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행

-과거를 어루만지는 여행

by 윤창영

*봄 여행-과거를 어루만지는 여행

1)출발전날의 설렘


내일(2018.04.03)은 아내와 둘째와 함께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거제도를 지나서 통영과 남해 그리고 화개장터와 최참판댁, 사성암, 상계사, 여수 등을 1박 2일의 일정이다. 매일 아침이면 어머니 콩나물 독을 시장으로 날라다 주는데, 하루만 작은형에게 부탁을 해두었다. 항상 그렇지만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아내와 둘째도 그러하겠지. 큰아들과 함께 간다면 더 좋겠지만, 일을 하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아들과 일정을 맞추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세 명만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다니면서 계속 글을 쓸 생각이다. 이 여백과 마음의 여백에 어떤 추억을 가득 담게 될지. 우리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었으면 좋겠다.


2)학동 몽돌해수욕장에서의 아내의 이야기

울산을 떠나 부산 신항을 거쳐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도에 도착했다. 거제도의 바다는 울산의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바람의 언덕이다. 풍차가 있는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전경을 기대했으며, 가는 동안의 벚꽃도 구경할 생각이었다. 가는 길목은 기대 이상이었다. 파란색 바다와 청명한 하늘과 연녹색으로 물이 오른 숲, 끝없이 이어지는 길가의 벚꽃은 연이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운전을 해본 사람은 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고 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감탄을 하면 얼마나 어깨가 으썩해지는 지를. 학동 몽돌해수욕장을 넘어가는 고개의 벚꽃은 탄성의 절정에 이르게 했다. 그 탄성은 혹독한 겨울의 추위에 떨었던 고통을 일시에 녹아내리기에 충분했다. 고개를 넘으니 학동 몽돌해수욕장이 나왔다. 분위기는 정자 바다와 비슷한 느낌이 났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출발하는 차 안에서 아내가 말했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요. 몇 년 전 옥동에 살 때 아사모(아이를 사랑하는 모임의 약자이며, 큰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들 친구 엄마 몇 명이 모여 결성된 계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음.)에서 여기에 온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몸이 좋지 않아 차에서 내리지도 못했어요.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했죠. 그때 정말 힘들었는데. 당신이랑 여기에 오게 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사람일 정말 모를 일이네요.”


그 당시 난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매일 술을 마실 때였다. 집에도 잘 들어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생활을 하던 힘든 시기였다. 그때, 아사모에서 이곳으로 여행을 왔다는 것이다. 빠질 수가 없어 함께 오기는 했는데, 나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때라 차에서 내리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함께 온 사람들이 걱정을 하며 안타까운 시선으로 자신을 대했는데, 정말 힘이 들었고, 자신이 초라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행복한 상황에서 아들과 남편과 함께 다시 이곳을 찾아오니, 감개가 무량한 모양이었다.

아내의 그 말을 들으니 문득 나비가 생각났다. 변태하기 전 구겨진 날개를 가지고 애벌레 속에 들어있던 나비와 화려한 날개를 가진 나비. 이제 아내는 차안에서 구겨진 채 있던 애벌레 속의 나비가 아니라 화려한 날개를 가진 나비로 살게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이번 여행 너무 좋아요. 신혼여행 때보다 더 좋네요.”

라고 아내가 말을 했다. 그 말을 듣자.

“그러면 이번 여행은 재혼여행이네요.”

하면서 함께 웃었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겨울바람 속에 내던져진 채, 추위에 떨어야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 당시 나로 인해 가족 전체가 힘든 시기였고, 그 시기는 우리의 겨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겨울을 잘 버텼고, 만발한 벚꽃처럼 행복한 봄을 맞을 수 있었다. 봄을 맞이하는 벚꽃이 꼭 우리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3)일정에 없었던 외도를 가다


목적지인 바람의 언덕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데, 옆에서 단체 여행을 온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외도로 가는 선착장이 그곳에 있었고 10분 후에 출발한다는 것이다. 평일이라 예약하지 않아도 탑승이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아내가 외도에 가자고 이야기했다. 사실 외도는 일정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 곳이었고, 탑승료만 3명이 8만천 원이었으며, 여행 예산에도 들어가 있지 않아서 망설였는데, 아내는

“다른 곳에는 안 가도 되니 이곳은 꼭 가고 싶어요.”


