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뜻대로 청하면 들어주신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동해의 떠오르는 해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소문난 곳들은 인산인해를 이뤄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다. 이곳에 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새해에는 지난해와는 달리 하던 일들이 술술 잘 풀리고 가족 모두가 건강하기를 바란다. 눈조차 뜨기 힘든 찬란한 빛과 바다를 헤집고 올라오는 이글거리는 태양의 장엄함에 압도되어 간절히 빌어본다.
축구 경기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다. 어렵게 한 골을 넣고 나면 경기장을 쏜살같이 달려가 슬라이딩을 하며 두 손을 모은 채 하느님께 기도한다. 마치 하느님께서 자기 팀에 소속된 선수가 되어 도움을 주신 분처럼 생각했거나 아니면 자기 팀에게만 유리한 심판관이 되어 편파적인 판정을 해주신 것처럼 생각한 모양이다.
하느님께서는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실까?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모든 일이 자기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다. 왠지 나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슨 육상 경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허들이 이렇게 많은지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특히나 요즘같이 경기가 좋지 않거나 ,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거나 사업에 실패할 때는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어오던 교회나 성당을 찾아 자신의 간절함을 빌어본다. 돈을 좀 많이 벌게 해 주시거나 하던 사업이 대박이 나길 기도해 본다.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어떻게 알았는지 길가에 내걸린 교회 현수막엔 "OO 주간 새벽기도"란 이름으로 내걸린 것을 이따금 보게 된다. 지극 정성으로 자신의 바람을 기도해 볼 요량이다. 이점에는 불교 신자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매년 음력 4월 초파일에는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 울긋불긋 다양한 색상의 연등을 사서 달기도 하고 초를 켜서 자신의 소원을 빌어본다.
그리고 이런 소원 빌기는 12월 입시 철이 되면 더욱 그 열기가 뜨거워진다. 우리의 아들딸이 시험을 잘 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기를 몇 날 며칠을 기도하기도 한다. 기도만 하면 하느님께서 자식을 대신해서 모범
답안을 알려주시라는 것일까? 특히 우리에게는 기복신앙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철부지 어린애처럼 끊임없이 복을 구한다. 하느님께서 요술 방망이라도 가진 것처럼 자기 생각대로 모든 것을 해주실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가 부모를 섬기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인데 부모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가만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이미 우리에게는 주어진 복이 너무 많고 감사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아마도 우리가 부모에게 늘 감사하며 정성을 다하면 부모가 능력이 되면 어떤 형태로든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위대한 능력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대치도 못한 좋은 선물을 언제나 주고 싶어 하신다.
그러면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들어주실까?
그분의 생각이 담긴 성경을 보면 이러하다. 요한 1서 5:14 "무엇이든지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청하면 그분이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이 성구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뜻이 아닌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시거나 사업이 잘되게 해 주시는 분이 아니다.
기도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이러하다.
마태 6:7 "기도할 때 이방 사람들이 하듯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마십시오" 기도문을 암송하듯 마음에도 없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치 자녀가 부모를 만날 때마다 매번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달라고 조르는 것과 다름없다. 그 부모는 얼마나 지겨우실까? 마찬가지로 이러한 행태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느님께서는 어떤 생각이 드실까?기도와 관련해서 기도가 한 응답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기도와 관련해서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께서는 기원 33년 돌아가시기 직전 골고다의 형주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다. 우리는 그 고통이 얼마 컸을지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이런 와중에 그분은 하늘의 아버지께 자신이 고통을 겪지 않게 해 달고 기도하지 않으셨다. 아들을 너무도 사랑하셨던 아버지께 요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잘 아셨고 아버지의 뜻을 잘 헤아리셨던 예수께서는 그러한 요청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고통을 없애달라고 하지 않으셨다.
이러한 예수의 기도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요청하는 모든 기도를 다 들어주시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기도로 요청할 때 우리의 원하는 바가 아니라 그분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해야 함을 잘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에게 현재의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그분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도록 노력하자. 그렇게 함으로 언젠가 하느님께서는 지정하신 때가 되면 자기 능력으로 넘치도록 복을 줄 때가 도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