해서! 미국에 있는 여자친구도 기뻐했다. 이제 돌아오면 동네를 누비고 다니겠네! 아직 마음 편히 차 끌고 다니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해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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