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에서 뻥 뚫린 사막 고속도로를 1시간 30여 분 달리면 와디 럼에 도착한다. 차창 밖 저 멀리 검회색 바위산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기대감과 설렘이 가슴 한가득이다.
와디 럼은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암각화와 비문의 특별한 증거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곳의 자연적 가치는 대륙성 사암 지대에 발달한 사막 지형을 갖고 있는 점이다. 융기, 단층, 절리의 지각 활동, 과거의 습윤기후와 사막기후가 연관된 풍화 작용과 침식 작용 등이, 이러한 지형 형성의 지배적 요인이다. 이러한 색다른 지형과 붉은 사막과 경이로운 풍광은 영화의 촬영지로 자주 등장한다. 이곳을 배경으로 만든 1962년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는 와디 럼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와디 럼의 다양한 지형은 인간의 정착을 촉진했고, 문화적 전통과 문명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인 암각화와 비문은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기록 유산이다. 이 유산들은 인간들이 12,000년 동안 거주하며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목축, 농경, 도시 활동의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와디 럼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산과 계곡, 아치형 지형, 좁은 계곡, 절벽, 동굴 등 풍화 형태가 보여주는 장엄한 풍경으로 유명하다. 거기에 보태지는 모자이크 같은 색채, 거대한 와디에서의 멋진 전망 등이 미적 가치를 더해준다.
나는 천막으로 만든 사막 호텔에 짐을 풀고 사막을 걷기 위해 나선다. 바위와 사막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붉은 사막을 마냥 걷는다. 세상과 단절된 곳에 혼자 서 있다. 자연의 소리 외엔 정적과 고즈넉함만이 함께 한다. 문뜩 여기가 '이승인가? 천국인가?' 싶다.
와디 럼 사막의 천막 호텔 /사진: 이향남
와디 럼의 사막은 붉다. /사진: 이향남
와디 럼 사막에도 기차는 달린다. /사진: 이향남
나의 꽉 막힌 가슴 밑바닥 깊은 곳에 있던 뜨거운 덩어리가 꿈틀댄다. 나는 끄집어내어 힘차게 사막에 던진다. 뜨거운 사막이 녹여 버리리라. 한낮의 태양으로 사방이 열기뿐인데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 스친다. 아득히 먼 곳에 기차가 꼬리를 물고 느리게 지나간다. 사막에 기차라니···.
다음 날 나는 지프로 사막 모험을 한다. 붉은 물감을 풀어 흩뿌린 듯한 붉은 캔버스 위를 신나게 달리고 또 달린다. 붉은 모래 산과 기이한 바위들을 돌며 뒷바퀴가 만들어 내는 붉은 모래 꼬리를 본다. 선해 보이고 훈남인 베두인들의 텐트도 들러 사막에서의 베두인 생활상을 체험한다.
우연히 만난 여행객한테 뜻하지 않은 아픈 이야기를 듣는다. 아마도 사막에서 오는 어떤 이끌림 때문이리라. 삶과 죽음, 인간의 능력으로 제어되지 않는 불가항력 불행의 연속, 종교의 힘으로도 잡을 수 없는 삶의 무너짐. 나는 그를 먼저 보내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생수 한 병에 의지하며 터덜터덜 사라지는 그의 고개 숙인 뒷모습에서, 슬픔과 동정이 몰려온다. 머리 위로 사막의 태양만이 뜨겁게 내려앉는다. 부디 이 사막이 그의 모든 아픔을 빨아들이고, 사막의 고요처럼 그분께도 고요한 삶이 함께하길 기도한다.
와디 럼 사막에 해가 지다. /사진: 이향남
궁금했던 와디 럼의 석양은 기대했던 만큼 환상적이다. 높은 바위산으로 빙 둘린 사막 한 켠 높은 바위에 앉아, 넘어가려는 저녁 해를 마주한다. 점점 주위의 색채가 요술을 부린다. 하늘 끝 고적운이 물들기 시작하니 검회색의 바위산은 붉은색으로 변해가고 붉은 사막은 검붉은색으로 변한다. 하늘의 고적운은 더욱 희게 반짝이고, 구름 사이사이 파란 하늘은 더욱 높고 투명하다. 하늘 끝 구름은 타오를 석양을 맞이하려 준비 태세다. 잠시 후 온 사막과 바위산과 나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석양이 찬란하다.
붙잡아 놓고 싶은 노을이 서서히 사라지고, 대기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바위산은 점점 검은색을 띠기 시작하고, 사막은 짙은 회색으로 변해간다. 잠깐의 시간인데 주위는 온통 검은 색으로 다시 변신한다. 실루엣만이 바위산과 사막과 하늘을 경계 짓는다.
