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은 4월 17일부터 7월 6일까지 덕수궁관에서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2: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전을 개최하고 있다. 전시는 말 그대로 ‘재발견’이라는 이름에 걸맞는다.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오랫동안 주변부에 머물던 초현실주의라는 키워드를 단초 삼아, 미술사 바깥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김종남, 김욱규, 김종하, 박광호, 김영환, 신영헌 여섯 명의 작가들을 조명한다.
천경자, 전설, 1962, 종이에 색, 고려대학교 박물관, 사진:원정민
우리가 알고 있는 초현실주의는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이 발표한 선언문에서 시작된,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확산된 국제적 예술 운동이다. 이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저항, 무의식과 꿈의 해방, 경이로움과 시적 상상력의 탐색이라는 단어들이 줄줄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이 거대한 예술 운동은 한국 미술사에서는 언제나 중심에 놓이지 못한 채, 실체 없는 유행처럼 간헐적으로 소환되다 이내 미술사 밖으로 밀려나곤 했다. 너무 서구적이고, 너무 현실 도피적이며, 때로는 너무 낭만적이기까지 했던 이 양식은 한국미술의 현실참여적 흐름, 민족적 서사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좌) 천병근, 무제, 1957, 캔버스에 유화, 유족 소장 우) 정기호, 의식의 계단, 1975, 종이에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총 네 개의 전시실로 구성되며, 그중 1전시실을 제외한 세 전시실은 여섯 명의 작가를 개별적으로 소개한다. 1부이자 전시의 서문 역할을 하는 1전시실의 제목은 ‘삶은 다른 곳에 있다’이다.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마지막 문장에서 따온 이 문장은, 현실을 낯설게 바라보려는 초현실주의의 근본 태도를 상기시킨다. 이곳에서는 초현실주의라는 서구적 개념을 한국미술의 맥락 안에서 다시 조명하며, 근대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작품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읽어낸다.
이쾌대, 2인초상, 1939, oil on canvas, 72x53cm, 사진: 원정민
초현실주의는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 통념에 균열을 낸다.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을 직접 표방하지 않았더라도, 그 도상과 분위기를 은밀히 품은 작품들이 분명 존재해왔음을, 그리고 그것이 한국적 맥락에서 형성된 또 다른 초현실주의였음을 조용히 증명해 보인다.
김종남(마나베 히데오), 새들의 산아제한, 1978,캔버스에 유채, 유족소장
1부의 첫 번째로 소개된 작품은 이쾌대의 〈2인초상〉이었다. 이쾌대라 하면 정밀한 데생과 사실적인 인체 표현, 리얼리즘 회화가 먼저 떠오르기에, 그의 작업에서 초현실주의를 논하는 일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화면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면, 분홍색 저고리를 입은 여성의 뒤편에 양장을 한 또 다른 여성의 형상이 마치 그림자처럼 겹쳐져 있다. 이 불일치와 중첩은 초현실주의 미학의 핵심 중 하나인 ‘객관적 우연’, 즉 이질적인 요소들의 예기치 않은 만남을 연상시킨다.
김종남(마나베 히데오), 비행기가 있는 풍경, 1955,캔버스에 유채, 이타바시구립미술관
전시장에는 이 밖에도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조르조 데 키리코의 세계를 환기시키는 화면 구성과 이미지가 담긴 작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물론 그중 일부는 서구 미술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그려진 습작에 가까운 작품도 있고, 초현실주의로 분류되기엔 다소 애매한 반추상 회화들도 있어 관람객에게 약간의 혼란을 안기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의심’과 ‘경계의 모호함’이야말로, 초현실주의가 한국에 실제로 어떻게 도착했고, 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역으로 드러내는 단서가 된다. 초현실주의가 단일한 양식이 아닌 하나의 태도, 혹은 인식의 틀이라면, 이 전시는 그 태도가 한국적 맥락 안에서 어떻게 번역되고 변형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김욱규, 제목없음, 1970년대, 캔버스에 유화물감, 유족소장
그렇기에 이번 전시에 소개된 여섯명의 작가 김종남, 김욱규, 김종하, 박광호, 김영환, 신영헌이 각자의 방식으로 초현실이라는 낯섦을 풀어냈다는 점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의미있다.
1930년대 도쿄에서 초현실주의와 처음 마주한 김종남과 김욱규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초현실주의가 아닌 간토대지진 이후 형성된 일본의 도시적 모더니즘 정서가 혼합된 이른바 ‘통역된’ 초현실주의를 마주했다. 새로운 미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 유학이 불가피 했던 시절,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식민지 조선과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현실을 재해석했다. 재일조선인, 실향민이라는 경계적 위치에 놓인 두 작가는 자신이 겪은 상실과 불안을 초현실적 이미지로 표현했다. 그것은 특정 양식이라기보다는, 세계와 자신 사이에서 생겨난 거리의 감각이었다.
김종하, 선인장, 1977, 캔버스에 유화,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원정민
김종하, 달밤의 유혹, 1973, 캔버스에 유화, 개인소장
1950년대 중반 프랑스로 건너가 비로소 초현실주의를 다시 마주한 김종하와, 한국전쟁기 피난지에서 미술을 시작한 박광호의 작업은 보다 내밀한 감각에 닿아 있다. 김종하의 누드화와 박광호의 비정형 형상은 당시 한국미술에서 보기 드물었던 에로티즘의 양상을 보여준다. 김종하는 관능적인 여성 누드를 통해, 박광호는 초현실주의 오브제에서 영감을 받은 비정형 이미지를 통해 억압된 꿈과 욕망을 가시화한다. 이들에게 초현실은 감각이 발화될 수 있었던 하나의 틀이었다.
박광호, 종유환상, 1970년대, 캔버스에 유화, 유족소장. 사진: 원정민
전시중인 박광호 작품, 사진: 원정민
유학 경험 없이 신조형파 등 국내 단체 활동을 통해 초현실을 시도했던 김영환, 그리고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채 완전히 독자적인 작업세계를 구축한 신영헌의 화면은, 달리나 키리코의 잔영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어디에도 쉽게 귀속되지 않는 풍경을 보여준다. 이들의 화면은 낯설지만 이상하게 익숙하다. 추상이라 부르기엔 너무 구체적이고, 구상이라 하기엔 너무 유동적인 제3의 공간을 보여준다. 특히 신영헌의 화면 속에는 석굴암, 임진강 등 한국적 소재들이 파편화된 채재구성되어있다. 그는 토착적인 감각과 초현실주의적 태도를 연결하며, 한국미술에서 전통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뗄 수 없는 감각으로 작동해왔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김영환, 봄이되는 여인, 1977, 캔버스에 유화물감, 유족소장
신영헌, 신라송, 1968, 캔버스에 유화, 국립현대미술관
그들의 초현실은 결국, 제도나 유행으로서의 초현실이 아니라 각기 다른 조건과 내면에서 피어난 감각의 언어였다. 그것은 현실로부터 도피한 환상이라기보다, 현실과의 간극을 감당하기 위한 하나의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또한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기 어려운 여섯 개의 시선은, 오히려 초현실이라는 단어가 단일한 양식이 아니라, 시대와 조건, 감각에 따라 달리 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차이에서 우리는 어쩌면 한국미술의 또 다른 궤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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