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도 이겨내신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 임두남 여사
우리 집은 2층 주택으로 1층엔 노모가 살고 2층은 우리 부부가 산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콩나물 할머니집이라 부른다. 87세 된 노모가 콩나물 장사를 하시기 때문이다. 콩나물 장사를 하신지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최소한 40년은 넘은 것 같다. 해마다 가을이면 울산 근교 농촌으로 콩을 사러 다닌다. 콩이라고 다 콩나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콩나물 콩은 몇 종류가 되지 않는다. 나는 운전을 하고 어머니는 흥정을 하고 아내는 계산 등 잡다한 일을 하는 비서 역할을 한다. 1년 놓을 콩을 사기 때문에 양도 엄청 많고, 가는 지역도 여러 곳이다.
낙엽이 질 무렵이면 차를 몰고 단풍 구경을 하며 콩을 사러 다니는 것은 우리에겐 해마다 맞는 즐거운 행사이다. 콩을 사는 집은 오랫동안 거래를 한 단골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면 그분들은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그리고 일 년 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만나는 분들이 모두 노인분들이라 돌아가시는 분들이 계시기도 하는데, 그러면 함께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언양 상북에 계시는 노부부 중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집에 콩을 사러 갔는데 할아버지가 사용하던 모든 농기구가 그대로 다 남아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만 돌아가시고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잃은 지 오래 되었고 혼자 사는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남은 할머니를 위로 하였다.
“휴, 이 너른 집에 여자 혼자 우찌 사노, 그래도 살아야 안 되겄나.”
또, 봉계에 갔을 때는 노부부 중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할아버지도 허리를 다쳐 운신하기가 힘이 들었고, 올해가 마지막 콩 농사였다. 이렇듯 콩을 사는 일은 어머니 인생의 중요한 일부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시골은 할머니만 계시는 곳이 많다. 우리가 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다. 해마다 듣는 이야기라 그 집의 사정을 웬만큼 알게 되기도 한다.
시골 인심은 넉넉하다. 콩을 사면 가는 곳마다 덤을 주지 않는 곳이 없다. 손수 지은 농산물을 주는 것이다. 덤으로 받는 호박이며, 찹쌀, 무, 배추, 된장, 고추장 등을 얻는 재미도 솔솔 하다. 콩 사는 것이 끝나면 그와 함께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다.
계절마다 차이는 있지만 콩을 놓아 다 자라기까지는 5,6일정도가 걸린다. 콩나물을 키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콩나물은 물만 주면 알아서 쑥쑥 큰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모습을 보는 것만도 재미가 있다. 콩나물이 아니고서야 어디서 이렇게 빨리 키 크는 모습을 볼 수 있으랴. 콩나물을 놓기 위한 첫 공정은 콩을 갈리는 것이다. 먼저 하루 정도 물에 불렸다가 콩나물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벌레 먹은 콩이나 ‘물콩’을 골라낸다. 이 공정이 어머니를 치매도 이기게 한 공정이다. 십 수 년 전에 급성 치매 판정을 병원에서 받았지만, 그때보다 어머니의 정신은 더 맑은 것 같다. 콩을 하나씩 갈리려면 눈과 손가락을 이용해야 되는데, 그것이 치매에 도움이 된 것이라 막연하게 추정한다.
콩을 갈리고 나서 콩나물시루에 콩을 담고 그때부터는 물만 주면 된다. 물은 보통 3~4시간 간격으로 주면 된다. 그렇게 해서 5일 정도 키우면 콩나물이 되는 것이다. 어머니는 콩나물을 자식 대하듯 한다.
“너그야 다 커서 내 도움 없이도 살 수 있지만, 내가 없으면 야들은 우예 클 거고.”
어머니가 아플 때 병원에 입원을 권유하면, 이렇게 말씀하시며, 입원을 거부하곤 하는 바람에 우리가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그만큼 어머니에게는 콩나물이 중요한 존재이다.
詩-콩알이 콩나물이 되기까지
첫째 날
귀여운 콩 아기들
물에 들어가 장난치며 놀다가
물 한 모금 꼴깍
또 한 모금 꼴깍
물살이 올라 통통한 얼굴
둘째 날
귀여운 콩 아기들
샤워하며 놀다가
물 두 모금 꼴깍
또 두 모금 꼴깍
물살이 또 올라 퉁퉁한 몸매
셋째 날
콩 아기들 앙증맞은
작은 발이 조금.
물 세 모금 꼴깍
또 세 모금 꼴깍
올챙이 발을 내듯 하얀 발이 쏙.
넷째 날
콩 아기가 잘 자라 콩 소년이 되었네.
물 네 모금 꼴깍
또 네 모금 꼴깍
꼬마 다리 같은 하얀 다리 쏙
다섯째 날
콩 소년이 자라 콩 청년이 되었네.
물 다섯 모금 꿀꺽
또 다섯 모금 꿀꺽
날씬한 몸, 멋진 머리
여섯째 날
콩 청년이 자라 콩나물이 되었네.
엄마, 아빠 싸운 날
해장국에 들어가
아빠 속 풀어주고
엄마 화 풀어주네.
이렇게 키운 콩나물을 근처에 있는 울산 구역전 시장에 내다 파신다. 아침 5시 30분이면 나는 어김없이 기상하여 1층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준비를 하여 어머니와 콩나물을 싣고 시장으로 향한다. 시장에는 어머니의 좌판이 있다. 울산 중구에서 인정을 받은 자리이며, 해마다 세금을 낸다. 그 자리는 어머니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자리이다. 그곳에서 장사를 하시며 주변 아주머니들과 사는 이야기를 한다.
그 아주머니들은 우리 가정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다. 또한, 어머니도 그 아주머니들의 가정사도 훤히 알고 계신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어머니는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살아가는 의미도 발견하게 되는 거다. 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많은 노인들이 외롭게 살아간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분들보다 훨씬 알찬 노년을 보내고 계시는 거라 생각한다. 자식과 함께 살며, 직업도 있고, 돈도 있고, 건강도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하루에 한 독 씩을 파는데, 명절 전에는 하루에 세 독 씩 팔기도 한다. 어머니의 콩나물은 국산 콩을 사용하는데다, 다른 첨가물은 하나도 섞지 않기 때문에 콩나물 고유의 맛을 즐길 수가 있다. 식당에 가서 반찬으로 나오는 콩나물과는 맛이 확실히 다르다. 식감 자체가 다르기에 어머니 콩나물에 길들여진 내 입맛에는 맞지가 않다. 그만큼 어머니 콩나물은 맛이 좋다. 그래서 명절 전에는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이 콩나물을 사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서기도 한다.
어머니는 그렇게 번 돈으로 손자 장학금을 주기도 하고 내 용돈을 주기도 한다. 자식에게 손을 벌리지 않음은 물론이다.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 임두남 여사, 우리에게는 축복인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