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남자.1
*비의 소곡
어쩌다 시를 쓰는 남자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시가 좋았다.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산문은 너무 높은 산처럼 느껴졌다. 우선 그 분량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특히 소설을 쓰는 사람은 위대해 보였으며, 난 죽었다 깨어나도 소설은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는 짧아서 좋았다. 작은 그릇 속에 큰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를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 맘대로 쓰고 싶은 글을 쓰니, 그것은 사랑타령이나 유행가 가사도 되지 못하는 일상의 푸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 다른 사람은 어떻게 시를 쓰는 지 한번 읽어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 집 책꽂이에 꽂혀 있던 세계문학전집 속의 시 부분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너무 어려워 무슨 말을 하는 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에 와 닿는 시가 있었다. 그것은 하이네의 시였는데, 그 중에서도 “서정소곡”이 너무 좋았다. ‘그래! 시는 이렇게 써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하이네의 시를 읽기 시작했다. 시의 맛을 시식하고 나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집을 사서 읽어보았는데 그 시집은 괴에테의 시집이었다. 괴에테의 명성은 익히 들은 터라서 괴에테처럼 시를 쓰면 나도 시를 잘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어려웠다. 아마도 해석한 사람의 역량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지, 괴에테의 시를 이해하기에는 내 너무 나이가 어렸던지, 하여튼 그때 내 나이는 열일곱 살이었다. 다음의 시는 하에네의 서정소곡에서 힌트를 얻어 비의 소곡이라 이름 지었다. 비는 나에게 시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기에.(이 시는 30대에 쓴 것으로 기억된다.)
비의 소곡
1. 눈물 꽃이 피고
비는 그리움이다.
말라버린 연못의 물고기처럼
바싹 마른 몸을 하고
비를 그리워한다.
비가 내릴 때도
비를 그리워한다.
비는 항상 욕심껏 내리지 않아
아쉬움을 남게 하고
그 아쉬움은 그리움과
선이 닿아 있다.
비가 내리면
마른 혈관 가득 비가 스며
온몸은 그리움으로
팽팽해진다.
비가 그치는 순간부터
출혈이 시작된다.
눈으로 분출되는 눈물
얼굴 가득 눈물 꽃이 핀다.
2. 장미꽃이 피고
장미에도 혈관이 있어
혈관 가득 그리움이 돌고
피 흐를 때마다
장미꽃이 피어난다.
빨간 피를 흘리면
빨간 장미가 피고
하얀 피를 흘리면
하얀 장미가 피고
두 가지가 흐르다 섞이면
노란 장미가 핀다.
3. 장미의 눈물
그대를 장미로 생각했기에
가슴에선 끝없이 장미가 피어나고
한 송이가 필 때마다
가슴은 불에 타고
그 뜨거움을 빗물로 식히면
꽃이 핀 채로
한 송이씩 화인이 찍혀
가슴의 바닷가는
화인의 바위로 눈물짓고
4. 당신의 연인인 나의 사랑에게
그대는 가까이 있어
그대에게 가려 하면
우주의 미로를
몇 바퀴나 돌아도
그대에게 가지 못하고
내 가슴에 각인된
장미의 향기는
언제나 그리움으로만
배어나고
비 오는 어느 날
길을 가다 문득
비에 젖은 장미꽃을 보거든
나를 위해 한 송이만 꺾어
당신의 연인인
나의 사랑에게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