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을 맞이한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Seoul Spring Festival of Chamber Music)〉는 올해도 변함없이 그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예술적 우정과 만남, 그리고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 열린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이 축제에서는 이름값을 앞세운 솔리스트도, 스타 시스템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실내악 특유의 에스프리인 함께 호흡, 상호 경청, 그리고 함께하는 음악의 기쁨이 중심이 된다. 2025년 5월 4일 14시 IBK Hall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폐막 콘서트는 그러한 철학을 구현해낸 훈훈한 자리였다.
폐막 공연 후 20주년 축하 장면 ⓒ 박마린
공연의 문을 연 곡은 밝고 생소한 작품은 마우로 줄리아니(Mauro Giuliani)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6개의 변주곡 D장조, 작품번호 63. 〉19세기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이자 첼리스트, 성악가였던 줄리아니는 이 작품에서 우아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바이올리니스트 김계희와 기타리스트 박규희, 두 연주자는 각 변주 마다 새로운 표현의 결을 드러내며 두 악기의 섬세한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냈다.
분위기는 라흐마니노프의 트리오 1번 〈비가 g단조〉에서 극적으로 전환된다. 차이콥스키를 기리기 위해 작곡된 라흐마니노프의 초기작은 깊은 애도와 낭만적 감성이 깃든 분위기로 관객을 몰입시켰다. 문지영의 강렬하고 흡입력 있는 피아노 선율은, 김다미의 섬세한 바이올린과 에드워드 애런의 우수에 찬 첼로와 어우러지며 강렬한 대화를 이끌어갔다. 특히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울리는 피아노 왼손의 장중한 울림은 마치 팀파니처럼 장송행진곡을 그려내며 절제된 비애를 표현했다. 슬픔에서 피어나는 묘한 희열, 보기 드문 감정의 깊이를 선사한 연주였다.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 순서에서 분위기는 한층 가벼워졌다. 다비드 발터가 목관 5중주를 위해 편곡한 이 버전에서 프랑스 출신의 연주자들 — 마튀 가우치-앙슬랭(플루트), 올리비에 두아즈(오보에), 로맹 기요(클라리넷), 로랑 르페브르(바순), 에르베 줄랭(호른) — 은 진정한 실내악 정신을 보여주었다. 서로의 눈짓과 유려한 프레이징, 리듬의 유쾌함이 어우러진 그들의 연주는 마치 작고도 생생한 음악극을 떠올렸다.
연주에 앞서 이들은 축제의 20주년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하며, 오랜 시간 서울 스프링 페스티벌과 함께해온 기쁨을 관객과 나누었다.
조르주 비제 - 카르멘 모음곡 공연 후 ⓒ박마린
그 여운은 생상스의 〈타란텔라 A장조, 작품 6번〉에서 더욱 활기차게 이어졌다. 생상스의 젊은 시절의 작품은 당시 로시니에게 큰 인상을 주었고, 심지어 그는 젊은 작곡가의 곡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했다고 전해진다. 피아니스트 박상욱의 경쾌한 리듬 위에서 플루트와 클라리넷(가우치-앙슬랭, 기요)은 재치 넘치는 연주 대결을 펼쳤다. 관객들은 소개 멘트에 실린 유쾌한 일화, '타란텔라가 이탈리아 남부 도시 ‘ 타란토’ 혹은 거미 ‘ 타란튤라’의 독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 에 미소 지으며 감상을 만끽했다.
생상스 - 타란텔라 연주 모습 ⓒ박마린
폐막 공연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A장조 〈송어, 작품 D.667〉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음악 애호가들에게 유독 사랑받는 이 작품은 이날 특별히 구성된 앙상블, '무히딘 뒤르뤼오을루(피아노), 강동석(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마리 알랭크(첼로), 이창형(콘트라베이스) ' 을 통해 생기 있고 따뜻하게 울려 퍼졌다. 특히 독일식 활을 사용하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이창형의 단단하고 우아한 베이스는 전체 사운드에 품격을 더했다. 4악장의 주제와 변주에서는 〈송어〉 가곡의 맑은 선율이 정교하게 변주되며 음악적 신선함이 한껏 빛났다.
무대를 떠나기 전, 강동석 예술감독은 관객과 아티스트 모두에게 20년간의 동행과 우정에 깊은 감사를 전했다. 앙코르로는 유머와 위트가 담긴 생일축하 테마 변주곡이 연주되었다. 이 곡은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슈트라우스, 리스트의 스타일로 재해석된 〈Happy Birthday to you〉 변주곡으로, 폐막 현장을 유쾌하게 마무리했다. 연주의 진정성과 분위기의 유쾌함, 모든 이를 포용하는 축제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피날레는 흐뭇한 미소를 자아냈다.
2025년 5월 서울에서 박마린
스타가 아닌 앙상블,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 20주년 폐막 공연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