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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원하는 것 들어주기 프로젝트 7

인생 '여물게' 살아야 한다

by 윤창영


둘째가 아내에게 부식을 사러 가자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나에게

“당신도 함께 가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즈음 나는 아침 일찍 집을 나와 도서관으로 와서 글을 쓰는데, 부식을 사러 가면 족히 2~3시간은 걸리게 될 것이고 그러면 생활 리듬이 깨어지게 될 것 같아 처음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가 원하는 것 들어주기 프로젝트>가 생각이 났다.


“알았어요, 같이 갑시다.”

그렇게 해서 세 명이 함께 부식을 사러갔다. 울산 진장동에 도매가격으로 부식을 살 수 있는 대형 식자재 마트가 새로 생겼기에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너무 일찍 와서 문을 열지 않았다. 아침 8시부터 문을 여는데 30분 이상이나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냥 집에 갑시다.”

라고 말하자. 아내는


“30분만 기다리면 되니 근처 편의점에 가서 커피라도 마셔요.”

‘어차피 따라나선 것 기분 좋게 아내가 원하는 것 들어주자.’라는 생각이 들어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은 편의점인데도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내는 토스트 나와 아들은 라면을 시켰고, 김밥을 한줄 더 시켰다. 그러면서 둘째에게


“요즘, 많이 좋아졌네? 할머니하고 잘 지내지?”

우리 집은 2층 주택인데, 1층에는 둘째와 할머니가 살고 2층에는 우리 부부가 산다.

“할머니 잔소리가 만만치 않아요. 불 켜놓고 텔레비전을 보는데, 전기세 나간다고 막 뭐라고 하세요.”

“할머니가 뭐라든데?”

“인생 여물게 살아야 한데요.”


“하하. 정말 명언이네. 아빠 글에 넣어야겠다.”

“그래, 맞아 할머니에게 좋은 것 배우네. 그런 할머니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는 거란다.”

“요즈음 또 배려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요.”

“그래, 맞아 너 요즘 행동이 많이 바뀌었더라. 너만 알고 다른 사람 배려할 줄 모르는 것이 너의 단점이었는데, 요즈음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할 줄도 알고, 대단하다.”


그러자 아들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배려도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 같아요. 배려를 하면 즐거워지는데, 몸이 먼저 그 즐거움을 아는 것 같아요.”

“멋진 말이네.”

편의점을 나오는데, 아내가


“여기 몇 번 더 와보아야겠어요. 울산에는 공단이 많은데, 공단 부근에 이런 편의점을 하나 낸다면 좋을 것 같네요. 아침을 먹지 못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혼자는 못할 것 같고 당신과 함께 하면 좋겠어요.”

“글쎄, 한번 생각해봅시다.”


라고 말하며 식자재마트로 향했다. 식자재마트에는 다양한 물품들이 있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앞으로 한번씩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식을 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끊임없이 아내는 말을 쏟아냈다. 그것을 조용히 듣고 있던 아들은

“엄마 20분 째 지금 말하는 것 아세요?”

그러자 아내는

“와, 무섭다 그것을 시간까지 재었니?”


대단한 아내와 대단한 아들이다. 아내와 아들과 약 2시간가량 시장을 보고 집으로 왔다. 식탁 위에 사온 음식을 내려놓자 식탁 위가 음식으로 가득 찼다.

“성호, 부듯하겠네?”“예, 행복해요.”


‘그때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도서관에 간다고 집을 나섰다면 난 이런 행복을 놓쳐버린 것이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 것이 아닌 소소한 일이 별것이 되는 행복감. 우리가 가져온 것은 음식만이 아니라 추억과 행복도 같이 가져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일이 곧 행복해지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인생 여물게 살아야 한다.”


쌀이 빈틈없이 단단하게 익듯, 삶도 빈틈이 생겨 행복이 헛되이 낭비 되지 않도록 ‘여물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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