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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처럼 Sep 17. 2024

아직도 나는 나를 잘 모른다.

" 발걸음을 인도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20세기 후반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서태지의 '난 알아요'란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다. 순식간에 이들은 1990년대 대중문화의 주역이 되었고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렇게 이 노래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이 노래 제목처럼 우리 자신은 자신을 잘 알고 있을까?


아마도 우리 대다수는 본능에 따라 자신의 이름과 고향같은 자신의 주변 환경을 생각하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 정도의 지식으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태어나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부모의 손을 잡고 학교나 병원이며 시장을 따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어느 순간 자신이 늘 함께했던 부모와 같이하지 않으려고 할 때가 온다. 이러한 독립적인 행동의 이면에는 어렴풋이 이제까지와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 위함이 아닐까?


이렇게 우린 신체와 내면을 가꾸어 가며 성장해 간다. 우리가 흔히 듣게 되는 말 중에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이 있다. 자식이 어떤 결정을 하게 되면 혹시 부모의 입장에서 그 결정이 잘못된 것 처럼 보여도 자식의 고집을 꺾지 못해 결국 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우린 때론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고집스러운 결정을 하게 된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다. 홍해 바다를 막 지나와 조금 전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엄청난 바다 속과 마른 땅을 밟으며 기적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이러한 기적을 까마득히 잃어버린 체 시나이산으로 십계명의 돌판을 받으러 간 모세를 기다리던 중 송아지를 만들었다. 우상을 숭배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들의 구출자이신 여호와의 엄청난 능력을 목격한 그들이 하느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만들고 숭배함으로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 역시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면 후회스러움이 가득하다. 주변 사람들이 볼 때는 분명히 잘못된 결정임에도 고집스럽게 그러한 결정을 계속 밀고 나갈 때가 있다. 이러한 경우엔 누가 옆에서 아무리 바로 잡으려 해도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시간이 흘러 스스로 깨달을 때야 비로소 그 길을 멈추게 된다. 마치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차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기가 힘든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타인이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기란 이처럼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시게도 우리의 이러한 특성을 잘 아시기에 자유 의지에 따라 어떤 결정을 하게 되면 설령 그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기꺼이 그 결정을 존중해 주신다.


하지만 우린 살아가면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복병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러한 잘못된 상황을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외부의 갑작스러운 영향으로 전혀 엉뚱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사업의 실패나 사고나 질병과 죽음을 앞두게 되는 극단적인 변화가 찾아오면 그제야 다시 새로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우리의 삶이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큰 바위 같은 장애물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자신의 교만과 미약함을 깨닫게 된다. 이에 따라 삶의 목표가 달라지기도 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과정과 생각들이 수시로 변하기도 한다. 마치 여름철 태풍의 진로처럼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 않을까?


우리 인간은 참 어리석다. 우리의 생명 기한이 정해져 있고, 병과 죽음을 겪을 수밖에 없는 사형수와 같은 처지임에도 현실을 부정하는 듯한 행동과 사고를 하기가 쉬운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작아지는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 우리의 생명과 호흡이 절대적으로 하느님께 의존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본모습이 아닐까? 이처럼 우리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언제라도 쉽게 꺼질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좀 더 일찍 자신을 알게 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이것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의 내면엔 왜 그렇게 또 다른 내가 존재할까? 육신을 쫓는 악으로 향하는 자신과 그것을 제어하며 올바른 길로 향하는 또 다른 나는 항상 함께해 왔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바른 길로 행하려 노력하며 하루를 보낸다.


항상 겸손하게 창조주께 의지하며 그분의 인도에 따라 우리 자신을 틀 잡아가는 것이 최상의 삶이 아닐지 생각한다.

이사야 55:9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예레미야 10:23 "오 여호와여 사람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제가 잘 압니다. 발걸음을 인도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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