라고 말을 해 할 수 없이 가게 되었다. 외도로 가는 여객선은 해금강을 경유해서 갔는데, 날씨가 쾌청하여 평소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무인도인 해금강 속의 일부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무엇이나 밖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느끼게 해주었다. 배를 타고 보는 외부의 해금강도 멋졌으나, 내부는 더욱 웅장한 미가 있었다. 이제껏 보지 못한 암벽의 새로운 미를 보게 되어 신선했다.

출발하여 해금강을 거쳐 30분 정도 지나 외도에 도착했다. 외도는 말이 필요 없을 아름답게 잘 꾸며져 있었다. 꽃과 나무와 조각으로 꾸며져 있어, 누구나 한번은 꼭 가 보아야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날씨마저 화창하였기에, 외도에서 바라본 바다의 풍경도 외도의 멋진 모습과 더불어 오랫동안 가슴 속에 자리할 것 같았다.

외도는 비교적 따듯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구식으로 가꿔진 식물원이다. 주변의 수역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이며, 이곳 바다에 홀로 있는 섬에 위치한 해상농원이다. 외도는 1969년 이창호와 그의 아내 최호숙 부부가 거주를 하면서 하나씩 가꿔졌으며, TV 드라마 겨울연가의 마지막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하여, 한국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유명해졌다.


1969년 7월 이창호는 이 근처로 낚시를 왔다가 태풍을 만나 우연히 하룻밤 민박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1973년까지 3년에 걸쳐 섬 전체를 사들이게 된다. 거제도에서도 남쪽으로 약 4 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외도는 일년 내내 꽃이 피어있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한 겨울인 11월에서 3~4월에도 아름다운 동백나무의 꽃이 피어있다. 이러한 온난한 기후로 인해 아열대성 식물들 중 비교적 내한성이 강한 종려나무, 워싱톤 야자, 용설란, 유카, 유카리, 송엽국, 스파르티움 등이 별도의 보온시설 없이 실외에 심겨 있다. 그리고 약간의 분지 형태를 갖고 있어, 더욱 온난한 기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관광객들에겐 얼음물이 필수라고 한다.

2003년 이창호 회장이 운명을 하였고, 아내 최호숙은 남편에게 시를 지어 받쳤는데, 그 시비가 외도 안에 만들어져 있었다. 아내는 그 시비를 보더니

“나도 당신의 시비를 이렇게 세워주고 싶어요.”

라고 말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외도에는 아내가 20년 전 둘째가 4살 때 사촌모임에서 와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받은 인상이 너무 좋아서 나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서, 아까 그렇게 오자고 졸랐다고 했다. 외도에는 여객선 일정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1시간 30분 동안 머물 수 있었다.


4)여수 밤바다 케이블카


일정에 없던 외도에서 시간을 보냈기에 당일 가기로 계획했던 화개장터와 최참판댁은 내일 가기로 하고 바로 여수로 향했다. 여수를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여수 밤바다’란 노래 때문이다. 얼마나 좋기에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언젠가는 한번 가보아야지 생각하던 차에 이번에 가게 된 것이다. 거제도에서 통영을 거쳐 여수로 행했다. 밤이 내릴 즈음 이순신 대교를 지나는데, 여수 석유화학 공단 야경이 보였다. 울산에 있는 석유화학 공단 야경과는 달리 까만 밤바다를 배경으로 빛나는 불빛이 꼭 땅에 별이 내려와 박힌 것 같이 아름다웠다. 사전에 인터넷 검색을 하여 가고자 한 곳이 여수 돌산공원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여수 밤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곳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돌산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30분. 케이블카는 9시 30분까지 운행한다고 하였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계단에 빨간색의 하트가 그려져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밑에서 보면 계단 의 하트가 보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하트가 보이지 않는 것이 특이했다.

케이블카를 타려고 표를 끊으려 하는데, 아들이

“아빠 비싸요. 타지 말아요.”

라는 말을 하였다. 1인당 13,000원을 했고 3명이면, 39,000원이었다.

“아니 여기에 케이블 카 타고 여수 밤바다를 보러 왔는데, 안 타면 어떡해?”


아들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오른 때문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가족 여행으로 무주에 있는 스키장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스키 체험 비용이 너무 비싸 4명이 모두 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명만 타려 했지만, 별 의미가 없어 타지 않은 적이 있다. 무주까지 가서 여관방에 잠을 자고 밥만 먹고 온 기억이 난 것이다. 그래서 더욱 케이블카를 타야했다. 과거의 우리 형편이 그랬다. 술을 마시고 돈을 무분별하게 써버린 내 탓에 가족들이 누려야할 것들을 돈이 없어 누리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괜찮아 아빠 돈 많아.”


