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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창영 Apr 10. 2018

*고마워요, 당신이 내 아내여서.

두 모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고마워요, 당신이 내 아내여서.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며, 옷을 하나 주면서

“봄이 되었으니 좀 가볍게 입고 나가야겠어요. 이 옷 좀 다려줄래요?”

“그래요. 오늘 날씨도 많이 따뜻해졌으니 이 옷 입고 나가면 딱 맞겠네요.”

아내에게서 봄옷을 받아 주름진 옷을 다림질로 펴고 있는데, 아내가 어제 들은 뉴스 이야기를 했다.


“모녀가 자살한 뉴스 들어봤어요?”

“예, 남편이 죽자 생활고를 못 이겨 딸과 함께 죽었다는 이야기 말이죠? 어제 나도 인터넷 뉴스로 봤어요.”

“저도 그 뉴스 보고 당신이 무척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당신도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그것을 잘 이겨내어 주었기에 오늘날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아내는 내가 힘들었을 때를 생각하며, 내 마음을 헤아려준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실패하고, 중소기업을 들락거리며 힘들었을 때, 알코올 중독에 빠져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도 하였다. 그렇지만 난 자살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때 만약 죽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고, 아내는 그때의 내 마음을 헤아려준 것이다.    


힘든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매일 술만 마시는 나와, 말을 듣지 않은 애들 때문에 아내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나의 고통은 어차피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지만, 자신을 그렇게 힘들게 만든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내보다는 내가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할 일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이혼을 선택했거나, 우울증에 걸려 고통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신 못 차리는 나를 믿고 참아주었으니 내가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그런데 나에게 감사하다니.


두 모녀의 죽음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 남편은 오죽 힘들었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벼랑 끝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가족을 두고는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이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정말 힘이 들 때가 있다. 다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살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다 지나가게 되어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죽도록 힘이 들었을 때의 그 일이 지금도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고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고통 속에서만 살라고 만들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사람의 인생을 설계할 때, 행복이 존재하는 방과 불행이 존재하는 방을 만들었다고 난 믿고 있다. 그리고 두 개의 키를 주어 스스로 선택하게 만들었다. 어떤 방을 선택하느냐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행복의 방을 열 수 있고, 즐거운 상황에서도 불행의 방을 열 수 있다. 그것은 생각을 어느 쪽으로 하느냐의 문제이다. 행복한 생각을 하면 행복해지며, 불행한 생각을 하면 불행해진다. 당장 문이 열리지는 않겠지만, 행복한 생각을 계속하면 행복한 이유를 찾게 되고 결국에는 행복해진다. 불행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자책을 하는 동안 한 것은 술을 마시며 잠을 자는 것 이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잠을 잘 때에도 악몽을 꾸었으며, 깨고 난 뒤에도 또 힘듦의 시작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은 결코 나를 행복하게 바꿀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이 참으로 오랫동안 지속이 되었고,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난 왜 행복을 찾지 못했을까? 그때도 찾기만 했다면 행복한 이유가 많았었는데. 나에겐 세상 어떤 것보다 소중한 가족이 있었는데, 그런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행복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찾지 않아서였다.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에 그런 구절이 생각난다.


“찾으라 하면 찾을 것이요.”    


이 말은 절대 진리이다.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이 찾아지고, 불행을 찾으려면 불행이 찾아진다. 가장의 죽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아내와 그 딸의 자살. 그들은 왜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지 않았을까? 세상에는 많은 비슷한 경우가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들과 같은 결정을 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이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며 살아갔다면,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흐르는 시간이 약이 되어 ‘그 힘듦을 극복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힘듦은 누구에게나 똑 같다. 누구는 더 힘들고, 누구는 덜 힘들고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힘듦이 가장 아픈 것이다.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가장 뜨거운 것이다.


세상에는 이 두 모녀와 비슷한 환경에서 골똘하게 죽음을 생각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행복한 이유를 한번 찾아보라. 찾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명 찾을 수 있다.”    


아내의 옷을 다림질하며 나로 인해 많이 움츠러들었을 아내의 마음에 든 주름도 같이 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마워요. 당신이 내 아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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