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시험
당시 과학수사대 CSI를 보며 CSI 요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내 성적으론 무리였다. 하루는 그림을 배우고 싶었지만, 연합고사를 앞둔 16살 학생에겐 사치였기에 포기했다. 하루는 뮤지컬 배우가 하고 싶었지만, 평범한 17살 학생에겐 불장난에 가까운 꿈이었다.
도대체 그럼 왜 공부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어른들은 이렇게 답했다.
"나중에 네가 꿈이 생기면 그때, 너의 성적이 뒷받침해줘야 이룰 수 있어."
"꿈이 있다고 말했잖아요."
"아, 근데 그런 꿈은 안돼. 현실적으로 생각 하렴. 미술이나 노래 같은 건 타고난 애들이나 하는 거야."
"아."
이런 대화가 반복되다 보면 자연스레 꿈을 찾지 않게 된다. 그럼 또, "넌 학생인데 꿈도 없니?"라며 떠민다. 이런 패턴은 희망고문에 가깝고, 나중엔 진을 빼고 영혼을 쪽 빨아먹는다. 그래서 남는 건 무미건조한 껍데기뿐인 20살짜리 사회 초년생이다. 내가 그랬다.
그래서, 내 동생들에겐 함부로 꿈을 묻지도 않고 장려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요즘 관심거리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쌍둥이 막냇동생 중 1분 형인 넷째는 기계를 잘 다루는 편이다. 몸을 쓰는 일에도 능하고, 공부도 잘하는 만능이다. 하지만, 자기가 하기 싫은 공부나 일은 절대 절대 하지 않는다. 대답만 잘할 뿐, 절대 하지 않는다. 특히 영어를 절대 하지 않는다.
녀석의 마음을 감히 읽자면, 못하는 과목이라 더 손이 안 가는 것이겠다. 하라면 곧잘 할 거지만,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게 한 과목은 괜스레 미운 것이다. '야, 됐어. 너 말고도 다른 과목 많거든?' 이런 마음이려나. 평소에 공부깨나 잘한다는 소릴 듣는 녀석인데, 영어 앞에서만 서면 무기력해지고 작고 초라해지는 게 싫고 두려운 것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하루는 날을 잡아 영어교과서 본문을 함께 공부해줬다. 역시나. 내 예상보다 훨씬 잘 따라와 줬고, 잘 해냈다. 그래서 더욱 칭찬을 해주고, 토닥여줬더니 그 이후론 진저리 치진 않는다.
넷째는 은연중에 자신이 기계를 잘 다룬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개발자나 프로그래머 같은 IT계열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한마디 붙여줬다. "개발자든 프로그래머든 영어는 해야 할 텐데. 그냥 남들 만큼?"라고. 그랬더니, "그럼 해야죠."라더라.
막냇동생 중 1분 동생인 막둥이는 영어를 제일 잘하고 제일 좋아한다. 팝송도 앉은자리에서 외우고 가사를 보며 단어를 외우는 녀석이니, 언어능력에 뛰어난 듯하다. 다만, 막둥이가 영어를 잘하자 넷째가 그 모습을 보며 영어를 더 싫어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쌍둥이를 두고 비교하고 경쟁하게 만든다면?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넷째는 잘하던데, 넌 왜 못해? 너희 쌍둥이잖아."
"막내는 잘하던데, 넌 왜 못해? 넌 심지어 1분 형이잖아."
학교를 다니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좋든 싫든 경쟁사회로 던져진 것이다. 그런데, 지친 몸을 끌고 하교했더니 집에서도 경쟁하라? 이건 아이들이 삐뚤어지기 딱 좋은 환경이 아닌가! 집이 집 같지 않고 낯설어지는 순간, 아이들은 삐뚤어지기 일쑤니까.
그래서, 우린 쌍둥이지만 같은 옷도 색이라도 다르게 사준다. 사진에서도 같은 디자인이지만, 색상이 다르지 않은가. 그렇다. 각자 취향에 맡겼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은 쌍둥이끼리 싸우는 일은 정말 정말 드물다. 서로의 성격을 너무 잘 알기에 각자 화가 날 일을 만들지 않고, 싫어할 말을 뱉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 살면서 수도 없이 겪을 경쟁과 시험에서 서로의 등받이가 되어주라 가르친다. 서로는 절대 경쟁상대가 아님을 수도 없이 강조한다.
그 결과, 둘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선생님이 되어줬다. 막둥이는 넷째에게 영어를 알려주고, 넷째는 막둥이에게 수학을 알려준다. 둘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참 잘 자라고 있구나 라며 마음이 따듯해진다.
하지만, 또 모르겠다. 중간고사 결과지를 안고 서로 무슨 생각에 잠길지. 그래서, 부모는 힘든 거 같다. 고작 누나인 나도 이렇게 머리가 아픈데, 우리 엄마는 얼마나 머리 아프실까. 그래서 난 오늘도 부모이길 포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