와디 럼 사막에 황혼이 춤춘다. /사진: 이향남
와디 럼 사막에 어둠이 내린다. /사진: 이향남
와디 럼의 석양 잔치는 이렇게 끝나간다. 완전히 어둠이 내린 사막에 무언가 영롱한 빛의 내림으로 눈이 빛을 따라가 본다. 아~ 하늘엔 밤의 대지를 촉촉이 밝히는 달빛이 고고하다. 달빛을 머금은 사막의 풍경은 여행자의 하룻밤을 앗아가고, 정적만이 충만한 와디 럼의 사막은 밤낮으로 빛의 축제가 가득하다.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눈을 감았다는 느보산으로 향한다. 느보산은 수도 암만에서 남서쪽으로 35km, 여리고 맞은편 요단강 하구 쪽의 아바림 산맥에 있는 산이다. 해발 약 710m인 느보산에서 해발 -430.5m의 ‘사해(Dead Sea)’까지의 궁금했던 길과 풍광을 만난다. 나무와 숲이 없는 메마른 내리막길을 지그재그로 한참을 내려간다. 저지대에서 다시 지면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니 말로만 듣던 사해가 저 멀리 희뿌옇게 드러난다.
사해로 내려가는 길 /사진: 이향남
사해의 소금 덩어리 /사진: 이향남
물결도 잔잔한 물속에서 둥둥 뜨는 체험을 해본다. 사해 가장자리에 소금 덩어리들이 널려있는 것도 목격한다. 고운 머드에 팩도 해보며 사해에서 망중한을 즐긴다. 돌아오는 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 요르단을 흐르는 요단강에 들린다. 성경에서의 상징적인 이 요단강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의 억압과 고통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과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입성하기 위해 꼭 건너야만 하는 강이다. 요르단 쪽 강가에서 강 너머 이스라엘 땅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만감이 교차 한다. 머리에서는 1956년 작의 영화 〈십계 (The Ten Commandments)〉 의 장면들이 스냅 사진처럼 지나가고, 눈은 강 건너 침례를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본다.
예전 터키를 방문했을 때, 그리스 로마의 유적 도시 에페소를 보고 어안이 벙벙했던 적이 있다. 왜냐하면 고대의 부유하고 화려했던 항구도시 에페소는 정작 이탈리아나 그리스보다 로마 유적이 더 많으며 보존도 잘 되어 있다. 위치 또한 바다를 접한 산이어서 탁 트인 바다 풍광이 절경이고, 산 입구에서 정상까지 펼쳐져 있는 거대한 도시 규모에 놀랐기 때문이다. 우러러보이는 건축물에서는 어떤 위압감과 성스러움마저 느껴진다.
수도 암만에서 북쪽으로 48km 떨어진 요르단 내륙지역 제라쉬 주에 ‘제라쉬(Jerash)’가 있다. 제라쉬는 헬레니즘-로마제국 시대에 세워졌으며, 과거와 현재가 존재하는 ‘동방의 폼페이’ 또는 ‘중동의 폼페이’라고도 불린다. 로마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 중 하나이다. 제라쉬 안은 독립된 유적 도시로 구성되어 있고, 주변으로 현재 도시가 둘러져 있다. 우리나라 서울과 경주가 생각난다. 아마도 현재의 거주 지역은 그 이후 들어선 것으로 예상된다.
나는 로마의 유적 도시를 들릴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거기엔 대체로 지형적 구성적 특징이 있다. 제라쉬도 그렇다. 입구에 포름이 있고, 포름에는 대리석 열주식 도로가 있어 이 길을 따라 도시 안으로 진입하게 된다. 열주식 도로 좌측으로 시장, 상점, 우물, 대중목욕탕 등이 자리한다. 이들 장소가 끝나는 지점에서 언덕이 나타나고 언덕 높은 곳에는 신전들이 위치하며 신전은 시내를 내려다보는 방향으로 자리한다. 신전을 지나 아래로 내려오면서 전투경기장, 원형극장이 위치한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그 당시의 마차 소리와 오페라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르테미스 신전 들어가는 문 /사진: 이향남
아르테미스 신전은 장엄하고 아름답다 /사진: 이향남
이곳 신전 중에서 으뜸인 것은 엄청난 규모의 장대한 제우스 신전과 아름다움의 극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나는 신전에 올라 발아래 시내를 굽어본다. 무한한 시간의 히스토리들이 쌓여 있는 곳. 옛 시대의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곳.
나는 이러한 현재의 신전에서 과거의 도시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이향남, Nomad life ,2016, Oil on canvas, 24×33cm
붉은 땅,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땅, 오랜 기다림 끝에 방문한 곳, 나는 큰 발걸음을 하며 많은 히스토리를 간직한 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안에서 밖을 내다본 세상은 넓고 밝다. 나의 큰 발걸음은 저 너머 또 다른 미지의 세계, 또 다른 꿈을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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