라고 말하며 표를 끊고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 탑승 시간은 왕복 30분가량 되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본 여수 밤바다는 어둠과 빛이 빚어내는 마술 같았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이 거북선 대교 밑을 지나다녔고, 해안도로로 길게 뻗은 도시의 불빛이 어둠에 묻힌 바다를 감싸고 있었다. 그곳에서 같이 오지 못해 아쉬웠던 큰아들과 화상통화를 하며, 여수 밤바다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정말 제가 재혼은 잘한 것 같아요. 두 번째 남편과 재혼여행이 너무 멋져요.”

케이블카 안에서 아내는 감탄조의 말을 연신 내뱉었다.


5)비 내리는 섬진강 풍경


잠을 돌산공원 인근에 있는 해수 찜질방에서 해결하고, 아침 8시, 사성암으로 출발했다. 사성암에서 섬진강과 구례를 내려다보는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보았는데, 그 광경이 너무 아름다웠기에 꼭 한번 보고 싶어 그곳으로 결정을 한 것이다. 사성암 주차장에 차를 대니, 사성암까지 왕복하는 마을 버스가 있었다. 그 버스를 타고 사성암 바로 밑에 까지 도착하였고, 사성암에서 바라다본 섬진강 주변 경치는 사진보다 더 아름다웠다.


다시 사성암 주차장에 내려오니 비가 내렸다. 섬진강을 끼고 달리는 길은 온통 벚꽃 천지였다. 벚꽃이 눈처럼 내린다는 표현이 꼭 맞는 말이었으며,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꽃이 날리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우리 가족은 만화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서, 지리산 끝자락에 있는 섬진강의 봄길을 달렸다. 또한 섬진강 건너편에 강변길을 따라 핀 벚꽃은 비가 내려 수채화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그렇게 달려 점심시간 즈음에 도착한 곳이 하동의 화개장터였다.


장터는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한 곳은 터를 잡고 장사를 하는 식당촌이었고, 한 곳은 지리산 등지에서 채취한 약초와 산나물을 파는 곳이었다. 우리는 개화라는 식당에서 꼬막과 파전을 시켜 먹었는데, 가성비 만점을 주고 싶을 만큼 양과 맛에서 만족했다. 그리고 친절한 주인의 응대도 덤이었다. 점심을 먹고 다리를 건너 화개장터로 향했는데, 평일이고 비가 내리는 와중인데도 화개장터는 사람으로 넘쳐났다. 근처에서 산 비닐우산을 쓰고 다니며 구경을 했는데, 나뿐만 아니라 아들이나 아내 모두에게 비에 대한 잊지 못하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화개장터를 나와 향한 곳은 10km 정도 떨어진 박경리의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이다. 예전에 이곳을 한번 와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는 딴판으로 꾸며져 있었다. 예전에는 최참판댁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는데, 지금은 기념품 가게 등이 즐비했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집까지 꾸며져 있었다. 그곳을 보며 하나의 문학작품이 얼마나 위대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참판댁을 나와 울산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은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안전운전이 최고라고 생각하여 60km 속력으로 천천히 달렸다. 그런데 남해고속도로 진주 부근에서 큰 사고가 난 광경을 목격했다. 우리가 달리는 맞은편 차선에서 큰 트럭 한 대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사고였는데, 뒷차가 사고가 난 그 트럭을 들이받아 찌그러들어 있었다. 그 운전사는 생명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의 일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며, 할 수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하고, 행복하게 살아야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6)과거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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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아내와 아들, 나, 세 명이 모두 만족하는 여행이었다. 힘든 세월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한 벚꽃 여행, 그 자체로도 즐거웠지만 특히 의미가 깊은 것은 과거 힘든 상황과의 조우였다. 몽돌 해수욕장에서의 아내의 이야기와 케이블카 비용에 대한 아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런 과거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 아주 좋았다. 상처는 어떤 형태로든 남아,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행복하다고 해서 과거의 상처가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 살아가면서 하나씩 어루만져주어야 모두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행복을 되찾은 후의 여행, 아내의 표현처럼 재혼여행은 이후로도 행복한 삶의 상징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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