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번째 날

불안 / 프라하, 체코

by 샤냥꾼의섬

한 번도 불안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요즘은 그 불안을 조금씩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면 체념일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안이 나를 성숙하게 만든 것 역시 사실이다. 즐거운 경험을 오랫동안 했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문장으로 정리하면 ‘괜찮은 삶이었다’ 라고 나조차 말할 수 있을 만큼, 어쩌면 그만하면 되었으니 받아들여, 하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골 펍에 가면 마스터가 알아서 맥주를 건넨다. 나는 그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메모를 한다. 프라하에서는 아니 유럽에서는 이런 분위기의 펍이 많다. 그리고 누구도 그 작은 고독을 헤치지 않는다. 말을 건네고 싶을 때에도 조심스럽다. 이 점이 참 좋다. 어쩌면 프라하 생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대부분 이런 펍에서 동양인은 나 혼자뿐이다. 사실 이건 스무 살 때부터 생긴 습관인데, 그때는 포장마차나 동네 호프집에서 이러곤 했다. 나중에는 안주를 무조건 시켜야 한다고 해서, 홍대나 상수동에 있는 작고 소박한 바에 갈 수밖에 없었다.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이런 곳이 전국에 많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비싼 바 말고는 대부분 안주를 강요받는다고 지인들이 말했다. 그렇구나. 그저 문화 차이라고 생각한다.



좋고 나쁜 게 없는 그저 문화 차이

다만 내게는 이곳 문화가 더 어울린다 생각할 뿐이다.

그렇게 혼자 맥주를 마시고 생각을 하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산책하며 생각을 한번 더 정리한다. 때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걸으며 주변을 받아들인다. 카를교와 수백 년이 된 건물들과 오래된 공원을 걸으며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그럼에도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어제, 길을 걸으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