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잔소리도 어쩜 이렇게 지혜롭게 하지?

by 윤창영


아내와 사이는 과거 어느 때보다 좋다. 서로 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아내의 말을 잔소리로 들었는데, 이제는 아내 말을 잘 들어준다. 하지만 아이들과 아내는 아직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아내의 말을 재미있게 들어주는 것으로 마인드가 바뀌었지만 아이들은 아직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아내가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시작하려고 하면 아내에게 신호를 준다. 그래도 계속 하면 아내에게 주의를 준다.

“그만 하세요.”


라고, 그러면 아내는 하던 말을 멈춘다. 소통이 중요하지만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역효과가 난다. 예전에 내 경험으로 터득한 사실이다. 말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마인드를 먼저 바꾸어 놓든지, 아니면 잔소리처럼 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아이들의 행동은 잔소리를 한다고 절대 바뀌지 않는다. 바뀌지 않는 걸 알면서도 계속적으로 말로 지적하면서 고치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이만 벌어지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꼭 필요한 말도 하지 못하게 된다.


말하는 데도 지혜가 필요하다. 말에 감정이 섞인다면, 반응도 감정이 섞일 수밖에 없다. 잔소리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집안마다,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일단 우리 집의 경우 아내의 잔소리는 듣기 싫은 말이고, 하기 어려운 행동을 고치라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그만 하세요. 또 같은 소리예요?”

라고 말하면 아내는

“듣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요.”

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고칠 수 있는 것이면 애초에 그런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내가 매일 듣는 잔소리는 살을 빼라는 이야기와 담배 피우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두 가지 모두 쉽지 않다. 특히 살을 빼라는 말은 자신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 아내는 습관적으로 그 소리를 한다. 그래도 내 마음은 잔소리에 대해서 오픈이 되어있기 때문에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도 클로즈 마인드이다. 어렸을 때야 엄마 잔소리에 대해 마지못해 말을 따르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20대 중반인 청년들이 엄마의 잔소리를 그대로 따를 리 만무하다.

“또 그 소리.”


라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매일 하는 잔소리는 교회 다니라는 말과 살 빼라는 말 등이다. 아이들이 오픈 마인드가 되어 있지 않으면 매일 듣는 그 소리가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나에게도 교회 다니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기에, 마지못해 교회에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그것은 강요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강요로 순간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만, 자신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절대 따르지 않는다.


아내의 경우 원칙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조금만 원칙을 벗어나도 지적을 한다. 어떤 때는 잔소리 세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아내가 아이들에게 지적을 할라치면 재빠르게 신호를 주어 제지시키는 것이다. 안 그러면 집안 분위기가 냉냉해진다. 그런 상황을 누구도 원치 않기 때문에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지 말 것을, 나도 끊임없이 신호를 주기도 하고 직접 말로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같은 한국말을 하는데도 어떻게 저렇게 소통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 원인은 아내도 잔소리를 습관적으로 하고 아이도 귀를 닫아버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먼저 살펴야할 것이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지 여부이다. 아예 글로 써서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아내는 잔소리하는 것이 가족을 사랑해서라고 말하지만 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내의 성격 문제이며, 혈기 때문이며, 말로 화를 내는 것일 뿐이다. 잔소리로 행동이 고쳐진다면 우리나라는 천국이 되어있어야 한다. 불필요한 잔소리로 집안 분위기를 깰 것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말이라면 신중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도 난 아내의 잔소리마저 글을 쓸 소재로 삼으니, 잔소리가 싫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니다.


<차라리 못 하는 것을 지적하기보다는 잘하는 것에 대해 칭찬을 해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사람에게는 잘 하는 일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일과 못하는 일이 있다. 보는 관점을 못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에서 못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는 것으로 바꾸면 어떨까? 또한, 잘못하는 일마저 잔소리 대신 칭찬을 해준다면(칭찬을 해주어도 잘못한 일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어떻게 될까? 만약 신발을 구겨 신는다면,


“우리 아들은 어떻게 신발도 이리 잘 구겨 신을까? 신발이 아들에게 고마워해야겠네.”

이렇게 말한다면 아들도 신발 구겨 신는 것에 대해 최소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만약 담배를 피우는 나에게 ‘담배 피우지 말아요.’하는 말보다.

“당신 폐는 진짜 대단해요. 몇 십 년이나 매연을 마시고도 아직까지 폐암에 걸리지 않은 걸 보면.”


그렇게 말한다면, 최소한 내 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고, 아내의 폐에 대한 칭찬을 매일 듣다보면 어느 날인가 진짜 내 폐를 위해 담배를 끊게 될지도 모를 일이 될 것이다.

같은 의미라도 조금만 더 지혜롭게 하면 잔소리가 잔소리가 아닌 생활의 활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잔소리도 어쩜 이렇게 지혜롭게 하지?”

오늘 가서 아내에게 이 말부터 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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