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새와 소녀의 사랑이야기
비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2,3학년 때쯤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때도 지금처럼 아침에 비가 오지 않다가 하교할 때쯤 비가 내리는 날이 간혹 있었다. 다른 엄마들은 우산을 들고 학교로 찾아오곤 했지만, 장사를 했던 어머니는 결코 우산을 들고 오는 일이 없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그치지 않으면 그대로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를 맞고 돌아오는데 그렇게 빗물이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때 비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팔을 벌려 만세를 불렀다. 그날이 내가 비를 좋아한 기억의 처음이다. 그 다음부터는 막연하게 그저 비가 좋았다. 중학교 시절, 수업을 하는데 비가 내렸다. 쉬는 시간을 기다려 비를 맞으며 교정을 걸었다. 그 비에 젖은 교정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다 감수성의 정점을 찍었던 고등학교 시절, 비가 내리면 집에 있다가도 비를 맞으러 나갔다. 빗소리는 어떤 노래보다 내 몸의 세포들을 들뜨게 했다. 빗소리를 항상 듣고 싶어 억수로 퍼붓는 어떤 날은 빗소리를 녹음하기도 했다. 그만큼 비를 좋아했다. 그 당시 “비에 젖은 비둘기가 서러웁게 우네요.”라는 가사의 노래가 있었다. 그 노래를 듣고 비에 젖은 새를 상상했다. 그리고 ‘비의새’라는 말을 만들고 그것에 나를 이입했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비를 거부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라는 말을 하며 돌아다녔다. 비는 내 거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지금도 비는 내 거다. 다음의 시는 20대에 적은 것으로 기억된다.
비의새와 소녀의 사랑이야기
세상에서 비는 자기 것이라고
이야기한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에서 하늘이 자기 것이라고
이야기한 사람이 있을까요.
한 소년은 오래 전 부터
비는 자기 거라고 혼자 우겼습니다.
자기 허락 없인 비를 맞으면 안 된다고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하곤 했지요.
그 소년 같은 소녀가 한 명 있더군요.
하늘이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아주 귀여운 소녀가
원래 하늘은 너무나 아름다운 색깔이었는데
자기가 푸른 천을 쳐버려 다른 사람은
아름다운 색깔을 보지 못하고
파란 하늘만 보게 된다는
그 소녀는 소년에게
비 맞는 것을 허락해 주면
하늘에 가린 파란 천을 조금만 벗겨
소년에게만 하늘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겠다는 제안을 했어요.
소년은 소녀에게 비 맞는 것을 허락해 주었지요.
소녀도 소년에게 파란 천을 벗겨
하늘을 보여 주었지요.
그런데 소녀는 비를 맞은 후
눈물만 흘리게 되었고
소년도 하늘을 본 후
눈물만 흘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소년도 소녀도 몰랐습니다.
그 후 비가 오면
비의새의 울음 소리가 들리고
하늘을 보면
소녀의 파란 손이 보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