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을 포함해, 남의 생일을 챙겨본 적이 손에 꼽는다. 달리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내 생일을 챙기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들의 생일도 챙기지 않게 됐다. 하지만 20대 극초반엔 생일파티를 가장한 음주 파티를 부러워했었다. 생일을 챙기지 않는 것과, 챙기지 못하는 것의 차이겠다. 20살부터 22살까지, 내 시간이 거의 없었으니까.
20대 후반에 들어서자, 생일을 더욱 챙기지 않게 됐다. 물론, 가족들의 생일은 꼬박꼬박 챙기는 편이지만 가족들이 내 생일을 챙겨주는 것은 어딘가 낯이 간질거려 참을 수가 없다. 가족들은 내 생일마다 생일자 몫까지 더해 유난을 떨어준다. 특히,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내 생일마다 죄인이 되신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미역국을 뺏었단다.
"아직 20대 초반인데, 미역국 먹으면 살쪄!"
엄마는 반강제로 미역국 사발을 뺏기셨고, 내게 젖을 물리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하셨다. 대신에 할머니는 미안하셨는지 내 분유만큼은 그 당시 가장 비싼 걸로 장만해주셨단다. 그리고, 백일 동안 꼬박 산후조리를 해주셨고, 다행히 엄마의 몸은 빠르게 회복하셨단다.
이런 이유로 생일을 챙기지 않느냐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 그냥, 태생이 무심한 탓이다.
내가 이 글을 적게 된 요는 그저, 나이를 먹을수록 어릴 적 내게 미안해서 적고자 한다. 어릴 적엔 웃음도 많고, 감정도 또렷한 아이였다. 계곡에 놀러 가면 꼬박 물속에서 나오지 않을 만큼 활동적인 아이였다. 엄마와 함께 계곡에 놀러 갈 때면, 매번 엄마 손을 끌고 계곡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엄마는 매번 거절하셨고 물속에 들어가길 거부하셨다. 그런 엄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속에서 놀면 엄청 재미있는데.'
바위 위에서 내가 노는 모습만 바라보던 엄마를 보며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뒤돌아보니 내 어린 동생들이 내손을 계곡물로 끌고 있고, 난 수차례 고개를 저으며 거부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도 나이를 먹은 것이다.
픽사베이
"우리 어른되면 다 같이 살자. 1층엔 내가, 2층엔 네가, 3층엔 네가. 어때?"
"좋아! 그러자, 약속!"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심지어, 그 약속을 한 친구들과 연락조차 뜸하다. 한 명은 아예 절교까지 했으니까. 그때 그 약속을 한 친구와 최근까지도 연락을 나눴다. 내 속을 잘도 아는 친구였고, 공통 관심사가 있는 오래된 귀중한 친구였다. 맞다. 과거형이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나 또한 이기적인 어른인지라, 내 자존감과 감정을 갉아먹는 이들에게 날 먹이로 던져줄 만큼 멍청하거나 할 일 없지 않다. 하지만, 너무나 오래된 친구였기에 계속해서 눈감아줬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던진 말에 며칠을 아파하며 몸살을 앓았다. 그렇게 잊힐 때쯤 다시 몰려와 돌덩이를 던져댔고, 난 또 모르는 척 속아주며 얻어맞은 멍자국을 어루어만지며 '왜 못 피했니.'라며 내 탓으로 돌렸다. 그만큼이나 아끼던 친구였다.
하지만, 재미가 없어졌다. 그런 짓도, 그런 짓을 당하고도 나 자신보다 친구 편을 드는 나도 재미없어졌다. 주변 사람들이 날 믿어주길 바라면서, 정작 내가 나를 믿어주지 못했다. 뇌물 받은 사람처럼 계속해서 친구의 말실수를 가장한 상처를 용인해주고, 친구에게 돌덩이를 쥐어줬다. 그 짓거리가 재미없어졌다. 지독하게 지루했다.
'존버'가 답이라는 이 세상에서 내가 매일 하고 있는 게 그 지루한 짓거리가 아닌가. 아무리 뿌리를 뽑히고 뇌가 으깨져도 그저 '존버'가 답이라는 최면 걸린 세상 말이다. 그게 그렇게 싫다면서 친구에게 내 뿌리를 내어주고, 뇌를 내어준 셈이었다.
만 29세를 이틀 남겨두고 뒤를 돌아봤다. 아직 내가 연락한다면 받아줄 친구들도 많다. 하지만, 오늘도 핸드폰 화면을 끈 채 뒤집어 놓는다. 어떻게 보면 용기 부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랜만에 연락 닿은 친구들이 이런저런 소식을 묻는 게 무례하게 느껴져 미간을 찌푸릴 거 같아서. 오랜만에 연락 닿은 친구들이 연락을 꾸준히 해올까 귀찮아서. '필요하면 알아서들 연락하겠지.'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야. 있을 때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연락만 기다리는 게 맞아?"
"친구 소중한 건 알아. 근데 난 원래 이래. 연락이 오면 오는 대로 받는 거고, 연락이 없다면 없는 대로 사는 거지."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고."
글쎄, 그게 문제일까? 가만히 있던 친구에게 돌덩이를 던진 네가 제일 문제가 아닐까? 라며 되묻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태생이 무심해서, 생일 축하 연락이 남들보다 덜 온다거나, 마구잡이 결혼식과 돌잔치 소식을 덜 접한다거나, 시도 때도 없이 우린 언제 보냐는 연락을 덜 받는다거나. 그런 리스크는 내가 짊어지는 건데, 그 친구는 왜 내 면전에 대고 당당하게 문제라고 지적했을까? 혹시, 태생적으로 무심한 게 불법인가? 만 29세를 이틀 남겼음에도 모르겠다.
그런 무심한 나는, 그 친구를 끊어냈다. 끊어냈다 표현하니 대단한 절교라도 한듯하지만, 그저 친구의 연락을 받지 않을 뿐이다. 그게 무심한 나로서 가장 어울리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