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화가 열전 ⑧] 르누아르-1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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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는 프랑스 리모주에서 가난한 재봉사 노동자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다. 14세에 도자기 제조 공장에 취직하여 문양을 그리고 색채를 익히기 시작했다. 미술적 재능을 보인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명화들을 보며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1860년대 초 파리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고 스승 샤를 글레르(Marc Gabriel Charles Gleyre, 1806-1874) 아틀리에에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 시슬레(Alfred Sisley, 1839-1899), 바지유(Jean Frédéric Bazille, 1841-1870)와 같은 미래의 인상주의자들과 만나 교유했다. 이들은 빛이 주는 변화를 찾기 위해 글레르의 화실에서 나와 작업실이 아닌 야외로 나가 빛에 따른 색채의 변화와 인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1870년대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의 빛이 시시각각 변화하며 만들어 내는 색조의 표현에 관심을 두며 새로운 회화기법을 발전시켰다. 이전의 사실적인 화풍이 아닌 빛과 대기의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효과를 집중하여 그린 것이다. 1874년 보수적 살롱전에 반기를 들어 사진작가 나다르 파리 스튜디오에서 르누아르, 모네, 피사로, 드가, 세잔, 시슬레 등이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르누아르는 특별관람석(The Theater Box, 1874년)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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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특별관람석(The Theater Box), 1874년, 80×63cm, 런던 코널드 인스티튜드미술관


<특별관람석>은 1회 인상주의 전시에서 혹평받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다. 당시 화풍을 따라 인물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오페라를 감상하는 남녀를 묘사한 그림으로 여인은 난간 앞에 기대 자신의 미모를 뽐내고 있고 남자들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특별관람석을 찾았다. 당시 오페라글라스로 관찰하는 유희가 있었으며 이를 표현하였다. 화려한 옷, 붉은 꽃,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와 화사한 색감이 돋보인다.


르누아르는 이후 모네와 함께 인상주의 운동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의 화풍은 환한 색감과 함께 살아있는 붓 터치로 빛과 분위기를 포착하여 평온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발랄하고 밝은 빛의 대비, 일상의 아름다움을 화려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주로 꽃과 어린이, 여성을 많이 그렸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풍경화에 모네가 있다면, 르누아르는 인물화에 주목할 인상주의 화가다.


초기 인상주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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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양산을 쓴 리즈, 1867, 115x184cm, 에센 폴크방 미술관


르누아르는 1868년 살롱전에 초기 인상주의를 알리는 작품 <양산을 쓴 리즈>(1867)를 발표했다. 양산으로 햇빛을 가린 그늘진 얼굴과 빛을 받은 흰색 드레스가 대비되게 빛의 효과를 표현했다. 이 작품은 비평가 에밀 졸라(Émile Zola, 1840-1902)의 극찬을 받았으나 당시 대중의 전반적인 평은 좋지 않았다. 이 작품의 모델은 그의 애인 리즈 트레오(Lise Trehot)로서 이 시기 르누아르 작품에 모델로 주로 등장한다.


야외 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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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라 그르누예르(La Grenouillere), 1869, 스톡홀름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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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라 그르누예르의 수영객들(Bathers at La Grenouillere), 1869, 런던 내셔널 갤러리


르누아르는 1869년 여름, 모네와 함께 파리 근교 센 강변에 있는 해수욕장 라 그르누예르(La Grenouillere)에 머물며 이곳에서 야외 사생하였다. 이곳은 당시 파리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서 강변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을 담고 있다. 햇빛의 변화에 따라 반사되어 반짝이는 물, 사람들의 옷과 나뭇잎의 표현을 빠른 붓질과 밝은 색채로 그리며 이곳의 활기찬 분위기와 순간의 인상을 그렸다. 모네도 같은 풍경을 그렸는데, 르누아르는 모네보다 비교적 인물들의 움직임을 묘사하며 근접하여 그렸다.



화려한 빛의 유희


1876년 르누아르는 대표작품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Bal du moulin de la Galette)을 완성하며 1977년 3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전시한다. 야외 무도회의 즐거운 남녀들과 화려한 현장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물랭드 라 갈레트는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던 야외 선술집으로 주말 오후 사람들이 춤을 추고 이야기를 나누던 대중적 사교 장소이다. 르누아르의 작업실은 이 근처에 있어 매일 캔버스를 가지고 나가 현장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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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캔버스에 유화, 131 x 17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빛의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표현이 주목된다. 그림자는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고 짙고 옅은 푸른색으로 표현했다. 그는 술렁이는 인파 속에 비치는 햇빛의 효과를 연구했다. 화면 앞 위치한 인물들의 형체와 표정을 비교적 잘 묘사하였고, 화면에서 멀어질수록 뒤의 인물들은 몇 번의 짧은 붓 터치로 대담하고 자유롭게 표현했다. 그늘 틈 사이로 사람들의 옷과 피부, 나무에 자유롭게 비치는 햇살의 변화를 밝고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또한 의도적으로 대상의 윤곽선을 흐리게 하여 공기와 햇빛의 변화에 따른 효과를 주었다. 이러한 효과는 당시 사람들에게 그림이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겠으나 빛과 그늘의 명암과 밝은 색조의 조합은 깊이 있는 분위기와 생동감을 준다.



파리시민의 생활 풍경과 시대성


이외에 르누아르가 40대 초반 센 강변 레스토랑에서 지인들과 친구들의 모임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는 <뱃놀이에서의 점심>에 따뜻한 햇살을 받아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의 인물들을 다양한 구도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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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뱃놀이에서의 점심(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1881, 130.2x175.6cm, 미국 워싱턴 필립스 미술관


이 작품은 실제 인물들을 찾는 재미가 있다. 전면의 테이블에 강아지를 안고 있는 모자를 쓴 여인은 르누아르의 아내가 될 알린 샤리고(Aline Charugot) 이다. 가장 오른쪽에 의자를 거꾸로 앉아 있는 남자는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이다. 그는 화가이자 미술품 소장가로 르누아르를 후원하며 르누아르의 걸작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그림을 산 인물이다. 그 옆에 앉은 여성은 여배우 엘렌 앙드레(Ellen Andree) 이며, 가장 왼쪽에 발코니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남자는 레스토랑 주인 아들인 알퐁스 푸르네즈 주니어(Alphonse Founrnaise Jr.)이며 화면 중심에 술잔을 들고 있는 여인은 여배우 엘렝 앙드레(Ellen Andree)이다. 오른편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여인은 유명 여배우 잔느 사마리(Jeanne Samary)이다. 작품 속에는 예술가, 여배우 외에도 상인, 언론인, 평론가, 관료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상들이 나타난다. 각각의 인물 초상화를 종합한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왼쪽 위 줄무늬 차양 아래 배경에 보트를 타는 사람들과 철교를 볼 수 있다. 파리시민들은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나와 센강에서 뱃놀이와 식당에서 식사하며 여가를 즐겼다. 파리시민들의 생활을 그 시대상을 생생히 보여준다.


(곧이어 2부 게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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