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옥, 을지로 연가, 2023, Mixed on canvas, 72.7x60.6cm
내가 사는 곳은 을지로다. 나는 을지로에서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누구나 을지로를 산책로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로에 달리는 차 소리에 묻혀 거리 또는 상점 안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걸으며 도롯가에 즐비한 상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름대로 잘 정리된 수없이 작은 공구, 부품, 물품들, 이제 세대가 바뀌어 사업장을 이어받은 젊은 사장들은 정갈하고 체계 있게 진열하며 사업에 열중이다. 어떤 젊은 여사장은 상가 위층에 아버지의 역사를 전시장으로 꾸몄다. 아버지가 땀으로 일군 사업의 역사를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이분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아버지의 역사를 꾸민 전시장에 들려, 마음을 다스리고 아버지는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지 않을까?
산책을 통해 을지로의 상인들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었다. 나이든 사람들만 있을 것으로 여겼던 생각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거친 모습과 말투, 물건을 생산하고 나르느라 잔뼈가 굵어 무서운 사람들로 상상하던 나에게는 놀라움이었다. 낡고 작은 건물과 품목은 그대로였지만 사람과 진열 체계는 바뀌어 가고 있었다.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것일까? 모두 친절하고 열정적이었다. 이런 변화된 모습, 아니 이들은 그대로인데 나의 인식이 변화되고 있는지 모른다. 이렇게 을지로에 나는 푹 빠져가고 있었다. 을지로는 어떻게 이런 정체성이 생겼을까?
재개발중인 을지로, 부숴진 옛 상점은 새로운 빌딩 공사를 위한 가림막으로 가려져있다. /사진: 안성옥
6·25 전쟁으로 서울은 초토화되었다.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거리에 건설, 기계 등 건축에 관련한 목재, 가구, 철물, 페인트, 도배 관련 등의 상가가 생겼다. 미싱, 인쇄업 관련 업소들도 속속 이곳 을지로에 모여들었다. 우리나라의 산업, 건설분야의 건축 도구, 기계, 부품들은 을지로에서 생산되어 전국으로 뻗어나간다. 그런데 외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단지 높은 용적률을 추구하는 도심 재개발사업으로 오래되고 키 낮은 상점들은 부서져 없어지고 그 자리에 높은 건물로 대체되고 있다. 옛 건물들이 사라져 높은 빌딩으로 대체되며 예전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을지로 2가, 3가, 4가 순으로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 상점들은 아예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 새로 시작하는 것일까? 이제 을지로 5가만 남은 듯하다. 요즈음 ‘힙지로’라는 이름으로 레트로(복고)를 좋아하는 젊은 인파들이 몰리고 있지만, 얼마나 이런 유행이 지속되어 을지로가 이들의 감수성으로 버틸지 바라보는 마음은 위태롭기만 하다.
산책하며 상가 안에 보이는 찬란한 빛깔의 '볼트 너트'들은 천장까지 전부 메워져 영롱하게 빛난다. 오랜 시간 상인들이 흘린 땀방울도 볼트 너트의 빛처럼 반짝였을 것이다. 그들이 흘렸을 땀을 생각해 본다. 볼트 너트는 땀의 상징이다. 상점 앞에는 크고 작은 캐리어가 즐비하다. 끊임없이 싣고 나르고 옮기기에 꼭 필요한 기구, 그 캐리어가 몇 개씩 놓여있다. 나에게 볼트 너트와 캐리어는 을지로의 상징이다. 누구보다 정직한 땀으로 우리나라의 산업을, 가족을 지켜온 사람들. 다양한 색과 크기와 모양의 볼트 너트는 그들의 땀을 나타내고 있다.
진열된 공구와 볼트너트들 /사진: 안성옥
생각은 더욱 퍼져나갔다. ‘인생도 예술이 아닌가?인생을 땀으로 일군 정직한 을지로 사람들’로 이어졌다. 하나의 도자기를 만들기에 흘려야하는 도공들의 땀과 산업의 현장에서 흘리는 을지로 상인들의 땀이 어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모두 인생의 거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삶의 무게를 스스로 견딘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이 예술이다. 그들의 거친 말투만을 선입관으로 생각했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이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탄생한 작업이 〈을지로 연가〉다.
처음에는 캐리어와 볼트 너트의 이미지를 그려 보았다.
을지로 연가, 2023, Mixed on canvas 45.5x27.3cm
작업이 계속 될수록 주제가 선명해졌다. '볼트 너트'만으로도 노력과 수고와 땀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이 모아졌다. 더 나아가 캐리어가 아닌 도자기라는 예술품 위에 땀의 상징인 볼트너트를 오브제로 붙이고 싶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들과 '볼트 너트'를 만지는 을지로의 장인들이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인가? 도자기처럼 사람의 땀 속에서 완성되는 인생이라는 예술품, 이것이 을지로거리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나의 찬사이며, 미안함과 고마움의 표현이다.
을지로 연가, 2024, Mixed on canvas, 90.9 x 72.7cm
여행이 새로운 눈을 열어주듯, 삶의 공간을 바꾸는 이사는 새로운 감성과 생각을 주는 듯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품은 것은 을지로로 이사왔기 때문이다. 을지로에 이사오기 전, 나는 오랫동안 ‘생동’이라는 제목으로 나무의 움직임을 주로 그려왔다. 을지로에 온 이후로 나의 작품 주제는 인간의 움직임, 노력, 땀으로 바뀌었다. 인생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주제는 없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생동(Alive)2021-1,2021, Mixed media on canvas (116.7x91.0cm)x2
[나의 작품 이야기 ③] 을지로 상인들의 땀과 꿈- '을지로 연가' < 인터뷰 < 뉴스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