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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창영 Apr 11. 2018

*인생은 짧고, 행복하기에도 바쁘다.

*인생은 짧고, 행복하기에도 바쁘다.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마지막으로 최근까지 한 일이 장례식장에서의 일이다. 그곳에서 숱한 장례식을 보았다. 장례식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산자를 위하는 일임도 깨닫게 되었다. 장례식장은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종착역이다. 그 역에서 산자는 죽은 자에게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이별을 하고 죽은 자는 영원히 산자의 곁을 떠난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승에서 보낸 기차가 장례식장 앞에 대기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비는 눈물과 닮았기 때문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사는 게 좋다.”


라는 옛말이 있다. 아무리 고생되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살아있음이 낫다는 것이 조상 때부터 이어온 생각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을 때의 고통을 두려워하고, 죽고 난 뒤의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두려워한다. 사람이 가지는 두려움의 뿌리는 어쩌면 죽음이라는 땅 속에서 내려져 있는지도 모른다.    


통상적으로 환절기에 노약자들은 몸조심을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방송을 통해 이런 말을 많이 듣곤 하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죽는 것은 계절이 바뀔 때이다. 내가 느낀 것을 수치로 말한다면, 월 평균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환절기와 겨울은 120 정도 되고, 환절기를 제외한 다른 계절은 80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방송에서 들은 피상적인 말을 실제 장례식장에서 일을 하면서 겪고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겨울이나 환절기를 맞이하면 노모의 건강에 각별하게 신경을 쓴다.


모든 죽음이 불행은 아니다. 천수를 누리고 죽음의 고통을 짧게 느낀 주검도 많다. 그렇더라도 산자에겐 슬픈 건 마찬가지다. 죽음이란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일을 할 때,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울산 언양에서 관광버스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불타 죽은 일이 있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부부 동반 관광을 갔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그 사고에 대해 관을 납품하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다.     


“한 부부는 서로 꼭 껴안고 불타 죽었어요. 불탄 주검을 뗄 수가 없어, 두 사람을 같이 넣을 수 있는 특수 관을 제작했지요.”    


그들은 죽을 때도 함께 서로를 꼭 껴안고 죽었다.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마지막 순간 함께 안고 죽었기에 서로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관계된 많은 죽음을 대했다. 울산 토박이인 나는 지금까지 울산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많은 관계를 울산에서 맺었다. 평소에 내가 알았던 사람이나, 그의 가족들이 많이 죽었고, 그곳에서 장례를 치렀다. 


올해 65세 된 지인이 죽어 그곳에서 장례를 치렀다. 평소 깐깐하기로 유명한 검사관이었는데, 예전에 나와는 술도 많이 마셨다. 정년퇴임하기 전에 웅촌에 땅을 산 곳에 함께 간 적도 있었다. 그 사람은 그곳에 상가를 만들어 노년을 대비했다. 그런데 상가를 다 지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그 일을 겪으며 죽음은 결코 남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누가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 하고 물으면 지금 나는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행복의 이유가 되느냐고 다시 물으면 그렇다고 말하겠다. 장례식장에서 많은 죽음을 대했기에, 분명 살아 있는 것만으로 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나에게도 힘든 일이 많다. 다른 사람에 비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난 힘듦이 불행하다의 동의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면 힘든 일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고, 그것을 불행하다고 이야기한다면 누가 행복할 수 있으랴. 그래서 살아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니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일을 하며 누구나 모두 죽는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도 느꼈다. 죽음을 앞 둔 사람들은 살아있는 그 자체만을 바랄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돈과 명예보다는 생명이다. 그들은 단지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그들이 그렇게 바라는 생명을 내가 가지고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살아있는 동안 난 행복을 누리며 살 것이다.       


“인생은 짧고, 그렇기에 난 행복하기에도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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